2005년 5월호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해명서

  • 입력2005-04-21 14:4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모친상(2002년 11월) 때 1억1500만원, 장모상(2003년 4월) 때 1억 5000만원씩 조의금 받아”
    • “한국청년회의소(JC) 소속 홍모, 권모씨가 4000만원 제공”
    • “3억 5000만원, 현금으로 준 건 군사독재시절 습관 때문”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해명서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2005년 4월15일 ‘신동아’로 보내온 A4지 9장 분량의 5억3500만원 수수 문제 관련 해명서.

    -대통령비서실장 때 받은 5억3500만원의 출처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우선 1억8500만원의 출처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우리 집안의 장남이고, 저의 처는 처가의 장녀여서 오랫동안 양 집안의 재산관리 및 경조사를 도맡아 처리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어머님과 장모님은 돌아가시기 직전 저희 부부에게 마지막까지 가지고 계셨던 돈을 주셨습니다.

    어머님은 2002년 11월30일 작고하시기 전에 그 동안 가지고 계셨던 곗돈을 어려울 때 쓰라고 하시며 8000만원 가량을 주셨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장모님이 2003년 4월29일 작고하시기 얼마 전에 1억원 가량을 주셨습니다. 특히 장모님이 주신 돈에 대하여는 은행이 발행한 통장원장을 근거로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어머님과 장모님은 특히 저의 오랜 야당생활로 인하여 집안이 큰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항상 일정한 현금을 비상식량처럼 가지고 계셨습니다.

    다음으로 2003년 11월9일에 3억5000만원을 갚은 것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친지들과 지인들은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하는 사람이 월급을 압류당하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않느냐”며 저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십시일반으로 모금의 형식을 통해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근거자료, 필요하면 공개

    저는 이번에 이같은 사실을 밝히게 된 것에 대하여 그분들에게 너무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도와주신 분들께 미리 알려 드리지 못한 점에 대하여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우선 어머님 작고시의 조의금 약 1억1500만원과 장모님 작고시의 조의금 약 1억5000만원에서 각각 장례비용 등을 공제하고 난 나머지와 유산에서 1억3000만원 정도를 마련하였습니다. 본가와 처가는 옛날부터 상당한 재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패물 등 유산도 상당히 있었는데, 이를 팔았습니다. 제가 다른 형제들의 양해를 구하여 급한 용도로 위 빚을 갚는데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2003년 10월경 형제들과 지인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어 상당한 경제력을 갖춘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십시일반으로 서로 돈을 모아 모두 약 1억2000만원을 도와주었습니다.

    다음으로 장남이 서점을 경영하면서 모아둔 약 6000만원을 주었고, 한국청년회의소(JC) 시절부터 친형제처럼 절친하게 지내는 홍모씨과 권모씨 등 지인들이 약 4000만원 정도를 도와주었습니다. 위 변제금액에 대한 근거자료는 대부분 가지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모두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2003년 5억 3500만원을 받은 뒤 2004년을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공직자 재산신고 등록이나 국세청 증여세 납부 절차를 밟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친인척들과 지인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준 것이고, 그분들은 도와준 돈에 대해서 받을 마음이 전혀 없다고 말하지만, 저는 죽기 전에 그 은혜를 갚는 심정으로 조금씩이라도 갚을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돈의 성격이 증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를 채무로 인정하여 공직자 재산신고 등록을 위하여 신고를 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이로 인해서 어떤 문제가 생긴 적도 없습니다.”

    -지난 두 차례 인터뷰에선 5억3500만원에 대해 증여받은 것인지, 빌린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증여받은 것이며 증여세 미납은 인정하면서도 “나중에 갚아 드려야지”라고 답하셨는데요.

    “인터뷰시 어떤 경위로 증여라고 말하였는지 인터뷰를 한지 오래 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세법 등 법률적인 문제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용어 선택에서 혼동을 일으켰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나중에 갚아드려야지’라고 말한 것은 살아가면서 여유가 되면 인간적인 도리를 다 하겠다는 것이지, 그것이 대여금이라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그리고 이것을 법적으로는 말하면 이른바 자연채무라고 한다고 하는데, 자연채무란 채무자가 임의로 지급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채권자가 그 이행을 소송으로써 청구하지 못하는 채무라고 합니다.

    홍모씨와 권모씨는 수십년 동안 저와는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도와준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이는 인간적인 문제라고 보아야지 법률적으로 채무가 있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 아닙니까.”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해명서

    2005년 4월2일 열린우리당 의장에 선출된 뒤 문희상 의장이 손을 흔들고 있다.

    -2003년 11월9일 Q변호사에게 현금으로 3억5000만원을 주신 일이 있습니까? 채권-채무 문제와는 상관없는 제3자인 Q변호사는 왜 그런 지시를 받아 수행했다고 봅니까.

    “원래 Q변호사는 의정부 관내에서 강직하기로 소문난 분이고, 그전부터 환경운동을 함께 해오던 이모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이 선생을 돕기 위하여 저와 이 선생 사이의 문제에 자발적으로 중재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결코 Q변호사에게 중재 등을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지역사회에서 Q변호사와 안면이 약간 있을 뿐 교류가 그다지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Q변호사는 이 선생의 입장을 대변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제가 이 선생에게 갚을 돈을 손 변호사에게 직접 건네준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저는 돈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여 돈 문제에 관한 한 거의 대부분을 저의 처가 알아서 처리했습니다. 이 선생에게 갚을 돈을 손 변호사에게 건네준 이는 저의 처입니다.

    제가 군사독재시절 받은 탄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저의 친인척과 지인들이 왜 저에게 현금으로 저를 도와주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군사독재시절 3차례나 불법적인 세무사찰을 당하여 많은 재산을 강탈당하는 보복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러한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친인척들은 현금거래를 많이 해 왔고, 저의 지인들도 당연히 현금으로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채무를 갖게 된 이유과 변제 과정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제14대 국회의원 당시 야당의원 중 재산이 최상위권에 속할 만큼 재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운영하던 서적 도매상 숭문당과 삼정식품이 1994년경 부도를 당하여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동생을 구하기 위해 저의 모든 재산을 들여 동생의 채무를 전부 인수해 변제하고 또 일부는 저의 개인 어음을 발행하는 등 사태 해결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채권자들이 지역 주민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전 재산을 처분하여 동생의 채무 해결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던 중 저 마저도 수십억원에 달하는 부도를 당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부도직전에 돈 빌려

    당시 다른 채권자들은 원금과 이자의 일부를 탕감하여 ‘빚잔치’를 하는 방식으로 채무를 일괄 청산하였으나, 이 모 선생은 안타깝게도 부도 직전에 돈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회수할 기회를 갖지 못하여 더욱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제가 이모 선생에게 빚을 지게 된 것은 동생의 부도를 막아주는 과정에서 저의 처와 이모씨 등을 통하여 1995년 당시 여러 차례에 걸쳐서 그 분에게서 합계 10억9500만원을 빌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도가 난 이후 수많은 채권자들로부터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았지만 부도 상태에서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안타깝지만 변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저는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여 재정상황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장남은 당시 출판사 등으로부터 부채를 대폭 탕감하는 조건으로 숭문당 서점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였는데, 거기서 나는 수익금은 우선 빚을 갚는 데 사용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96년 9월경부터 돈이 조금이라도 생길 때마다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능력에 따라 조금씩 갚았습니다.

    그 변제 내역을 보면, 1996년 9월 4일에 7000만원을 갚았고, 그후 1998년초 대통령 정무수석과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의 직을 차례로 맡으면서 정기적인 급여가 생겨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 약 15차례 정도에 걸쳐 2억 3500만원을 갚았습니다(우리는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 3억4000만원을 갚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이와 관련된 민사소송에서 약간의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위 변제금액과 관련한 상세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1999년 1월31일에 1000만원, 3월6일에 5000만원, 4월30일에 2000만원, 6월1일에 2000만원, 6월6일에 3000만원, 7월30일에 1000만원, 9월14일에 2000만원, 12월14일에 500만원 등을 갚았고, 2000년 3월12일에 2000만원, 4월20일에 2000만원, 7월21일에 2000만원, 9월6일에 1000만원, 12월24일에 2000만원 등을 갚았습니다.

    장남의 결혼식 축의금까지도 빚을 갚는데 사용하였고, 500만원이든 1,000만원이든 돈이 생기는 대로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갚았습니다.

    그리고 2001년에 3회에 걸쳐 6000만원을 갚았는데, 그 내역을 보면, 6월8일에 2000만원, 8월17일에 1000만원, 11월18일에 3000만원 등입니다.

    2002년에 4회에 걸쳐 9000만원을 갚았는데, 3월29일에 1000만원, 9월5일에 1000만원, 11월7일에 2000만원, 12월말경에 5000만원 등을 갚았습니다. 그후 2003년에는 비교적 큰 액수의 돈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