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호

이강철 열린우리당 후보

“거대한 호수의 ‘고인 민심’ 돌리려 홀로 돌팔매질”

  • 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입력2005-10-24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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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전5기’를 위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자리를 내던졌다. 이번에 떨어지면 또다시 ‘無冠’으로 돌아가야 한다. 사활을 걸었다. 이강철 후보에겐 노무현 대통령의 지원도,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도움도 오히려 부담이다. 그의 희망은 ‘홀로서기’다.
    이강철 열린우리당 후보
    약속시각보다 20분 가량 일찍 이강철(李康哲·58) 후보의 선거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강철=공공기관’이란 슬로건이었다. ‘표 없는 사무실에서 잠시도 지체 말고 발로 뛰어 필승하자’ ‘일백번 전화보다 직접 만나 필승하자’는 표어도 눈길을 끌었다.

    귀동냥으로 들어보니 전화홍보를 담당한 자원봉사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딱 두 가지였다. ‘공공기관이 와야 낙후된 우리 동구가 발전하는데, 그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 누가 또 있겠는가’와 ‘이번에는 기필코 한번 만들어보자’였다. 후자는 대구에서만 4차례 선거에 나와 모두 떨어진 이강철 후보와 한나라당 불패 신화가 이어지는 지역 현실을 감안한 호소다. 이 후보와 마주앉자마자 간판 이야기부터 꺼냈다.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그래? 간판에 당명(黨名)이 없어? 몰랐는데….”

    그러더니 배석한 참모에게 지시했다.

    “당명을 달아라. 정공법으로 해야지. 남자가 비겁하잖아.”



    -노무현 대통령의 권유로 이번 선거에 출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통령이 지역주의 극복 차원에서 출마를 간곡하게 당부한 것으로 압니다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에게서 출마하란 말을 전혀 들은 적이 없어요. 오히려 출마하기 위해 시민사회수석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더니 ‘떨어질 텐데 뭐하러 나갈라 카노, 편안히 있지’ 하더군요. 그리고 대통령은 출마하기 싫은 사람한테 강요하는 성격이 절대 아닙니다. 선거에서 어쩔 수 없어 지면 지는 대로 하지, 무리하게는 하지 않습니다. 단지 상황이 어려운 것을 알고 스스로 알아서 출마해주면 좋아는 하지요, 허허.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해명하자면, 이재용 환경부 장관을 내년 대구시장선거에 출마시키려고 장관에 임명했다는 말이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이 장관에게 ‘어떤 부담도 갖지 마라. 환경부 일만 열심히 해라’고 당부했습니다.”

    -지난해 치러진 17대 총선에서는 이른바 ‘올인’ 전략에 따라 현직에 있던 장·차관을 억지로 선거에 내보내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내가 열린우리당의 외부인사영입단장으로서 한 일입니다. 그때도 대통령은 일절 관여하지 않았어요.”

    -이번 대구 동구을 재선거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입니다. 대구를 살리는 데 누가 더 적합한 일꾼인가 하는 관점에서 이번 선거를 봐야 합니다. 대구는 회사로 따지면 부도 직전의 상황입니다. 대구시는 부채만 2조8000억원가량 됩니다. 빚이 많다 보니 신규 사업을 벌일 예산이 없어요. 그러니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시민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겁니다. 정치적 말장난이나 무책임한 정치 공세로 이번 선거를 또다시 혼탁하게 만든다면 대구와 동구는 영영 회생하기 어렵습니다. 지역정서를 자극하는 선거가 아니라 인물로서 선택받는 그런 페어플레이 선거를 하고 싶습니다. 그게 대구를 위해 바람직한 일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은 오히려 도움 안 돼

    -그렇지만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 구도를 노무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로 몰아가고 있는데요.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에서 자꾸 그런 식으로 몰고가려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이강철은 이강철일 뿐 대통령의 대리인이 아닙니다(웃음). 한나라당 처지에서야 당연히 이 선거를 정치쟁점화해 지역정서를 자극함으로써 선거를 쉽게 치르려고 하겠지요. 여태껏 한나라당이 대구·경북에서 보여준 선거행태가 다 그랬으니까요.”

    -나름의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치르든 남의 당 선거 전략을 두고 ‘감 놔라 배 놔라’ 할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단지 ‘공공기관 동구 유치를 통한 지역발전’만 거론하며 현장에서 밑바닥 민심(民心)을 돌리려는 제 선거전략대로 움직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만의 길을 가겠습니다. 한마디만 덧붙일까요? 요즘 한나라당 후보를 보면 어떻든지 박근혜 대표의 후광을 업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결국 또 박 대표가 이번 선거에 나설 것이고, 그러면 자연히 한나라당 유승민 후보는 재미 좀 보겠지요. 그러나 저는 사정이 달라요. 대통령이 오히려 선거에 큰 힘이 안 된다는 것은 다 아는 얘기 아닙니까.”

    -어쨌든 박근혜 대표의 영향력이 선거판세에 큰 변수가 될 텐데요.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어차피 한나라당 지지자입니다. 한나라당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지지로 돌아서야 진정한 ‘박풍(朴風)’의 효과라고 할 수 있지요.”

    -노무현 대통령이 10월5일 지역혁신박람회 참석차 대구에 왔을 때 지역 인사들과의 관례적인 오찬도 마다하고 급거 상경한 이유가 선거 개입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이 후보의 요청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같은 맥락에서 문희상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에게도 대구 방문 자제를 요청했다던데 사실인가요? 왜 그랬습니까.

    “저는 이번 선거를 철저히 혼자 치르려고 합니다. 유권자가 단지 이강철이 이름 석 자를 보고 판단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정당만 보고 꾹꾹 찍는 선거문화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일전에 문희상 의장에게 ‘중앙당 지도부가 선거에 개입하면 지난 영천 선거에서도 그랬듯이 선거 분위기가 과열되고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전개되면서 유권자의 판단 기준을 흐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이번 선거만큼은 지역선거로 가져가서 누가 지역을 위해 일할 진정한 일꾼인지 유권자가 판단하도록 하는, 그런 선거를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문 의장도 저의 뜻을 헤아려주셨고요. 대통령께서 행사 축사말고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서울로 가신 것도 그런 뜻이 아닐까 합니다.”

    야당 의원들의 묘한 생리

    인터뷰가 있던 날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나란히 대구를 방문했다. 그날 오후에 열린 ‘영남일보’ 창간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박 대표는 이날 일찌감치 대구로 내려와 유승민 후보 선거대책위 발대식에 참석,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반면 문 의장은 고속철도 편으로 동대구역에 도착해 곧장 기념 행사장인 인터불고 호텔로 향했고, 1시간가량 걸린 행사가 끝나자 바로 동대구역으로 떠났다.

    -당선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봅니까. 4전5기할 자신이 있나요.

    “선거에 네 번 떨어지면 초연한 무욕(無慾)의 상태가 됩니다. 그저 민심에 따를 뿐이지요, 하하. 다만 지난 17대 총선 때와 비교해보면 바닥 민심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 때는 바닥 민심이 냉랭해서 선거를 치르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내미는 손을 거절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반갑게 손을 잡아주더라고요. 낙후된 동구를 발전시켜달라는 이야기도 종종 듣습니다. 그때처럼, 제가 건넨 명함을 바닥에 버리는 경우도 드물고요.”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고 봅니까.

    “대구가 경제적으로 워낙 어렵다 보니까 ‘흰고양이든 검은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되지 않느냐’ 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여론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 후보가 대구상공회의소 간담회에 관료들과 함께 참석한 것을 놓고 한나라당이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선관위에 고발했더군요.

    “한나라당이 저를 사전선거운동으로 고발한 내용은 대구상의나 대구시가 저에게 도와달라며 먼저 협조를 요청한 사안들이에요. 그쪽에서 가만히 있는데 제가 나서서 뭘 해주겠다고 한 것이 아니란 이야기지요. 출마하기 전에 대구시측에서 지하철 3호선 건설을 위한 설계비가 정부 예산안에 편성되도록 도와달라고 청해왔어요. 여론을 청취해 대통령께 보고하는 것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의 임무 가운데 하나여서, 대구시의 요청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이지요. 그것이 예산에 반영된 것이고….”

    -이유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선거를 의식한 행동이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입니다.

    “우스갯소리 하나만 하겠습니다. 대구의 야당 국회의원들은 좀 묘한 생리를 가지고 있어요. 정부가 예산을 적게 주면 대구를 홀대한다고 언론을 통해 지역 민심을 자극하고, 정부가 예산 배려를 해주면 사전선거운동이라고 난리를 칩니다. 자기들이 하면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제가 하면 맹비난합니다. 참 곤혹스럽습니다. 하도 비난하니까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한나라당은 동구의 혁신도시 유치가 정치권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혁신도시는 대구시에서 추천한 10명과 공공기관에서 추천한 10명을 합해 20명의 입지선정위원회가 구성돼 1차적으로 입지를 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입지선정위원회의 결정이 최종 결정은 아니지요. 건설교통부의 공공기관 입지선정지침을 보면 공공기관 이전지 확정 전에 대구시가 정부와 두 차례 협의하도록 돼 있습니다. 저는 이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구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정부를 설득하는 데도 자신 있습니다. 금배지를 걸고서라도 공공기관을 동구에 유치하겠다고 단언한 것은 그런 자신감 때문입니다.”

    “정치적 목표? 에이, 그런 거 없어요”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 폭언 사건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또 그것이 선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까.

    “저도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출마 선언문에서도 밝혔듯이 싸움만 하는 정치판 근처에는 얼씬도 안하겠다고 한 만큼 묵묵히 일만 하겠습니다.”

    -한나라당에서 현역 비례대표 의원을 사퇴시키고 전략공천을 한 것은 어떻게 봅니까.

    “남의 당 공천 문제를 놓고 제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투표일에 민심이 속내를 드러내놓겠지요. 민심이 천심(天心) 아닙니까. 한나라당의 공천 결과는 그때 되면 알 수 있겠죠.”

    -한나라당 유승민 후보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유승민 후보는 아버님도 지역 국회의원이셨고 본인도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낸 훌륭한 집안 출신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바르게 자란 후배인 것 같습니다. 경제 전문가로 식견도 높고 서울에서 기반도 확실하게 잡은 장래 유망한 일꾼이지요. 앞으로 고향과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경북에서 한나라당 불패 신화가 이어지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글쎄요. ‘불패’는 아니지요. 17대 때 신국환 의원이 문경·예천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으니까요(웃음). 지역정서가 한나라당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민심이라는 게 항상 고여 있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물처럼 돌고 돌게 마련이지요. 작은 힘이지만 저는 거대한 호수의 고인 물이 돌도록 호수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허허.”

    -이 후보의 향후 정치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손사래를 치며) 에이, 저 그런 거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드는 데까지가 제가 정치적으로 할 몫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대구 동구을 재선거에 나온 것은 나이 육십을 코앞에 두고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내 고향 대구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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