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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가 10년 추적 끝에 최초 공개하는‘이명박 운하’의 전모

  • 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신동아가 10년 추적 끝에 최초 공개하는‘이명박 운하’의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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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1995년 경부운하 검토

이명박 측근, “1996년 YS 견제로 무산”

충주댐, 충주호, 국립공원 통과 안 해

괴산 박달산-문경 조령산 쌍방향 터널 뚫는다

임시 갱도공법으로 4년내 완공

서울-부산 40시간, 고속 바지선의 비밀

구포대교 등 17개 재가설, 달천교 등 13개 철거

대구 갈산동·화원읍, 선착장·물류단지 유력

총생산 파급효과 연 1조4229억원

‘타당성 없다’ 정부 보고서 자문교수들 “연구 참여한 적 없다”

환경단체 “백두대간 두 동강…생태계 교란 불 보듯”


신동아가 10년 추적 끝에 최초 공개하는‘이명박 운하’의 전모
길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신작로가 생기면서 사라진다. 그것이 길의 운명이다. 길이 사라지면 그 길에 명운을 걸었던 사람들의 인생, 풍류도 잡풀 속에 묻힌다. 지역경제도 길의 흥망과 운명을 같이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고속도로였던 ‘조선 팔대로(八大路)’는 신작로가 등장하면서 사라졌다. 일제가 러일전쟁을 앞두고 부설한 경부선 철도(1901∼1905)는 부산 동래에서 서울 양재까지 가장 빠른 도보 길이자 과거 보러 가던 길이던 ‘영남대로(嶺南大路)’ 위에 놓여졌다. 낙동강 우안(友岸)을 따라, 또 남한강을 비껴 장호원 들판을 내달리던 영남대로는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길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물길(水路)이다. 조선시대 부산, 경남지역의 조공(朝貢) 배와 소금 배는 낙동강을 거슬러 문경새재 코밑인 상주까지 올라갔다. 낙동강 지류를 따라 경북 내륙 골짜기인 안동으로도 들어갔다. 안동 양반이 바다 생선을 맛볼 수 있던 것도 이 물길 덕분이었다. 서울에서 충주까지는 한강과 남한강 물길을 이용했다. 서울로 가는 조공 배는 달구지로 문경새재를 넘어온 짐을 싣고 남한강의 유속과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한강 마포나루까지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나루에는 주막과 시장이 번성했다.

강의 물길은 바다로도 연결됐다. 충북 충주의 달천강 지류에서 시작한 남한강은 경기도 양평의 팔당 지역에서 북한강과 만난 후 비로소 한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서울을 관통해 경기도 파주까지 한달음에 내뻗은 한강은 임진강과 합쳐지면서 서해와 몸을 섞는다. 강원도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문경, 상주, 구미, 물금을 거쳐 부산지역에서 남해로 연결된다.

러일전쟁,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일제는 경부선 철도 인근의 한강, 남한강, 낙동강 주변 나무를 집중적으로 베어내기 시작한다. 수목 남벌로 토사는 강으로 흘러내렸고, 이후 급속한 산업화로 강변이 파괴되면서 강의 바닥(하상)이 높아져 큰 배가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그 뒤 경부고속도로가 만들어지고, 국도와 지방도가 늘어나면서 1960년대를 기점으로 한강과 낙동강은 물류이동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상실한다. 사람을 실어 나르던 나룻배도 신식 다리의 등장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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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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