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이대엽 성남시장, 뭣하러 소송했나

‘7억 수수설’ 보도 기자 고소했다 법원이 출석 요구한 직후 취하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5-06-27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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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엽 성남시장(한나라당)은 한 언론사가 자신의 비리의혹을 제기하자 “너무나 악의적인 모략으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막상 재판이 열려 법원이 이대엽 시장의 출석 및 증언을 요구한 후 이 시장은 고소를 취하해 재판을 종결시켰다. 해당 기자는 “의혹의 진상을 끝까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대엽 성남시장, 뭣하러 소송했나

    이대엽 성남시장.

    ‘성남일보’권모 기자는 2003년 10월 이대엽 성남시장, 이 시장의 조카, 농협중앙회의 3자가 관련된 의혹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의 요지는 이렇다.

    “이대엽 성남시장 취임 이후 성남시는 ‘제한경쟁입찰’이던 시금고 선정 방식을 ‘수의계약’으로 바꾼 뒤 2002년 11월6일 수의계약으로 농협중앙회 성남시지부를 시금고로 선정했다. 다음날인 11월7일 농협 성남시지부는 이 시장의 조카가 설립한 회사에 38억원을 연리 2.35%의 저리로 대출해 특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시장의 조카 회사는 이 돈으로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건물을 신축했다. 이 시장의 한 측근은 ‘이 시장이 한나라당 시장후보로 출마한 2002년 지방선거 때 조카가 갖고 온 7억원을 받았다’고 밝혔으며 농협 대출건도 이 맥락에서 봐야 설명이 가능하다.”

    이대엽 시장과 그의 조카, 조카의 동업자 3명은 “허위 사실을 보도해 명예를 손상했다”면서 권 기자를 ‘정보통신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후 이 사건 재판은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여덟 차례나 공판이 진행됐으며 2004년 말까지 1년이 넘게 계속됐다.

    재판 과정에서 이 시장-농협-이 시장 조카의 유착의혹을 판단할 자료들이 제시됐다. 시민단체인 ‘성남시민모임’ 소속 이재명 변호사는 권 기자의 변호인으로 나서 이 시장 조카의 사업체가 설립되기 전에 농협이 대출심사를 진행한 기록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대출이 이뤄진 시점이 법인 설립일 다음날이라는 사실도 공개됐다. 대출심사를 위한 ‘법인사업성 검토서’엔 엉뚱한 기업의 사업자등록번호가 기재돼 있었다. 대출 결정이 나기 전 일부 등기 업무가 완료된 사실도 공개됐다.



    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법정에서 “착오가 생긴 것 같다”고 증언했다.

    재판관, “납득 어려운 대출”

    재판관은 “이번 사건의 요점은 특혜대출 여부인데 증인들의 얘기가 일반인이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관은 “통상 대출 결정이 난 후 등기 이전 업무를 마무리짓는데 이번 경우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대엽 시장의 조카가 농협에서 대출한 돈으로 빌딩을 신축한 뒤 이 시장이 성남시 산하 동사무소를 임대 방식으로 이 빌딩에 입주시킨 사실도 확인됐다.

    7억원 수수 의혹의 경우 이 시장의 조카는 “돈을 준 적 없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선거 때 이 시장을 지원했던 성남체육회의 한 인사는 법정에서 “이 시장의 선거참모에게서 ‘이 시장의 조카가 선거자금으로 3억~4억원을 가져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상반되게 증언했다.

    2004년 10월26일 재판에서 검찰은 각종 의혹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선 ‘고소인’인 이대엽 성남시장의 재판출석 및 증언이 꼭 필요하다고 보고 이 시장의 출석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피고소인인 권 기자의 변호인도 동일한 요청을 했다. 재판부는 양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시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그런데 법원에서 이 같은 결정이 난 후인 11월 이 시장은 권 기자를 상대로 한 고소를 취하했다. 이 시장의 조카, 조카의 동업자도 고소를 취하했다. 이들이 고소를 취하함에 따라 재판은 이내 종결됐다. 이 시장은 고소 취하서에 “권 기자가 사과를 해왔기 때문”이라며 취하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권 기자는 “이 시장에게 사과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다음은 권 기자의 말이다.

    “이 시장측 한 공무원이 ‘시장님과 식사를 같이 하자’ ‘시장님과 저녁에 술을 같이 하자’고 잇따라 제의해와 모두 거절했다. ‘그러면 차나 한잔 하자. 시장집무실로 와달라’고 해 갔다. 그 자리엔 이 시장과 이 시장 조카가 있었다. 이 시장이 종전의 주장만 되풀이하길래 묵묵히 듣고 나왔다.

    그런데 다음날 이 시장은 이 자리에서 내가 자신에게 사과했다는 이유를 달아 ‘고소 취하서’를 냈다. 사과한 적이 없는데 사과를 받았다고 하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1년여 간의 재판과정에서 나는 일관되게 내 보도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권 기자는 “이대엽 시장은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 문제가 다른 언론기관으로 확산되지 않는 효과를 봤다. 이번엔 소송을 중도에 그만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는 법적 절차가 중지되는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진상을 끝까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보 시인했고 사과도 했다”

    권 기자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이대엽 성남시장에게 설명을 요구하자 이 시장은 ‘신동아’에 다음과 같은 ‘반론문’을 보내왔다.

    “1. 실무부서 의견을 반영해 시금고 선정방식을 결정했다. 농협은 30여 년간 성남시의 시금고로 운영돼 왔으며 2002년의 시금고 계약도 정상적 고유 업무였다. 동사무소 임대차 계약도 적정하게 처리된 것으로 확인됐다. 본인은 농협이 본인 조카측에게 대출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사후 파악한 결과, 담보물 가치평가 등에서 정상적 대출이었다.

    2. 선거 때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본인에게 7억원을 줬다는 음해는 본인을 흠집내기 위한 너무나 악의적인 모략이다.

    3. 진상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재판에 출석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출석요구 날짜가 우연히 시의 행사와 겹쳐 연기원을 법원에 제출한 것이고, 그러던 중 권 기자의 방문사과로 소를 취하한 것이다.

    4. 권 기자는 본인의 집무실로 와서 ‘제보자의 말만 믿고 기사화하여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관용을 베풀어달라’고 하여 관용을 베푼 것이지, 본 고소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6. 터무니없는 모략에 대한 법적인 진상규명과 응분의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지만 권 기자의 이 같은 사과를 믿고 관용을 베푼 것인데, 이런 악의적인 모략으로 되돌아오는 현실이 안타깝다. 더 이상 반성 없이 음해를 계속한다면 응분의 법적 책임을 묻겠다.”

    출판물이나 인터넷 등에 의한 명예훼손 관련 소송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고소인의 권리구제에 있다는 점은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이 시장이 ‘7억원 수수설’에 대해 다시 법적 책임을 묻는 것도 그의 자유다.

    그러나 명예훼손 관련 소송은 ‘공적인 사안에 대한 진상규명’이라는 부차적 효과를 갖고 있음도 사실이다. 공인인 이 시장이 소송을 진행한 과정에서 몇 가지 의문점이 발견된다.

    그가 자신의 표현대로 ‘7억원 수수설’이라는 ‘너무나 악의적인 모략’을 받았음에도, 명예회복의 실효가 전혀 없는 ‘비공개 사과 한 마디’에 고소를 취하한 점은 석연치 않다. 더구나 사과했다는 피고소인은 민망스럽게도 사과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진상규명 절차가 ‘이 시장의 출석 증언’이라는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시점에 하필 고소를 취하한 점도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이 시장이 밝힌 고소취하 사유인 ‘사과와 관용’은 사인간에 통용되는 문제다. 이 시장 관련 소송은 사적이면서 동시에 공적인 측면이 있다. ‘고위 공직자의 7억원대 금품수수설’은 의혹 해소의 공적 필요성이 말할 나위 없이 큰 사안이다. 이 정도 사안이면 최대한 의문을 풀어주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이며 유권자에 대한 도리다. 더구나 이 시장 본인의 고소에 의해 사법부가 의욕적으로 진상규명을 벌이던 중이었다.

    이 시장은 기자가 오보를 시인했고 사과한 점을 들어 재판 도중 고소를 취하했다지만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언론보도와 명예훼손 소송

    명예훼손 관련 소송절차는 언론 견제를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공인이 ‘엄포용’으로 이를 이용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언론의 비리의혹 제기에 대해 “날조다. 법적대응하겠다”며 잔뜩 어깨에 힘을 준 뒤 실제 소송은 하지 않은 경우다.

    공인이 명예훼손 소송을 낸 뒤 피고소된 언론기관이 오보(誤報)를 시인하지도 않았고 진실 규명 절차가 진행 중인데도 슬그머니 취하하는 행위 역시 문제 소지가 있다. 판사, 검사 등 공권력의 낭비까지 불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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