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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원형경기장’에서 결투만 하다 끝난 ‘검투사 정치’

노무현 2003-2008, 빛과 그림자 - 정치

  •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parkp@snu.ac.kr

‘이념의 원형경기장’에서 결투만 하다 끝난 ‘검투사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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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낡은 정치 개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당선됐다. 노 대통령이 가장 자신 있어 한 국정 분야가 ‘정치’였지만, ‘노무현식 정치’는 5년 내내 논란의 한복판에 있었다.
‘이념의 원형경기장’에서 결투만 하다 끝난 ‘검투사 정치’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2월4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정치 분야에서 노무현 정권에 대한 평가는 F학점이다.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나타난 이명박 후보와 차점자의 530만 표차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고대 그리스의 아레오파고스 법정을 연상시키는 ‘민의(民意)의 법정’에서 내려진 심판은 ‘쓰나미’와 같은 것이었다.

‘민심 쓰나미’는 갑자기 들이닥쳐 노무현호(號)를 단번에 뒤엎어버렸지만 그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의 재·보궐선거와 2006년 지방선거는 2007년 대선 패배의 재앙이 임박했음을 경고했다. 하지만 노 정권은 설마 설마하면서 고치지 않았다.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이 시중에 화제가 될 정도로 국민이 노 정권의 심연(深淵)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상황에서 정권 관계자들은 석고대죄는커녕 자신들의 진면모가 보수언론에 의해 왜곡됐으므로 스스로 평가를 해보겠다고 ‘참여정부평가포럼’을 만드는 만용까지 부렸다.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참여정부는 글자 그대로 ‘폐족(廢族)’이 됐다. 문제는 재앙이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노 정권을 지탱하던 좌파진보까지 ‘연좌제’에 걸릴 위기에 몰렸다.

노 정부의 속성을 반추할 만한 우화가 있다. 노부부가 상대방을 업어주면서 한 마디씩 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업으면서 “왜 이렇게 가볍나. 머리가 비고, 가슴이 비고, 정신이 나갔으니 가벼울 수밖에…”라고 말한다. 그러자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업고는 “왜 이리 무겁나. 머리는 돌로 가득 차고, 얼굴에는 철판을 깔고, 강심장에다 간덩이까지 부었으니, 무거울 수밖에 …”라고 응수한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무거움

국민은 노무현 정부에 대해 국리민복(國利民福)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정치를 기대하기보다는 정부의 존재 그 자체를 견뎌왔다. 집권 386의 무능과 오만, 아마추어리즘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대놓고 자신의 불만과 회한을 표출하고 짜증을 내곤 했다. 그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면 더 큰 대형사고를 칠 것 같은 기세였기에 국민은 내놓고 말은 못하고 냉가슴만 앓을 뿐이었다. 국민은 한번은 그 가벼움에 대해, 또 한번은 그 무거움에 대해 한탄하면서 번갈아가며 불만을 토로한다.

노 정부는 도덕적 우월성과 ‘선출된 권력’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1700년 전 고대 로마의 황제검투사인 막시무스(Maximus)를 모델로 삼아 자신의 임무와 역할을 정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모든 것을 무찌르려고 했다. 막시무스는 원형경기장에서 200번 이상 다른 검투사들과 싸웠고 모두 승리했다. 누가 감히 황제검투사와 겨뤄 이기는 불경(不敬)을 저지를 것인가.

국정(國政)을 원형경기장으로 본 21세기 한국의 대통령은 처음에는 언론, 다음에는 강남, 이어 검찰, 교육, 보수층, 시장경제와 싸웠으며 종국에는 국민과 맞붙어 싸웠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막시무스와는 달랐다. 노 정부는 비판적 언론이나 야당과의 작은 ‘전투’에서는 더러 이겼지만,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큰 ‘전쟁’에서는 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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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parkp@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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