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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志 兵法 ·마지막 회

진(秦)의 통일과 멸망이 남긴 교훈

일 벌이지 않고 쉬는 게 난세 수습 첫걸음

  • 박동운 언론인

진(秦)의 통일과 멸망이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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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세에서 살아남은 국민은 무엇을 바라는가. 난세의 위정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진시황의 중국 통일과 그 통일제국의 멸망은 이에 대한 답을 던져준다. 선군(先軍), 강권 정치로 통일한 지 15년 만에 무너진 진제국, 그리고 ‘국민과 더불어 휴식한다’는 ‘與民休息’ 정책으로 태평성세를 이룬 한(漢) 유방. 그들이 통일의 과제를 안은 한반도에 던지는 교훈은 무엇인가.
진(秦)의 통일과 멸망이 남긴 교훈
진시황(秦始皇·기원전 259~기원전 210)은 여러 나라가 할거하던 중국을 무력으로 통일한 선구자이자 중국 문화권 최초의 통일제국 창건자였다. 개인적 선악시비의 평판을 초월해 그가 역사에 특기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진이 중국을 통일한 해는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통일전쟁을 본격화해 6국(韓·魏·楚·燕·趙·齊)을 각개격파로 정복할 때까지 17년이 걸린 셈이다. 그는 이로써 500여 년 춘추전국의 난세에 종지부를 찍은 ‘영웅’이 됐다. 통일제국 진은 진시황 사후 15년을 넘기지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지만, 그는 분단국가의 통일 여정에서뿐 아니라 통일국가의 멸망 과정에서도 중요한 시사적 교훈을 후세에 남겼다.

우선 춘추전국의 통일 과정을 보자. 6국이 멸망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많은 사람은 진시황의 무력을 첫손에 꼽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6국을 멸망시킨 주체는 6국 왕조와 신하 자신이었다. 그들은 전쟁 내내 ‘바보들의 행진’만 거듭했다. 침략자를 욕하는 것은 아이들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엉터리 지도자를 추대하고 맹종해온 책임은 그들에게 있다. 초나라의 애국시인 굴원(屈原)이 멸망 전야의 정치현실에 절망, 책임을 느끼고 멱라강에 투신자살한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 진시황은 무력행사 이전에 항상 외교와 모략을 선행함으로써 희생을 극소화하는 동시에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개혁, 또 개혁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가 동방 진출을 본격화했을 때 이에 맞서 총동원 체제로 저항한 나라는 조(趙)와 초(楚)뿐이었다. 두 나라는 면적과 인구 등 모든 면에서 덩치가 가장 컸으나 지도부가 어수룩해 온 나라에 패배주의가 만연해 있었다. 나머지 나라들의 지도부는 부패와 무능, 기회주의에 찌들어 저항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걸었다. 전국시대 6국의 공통점은 간단명료하다. 한결같이 개혁에 실패한 국가라는 사실. 6국의 무지몽매한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욕심만 챙겼을 뿐 유능한 개혁 인재의 등용을 외면하거나 방해했다.

그에 반해 진은 지도부의 확고한 개혁의지 아래 생기와 의욕이 넘쳐흘렀다. 상앙(商?) 이래의 개혁 성공과 그 지속은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의 증대’를 확신하게 했고, 천하를 향한 ‘개방적 인재등용’의 길을 열었다. 진나라와 6국 사이의 이러한 대조는 향후 천하통일의 주인공이 과연 누구일지를 예언하고 있었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출현시킨 진제국은 고대 중국 문화권에선 최초로 중앙집권적 전제 군주제하의 통일 관료국가였다. 이는 중국과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사에 특기될 만한 ‘대사건’이었다.

중국은 현재 한(漢)족을 비롯한 56개 민족을 아우르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이자 13억명을 거느린 세계 최다 인구 국가다. 국토의 총면적은 960만㎢로, 러시아와 캐나다에 이어 세계 3위. 중국은 이러한 양적 거대함 이상으로, 문화와 국민 자질의 질적 우수성 때문에 세계의 이목을 끈다. 이미 중국인은 나침반·화약·종이·활자 인쇄술이란 4대 발명품으로 인류문명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오늘날은 또 어떤가. 오랜 ‘정체의 잠’에서 깨어난 발랄한 기상으로 온 나라가 약동하고 있다. 미국 하원은 중국의 ‘초강대국’ 진입은 ‘예측’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관점에서 진시황의 천하통일은 한(漢)민족 고대사에 기록된 맹목적인 혼란과 불안의 연속, 즉 난세(亂世)에 종지부를 찍고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는 주(周) 왕조에서 시작되고 춘추전국시대에 갈피를 잃은 종법제(宗法制·문벌주의)와 분봉제(分封制·할거주의와 당파싸움, 지역감정 등)를 전국적 범위에서 타파하고 일소했다. 그 대신 군현제(郡縣制)와 율령제(律令制)를 실시했다. 이는 중앙에서 능력 위주로 관리를 선발 임명해 지방에 파견하고, 법률과 규칙 및 특명에 따라 일하게 하는 참신한 제도로, 오늘날 일부 국가에서 관찰되는 한(恨)풀이, 분풀이식 인사나 사찰, 정보정치에서 비롯된 정실 인사와는 판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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