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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인터뷰

5·6공 주역, 정호용 전 국방장관

“나는 친구 노태우에게 배신당했다”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5·6공 주역, 정호용 전 국방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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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S, 全·盧 친구인 내가 대통령 될까봐 내 의원직 사퇴를 3당 합당 조건으로 걸어”
  • “고건, 5·17 계엄 반대해 사표 냈다면서 계엄기간 중 장관으로 복귀”
  • “드라마 ‘제5공화국’, 내가 등장한 21개 장면은 모두 허위”
  • “하늘에 맹세코 5·18 발포명령 안 했다… 재심 청구할 것”
5·6공 주역, 정호용 전 국방장관
10월14일 오전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정호용(鄭鎬溶·73) 전 국방부 장관을 만났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사 11기 동기, 하나회 멤버로 절친한 사이였던 그는 “언론 인터뷰는 10여 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그에게서 1990년 1월 3당(黨) 합당 직전 의원직을 사퇴한 까닭부터 들었다. 1989년 12월31일 백담사에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회 5공청문회에 출석해 ‘광주 민주화운동’ 등에 대해 증언했다. 그 며칠 후인 1990년 1월8일 정호용 당시 민정당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어 14일 뒤인 1월22일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3당 합당을 선언했다.

-1990년 1월8일 ‘국가 안정’을 내걸고 의원직을 사퇴했는데….

“당시 야당은 5·18의 책임을 물어 나를 의원직에서 사퇴시키라고 민정당을 거세게 압박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5·18에 대해 내게 법적·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5·18의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가안정을 명분으로 사퇴한 것입니다.”

당시 언론은 “13대 총선으로 형성된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서 민정당 김윤환 총무(작고)와 제1야당인 평화민주당 김원기(현 국회의장) 총무의 막전 막후 줄다리기를 통해 정호용 의원의 의원직 사퇴가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정 의원의 사퇴는 여야 총무의 뛰어난 협상력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정 전 장관에 따르면 이 같은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그의 사퇴는 ‘원내총무선’에서 다뤄진 사안이 아니었다.

전두환, 노태우, 그 다음은 정호용

- 5·18에 책임이 없다면서도 야당의 요구에 응해 사퇴한 이유가 뭡니까.

“당 일각에서 내게 의원직 사퇴를 권유했습니다. 나는 거부했죠. 야당이 아무리 거세게 압박한다 해도 응할 이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노태우 대통령이 나를 불러 사퇴를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국가와 당을 위해 그렇게 해달라면서 친구인 자신을 꼭 한 번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의원직 사퇴를 하면 석 달 뒤 대구 서구갑 보궐선거에 공천을 해주겠다’고 약속하더군요.”

-의원직 사퇴가 노 대통령에게 왜 그토록 절실했습니까.

“노 대통령과 YS(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 JP(김종필 당시 공화당 총재) 사이에 은밀하게 3당 합당이 추진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를 퇴진시키라는 것이 YS, JP가 내건 3당 합당의 전제조건이었습니다.

그건 3당 합당 이후의 후계구도를 염두에 둔 것이었죠. YS는 ‘전두환·노태우·정호용은 육사 11기 동기인 절친한 친구들로 5·6공화국을 세운 주역이다. 전두환·노태우가 대통령을 했으니 다음 대권은 정호용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이야 육사의 같은 기수에서 대통령이 세 명이나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실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 전 장관을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에 임명해 행정 경험을 쌓게 했다). 당시 노 대통령에게 3당 합당은 절체절명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의원직을 사퇴한 겁니다.”

“친구인 대통령이 배신할 줄이야”

- 석 달 뒤인 4월3일 대구 서구갑 보궐선거에서,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 공천을 받지 못했는데, 노태우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겁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민자당 공천에서 배제됐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약속을 어기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친구이기도 한 대통령에게 배신감을 크게 느꼈어요. 오죽했으면 아내가 목숨을 끊으려고 했겠습니까. 그래서 명예회복을 위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입니다.”

대구 서구갑 보궐선거는 ‘5공 청산’과 ‘3당 합당’의 정당성을 심판받는 상징성을 띠게 됐다. 노태우 대통령과 민자당은 정권의 명운(命運)을 걸었다. 문희갑 당시 민자당 후보의 강력한 라이벌은 무소속 정호용 후보였다. 그러나 정 후보는 중도에 후보직을 전격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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