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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해명서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해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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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해명서

2005년 4월2일 열린우리당 의장에 선출된 뒤 문희상 의장이 손을 흔들고 있다.

-2003년 11월9일 Q변호사에게 현금으로 3억5000만원을 주신 일이 있습니까? 채권-채무 문제와는 상관없는 제3자인 Q변호사는 왜 그런 지시를 받아 수행했다고 봅니까.

“원래 Q변호사는 의정부 관내에서 강직하기로 소문난 분이고, 그전부터 환경운동을 함께 해오던 이모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이 선생을 돕기 위하여 저와 이 선생 사이의 문제에 자발적으로 중재하게 된 것입니다. 제가 결코 Q변호사에게 중재 등을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지역사회에서 Q변호사와 안면이 약간 있을 뿐 교류가 그다지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Q변호사는 이 선생의 입장을 대변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제가 이 선생에게 갚을 돈을 손 변호사에게 직접 건네준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저는 돈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여 돈 문제에 관한 한 거의 대부분을 저의 처가 알아서 처리했습니다. 이 선생에게 갚을 돈을 손 변호사에게 건네준 이는 저의 처입니다.

제가 군사독재시절 받은 탄압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저의 친인척과 지인들이 왜 저에게 현금으로 저를 도와주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군사독재시절 3차례나 불법적인 세무사찰을 당하여 많은 재산을 강탈당하는 보복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러한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친인척들은 현금거래를 많이 해 왔고, 저의 지인들도 당연히 현금으로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채무를 갖게 된 이유과 변제 과정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제14대 국회의원 당시 야당의원 중 재산이 최상위권에 속할 만큼 재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운영하던 서적 도매상 숭문당과 삼정식품이 1994년경 부도를 당하여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동생을 구하기 위해 저의 모든 재산을 들여 동생의 채무를 전부 인수해 변제하고 또 일부는 저의 개인 어음을 발행하는 등 사태 해결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더욱이 대부분의 채권자들이 지역 주민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전 재산을 처분하여 동생의 채무 해결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던 중 저 마저도 수십억원에 달하는 부도를 당하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부도직전에 돈 빌려

당시 다른 채권자들은 원금과 이자의 일부를 탕감하여 ‘빚잔치’를 하는 방식으로 채무를 일괄 청산하였으나, 이 모 선생은 안타깝게도 부도 직전에 돈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회수할 기회를 갖지 못하여 더욱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제가 이모 선생에게 빚을 지게 된 것은 동생의 부도를 막아주는 과정에서 저의 처와 이모씨 등을 통하여 1995년 당시 여러 차례에 걸쳐서 그 분에게서 합계 10억9500만원을 빌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도가 난 이후 수많은 채권자들로부터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았지만 부도 상태에서 재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 안타깝지만 변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저는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여 재정상황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장남은 당시 출판사 등으로부터 부채를 대폭 탕감하는 조건으로 숭문당 서점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였는데, 거기서 나는 수익금은 우선 빚을 갚는 데 사용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1996년 9월경부터 돈이 조금이라도 생길 때마다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능력에 따라 조금씩 갚았습니다.

그 변제 내역을 보면, 1996년 9월 4일에 7000만원을 갚았고, 그후 1998년초 대통령 정무수석과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의 직을 차례로 맡으면서 정기적인 급여가 생겨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 약 15차례 정도에 걸쳐 2억 3500만원을 갚았습니다(우리는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 3억4000만원을 갚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이와 관련된 민사소송에서 약간의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위 변제금액과 관련한 상세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1999년 1월31일에 1000만원, 3월6일에 5000만원, 4월30일에 2000만원, 6월1일에 2000만원, 6월6일에 3000만원, 7월30일에 1000만원, 9월14일에 2000만원, 12월14일에 500만원 등을 갚았고, 2000년 3월12일에 2000만원, 4월20일에 2000만원, 7월21일에 2000만원, 9월6일에 1000만원, 12월24일에 2000만원 등을 갚았습니다.

장남의 결혼식 축의금까지도 빚을 갚는데 사용하였고, 500만원이든 1,000만원이든 돈이 생기는 대로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갚았습니다.

그리고 2001년에 3회에 걸쳐 6000만원을 갚았는데, 그 내역을 보면, 6월8일에 2000만원, 8월17일에 1000만원, 11월18일에 3000만원 등입니다.

2002년에 4회에 걸쳐 9000만원을 갚았는데, 3월29일에 1000만원, 9월5일에 1000만원, 11월7일에 2000만원, 12월말경에 5000만원 등을 갚았습니다. 그후 2003년에는 비교적 큰 액수의 돈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신동아 2005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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