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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기구한 가족사

“나는 남한 초대 항공사령관의 아들, 장택상 전 총리의 손자사위”

망명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기구한 가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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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는 아프다. 역사가 여전히 현실에 강한 힘을 미치는 땅에서는 더욱 그렇다. 2005년 5월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이모씨. 그가 자신의 본가와 처가가 모두 대한민국 건국의 핵심역할을 담당한 가문이라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 공군 창설의 주역인이영무 전 항공사령관의 아들은 어떻게 북한에서 최고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우파의 거두였던 장택상 전 총리의 딸과 사위는 왜 북으로 갔을까. 이씨는 왜 55년 전 떠났던 서울로 돌아왔을까. 시간을 넘어 반복되는 가혹한 역사의 아이러니 한 조각.
망명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기구한 가족사

2005년 4월1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11기 제3차 회의에 참가한 대의원들.

한국의 초대 외무장관과 3대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의 셋째딸 장병혜(73)씨는 2005년 10월말 신분을 밝히지 않은 한 젊은 남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1964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40여 년간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다양한 일을 겪었지만, 그처럼 묘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남자는 “당신의 조카사위, 그러니까 월북한 당신 언니의 사위가 남한에 왔다. 당신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장씨가 “효선(가명)이 남편이 왔다는 말이냐”고 되묻자 남자는 “그렇다”고 답했다.

장씨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귀가 번쩍 뜨였다고 말한다. 자신이 아직 성인이 되기 전에 헤어진 큰언니의 딸, 그러니까 불과 여섯 살 때 마지막으로 본 조카 효선이의 남편이 서울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장씨가 “조카는 어디 있나, 그 아이도 함께 탈북했느냐”고 묻자 남자는 “그건 아니다. 남편 혼자 내려왔다”고 답했다.

평소 자주 가던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은 후 장씨는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1970년대 말 최은희·신상옥 부부 납치사건으로 뒤숭숭하던 무렵 일본에서 생활하던 장씨는 납치 미수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갖가지 걱정이 앞선 장씨는 이런 일에 정통한 지인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결국 나가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전화를 걸었던 남자는 자신의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다.

고민 끝에 장씨는 약속장소에 아들을 내보냈다. 아들에게도 이들과 접촉하지는 말고 먼발치에서 어떤 사람들이 나오는지 지켜보라고 당부했다. 약속장소에 나갔다가 돌아온 아들은 “젊은 남자와 노인 한 명이 와서 한참을 기다리다 가더라”고 전했다. 노인은 큰 키에 서울말씨를 썼다고 했다. 그날 밤 장병혜씨는 묘한 불안감 때문에 친구집에 가서 잤다.

과연 그 노인은 누구였을까. 정말 장씨의 조카사위였을까. 그가 장씨를 만나고 싶어한 이유는 무엇일까.

반세기의 아이러니

2005년 7월17일, ‘연합뉴스’와 ‘월간조선’을 시작으로 국내 언론들은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한 사람이 5월 무렵 제3국에서 한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요청해 현재 국가정보원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망명한 대의원은 북한의 군수경제를 총괄하는 제2경제위원회 산하 해양공업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해양공업연구소는 명칭과 달리 주로 무기 개발, 제조 및 판매 업무를 하는 곳이라는 보도였다.

최고인민회의는 북한 헌법이 규정한 최고주권기관으로 우리의 국회에 해당한다. 북한은 2003년 8월 제11기 최고인민회의 선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임기 5년의 대의원 687명을 뽑았다. 이후 국가정보원은 사실 확인을 거부했고, 북한은 관련보도가 나온 이튿날 곧바로 “우리 공화국의 영상(이미지)을 깎아내려 보려는 가소로운 모략책동”이라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당국자들은 비공식적으로 북한 최고위 인사의 망명을 사실상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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