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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 획정에서 남북정상회담까지 16

미국이 버린 제2공화국, 나약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았다

  • 허동현 경희대 교수·사학 huhdh@khu.ac.kr

미국이 버린 제2공화국, 나약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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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9로 일어나 5·16으로 무너진 제2공화국은 한국인이 오랫동안 꿈꿔온 민주주의 구현의 출발점이었다. 제2공화국에 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는 5·16군사정변 세력과 그 뒤를 이은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선전한 결과다. 제2공화국의 붕괴는 미국의 對한반도 정책과도 관련된 것이었다. 장면 정부가 추진한 ‘10만 감군’과 남북화해 정책 등은 한반도를 반공의 보루로 삼으려 한 미국의 세계전략이나 입맛에 맞지 않았다.
미국이 버린 제2공화국, 나약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았다

제2공화국의 정치인들. 장면 총리(왼쪽에서 세 번째), 곽상훈 민의원의장(오른쪽에서 세번째), 박순천 의원(오른쪽에서 네번째).

제2공화국은 1960년 4·19혁명의 결과 수립돼 5·16군사정변으로 붕괴했다. 한국 헌정사상 유일무이하게 내각책임제를 택한 제2공화국은 1960년 8월23일 출범한 장면(張勉) 내각이 이듬해 5월18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내각 총사퇴를 의결할 때까지 약 9개월간 존속했다. 이른바 이승만의 ‘민주독재’와 박정희의 ‘군사독재’ 중간에 자리 잡은 이 짧은 기간은 한국인이 오랫동안 꿈꾸어온 민주주의 구현의 출발점이자 좌절당한 지점이기도 하다.

제2공화국에 대한 평가는 호오(好惡)가 합치하지 않는 평행선을 달린다. 심지어 동일한 인물의 제2공화국에 대한 기억도 극과 극을 달린다. 1961년 쿠데타 직후와 1966년 장면 총리가 서거한 뒤 당대의 논객 양호민이 내린 양극단의 평가가 대표적 사례다.

첫째, 민주당 내각에는 소극적으로나마 민족해방운동의 투사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당시 아(시아)·아(프리카) 신생국의 지도층은 대개 반(反) 제국주의적 독립운동에서 혁혁한 경력을 쌓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집권당으로서의 민주당이 대중의 마음으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정신적 권위를 가지지 못했음은 당연했다. 둘째, 민주당은 보수 정당으로서 자체의 이상과 경륜을 가지지 못하고 정치는 현실이라는 구실을 내세우며 잔재주로 눈가림을 해 이권을 찾기에만 바빴다. 경륜도 식견도 이상주의도 없는 퇴폐한 집단으로부터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릴 에너지는 나올 수 없다. 셋째, 민주당은 훈련과 기율과 정신적 통합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그 지도체제는 극도로 문란했으며 사색당쟁의 양상을 방불케 하는 당내의 복잡한 파쟁이 속출해도 이것을 통제하고 내부적 단결을 회복할 지도력이 없었다. 그리하여 말기의 민주당은 오합지중으로 타락하고 말았다.(양호민, ‘민주주의와 지도세력’, ‘사상계’ 1961년 11월호)


이러한 비극은 우리 국민이 현명치 못했던 때문도, 당시의 집권층이 반드시 무위무능(無爲無能)했기 때문도 아니다. 일부의 논자는 4·19이후 시민의 자유가 지나치게 허용된 나머지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조성됐다고 하지만 장면 시대의 자유는 민주주의라는 척도에서는 당연히 인정돼야 할 정도의 것이지 그 자체는 결코 과잉도 방종도 아니었다.

…장면 정권 말기에는 국민이 이미 데모에도 염증을 느끼고 가두행렬과 성토가 점점 퇴조하고 안정과 질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움직이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다. 장면 정권이 강경정책을 쓰지 못했다는 비난을 흔히 듣지만 민권투쟁의 금자탑으로 찬양되던 4·19의거 이후의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민주주의를 자처하는 어떠한 정권도 민권을 탄압하는 수법으로는 국민을 옳게 지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만일 장면시대가 더 오래 존속해 경륜과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면 획기적인 치적을 쌓을 수 있었을 가능성을 지금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극히 단명했던 이 시대는 뜻하지 않은 정변에 의해 비극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 시대는 수십 세기를 시달려온 이 나라 국민에게는 민권과 자유의 황금시대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깨끗하고 온유했던 민주주의적 지도자를 보내면서 솔직하게 피력한 필자의 소회가 고인의 과거를 욕되게 하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양호민, ‘장면시대 그 의의와 평가’, 조선일보 1966년 6월12일자)


독재정권의 왜곡선전

그간 이 비운의 공화국과 그 지도자들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부정 일변도였다. 박정희 정권하에 이루어진 산업화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쿠데타 세력을 감싸기 위해 제2공화국을 쿠데타가 없었어도 붕괴하고 말았을 취약한 정권으로 보려 했으며, 이에 맞서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오길 꿈꾼 이들에게도 제2공화국은 4·19혁명의 성과를 지키지 못한 무능한 정권으로 비쳤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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