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건국 60주년 大특집

한국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그 향방은?

‘한민족 공동체주의와 행복추구 민주주의로…

  • 탁석산 철학자·‘한국의 정체성’ 저자 stonemt@naver.com

한국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그 향방은?

2/4
‘잘살아보세’

식민지배, 동족상잔의 전쟁, 그리고 무능한 국가. 이런 시대를 살아오면서 민주주의를 꿈꿀 수 있었겠는가. 민주주의는 지켜야 할 사유재산이 형성된 후에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끼닛거리를 걱정하면서 개인의 인권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이후 생활의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이 시대는 5·16군사정변 이후부터 문민정부 이전까지를 말하는데 산업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기 시작한 시기다. 이 시기는 또한 격렬한 민주화 항쟁 시대로 독재에 맞서 한쪽에서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은 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대중은 3선(選) 개헌과 유신에 찬성표를 던졌다.

사람들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고 여가를 누리는 생활을 맛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군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는 경제를 앞세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비켜갔다. ‘하면 된다’ ‘잘살아보세’ 등의 구호가 이 시기에 유독 호응을 얻은 것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신분 상승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보다는 여가를 즐기는 생활이 우선한다고 보았다. ‘마이 카’ 시대가 주는 기쁨을 민주주의로 대체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대중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유보시켰을 뿐이다.

생존, 생활시대에 민족주의는 잠복했다. 먹고사는 문제에 바쁘고 재산 형성에 몰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기보다는 적대 집단이 되었다. 즉 남북한 모두 체제경쟁에 몰두했다. 남한과 북한 중 어느 체제가 더 우월한지를 두고 치열한 경쟁관계에 놓이게 됨으로써 민족 개념은 쇠퇴했다. 민족보다 이데올로기가 우선하는 시대였지만 온전한 국가가 수립됐다는 의식은 여전히 없었기에 민족주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잠복했을 뿐이었다. 통일이란 구호가 양쪽에서 모두 건재했다.



민주주의의 싹

행복시대는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말한다. 사람들은 지킬 만한 사유재산이 생기면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게 된다. 재산이 없을 때에는 정치적 자유나 인권보다는 생존에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이것은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서양에서도 사유재산이 형성된 후에야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가 싹을 틔웠던 것이다. 자신의 재산을 누구로부터 지키는가? 서양에서는 국왕으로부터 지키려 했다. 따라서 국왕을 견제하는 많은 법이 만들어졌고 점차 시민이 중심이 되는 제도가 정착됐다. 시민들은 자신의 재산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택한 것이다.

한국도 상황은 비슷했다. 산업화를 통해 개인이 재산을 소유 내지 축적하게 되자 자신의 재산과 정치적 자유를 지키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1960년 4·19혁명 때나 유신 독재 시절의 반정부 시위 때와는 달리 넥타이를 맨 일반 시민이 드디어 거리에 나섰다. 1987년 6월 민중항쟁이 그것이다. 고문 사건으로 촉발된 민주항쟁은 지식인이나 학생이 중심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 다수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한국에 민주화 시대가 왔다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대중은 김영삼, 김대중이라는 민주화 기수를 대통령으로 택함으로써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시기는 산업화 시대에 비해 경제성장이 더디고 사회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대중은 사적 재산을 어느 정도 축적하였기에 큰 요동 없이 지탱될 수 있었다.

행복이 화두가 된 시대

여가를 즐길 만한 경제적 지위가 되면 사람들은 정치적 권리도 요구하지만 동시에 행복도 생각하게 된다. 민주화 시대에 사람들은 행복해지고 싶었다. 개인의 행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당연한 가치는 아니었다.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개인의 행복 추구는 사실은 얼마 되지 않은 낯선 개념이다. 생존의 시대에도 생활의 시대에도 개인의 행복은 우선하는 가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생활이 안정되고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면서 행복이 서서히 삶의 중심에 들어서게 됐다. 동네마다 문화센터와 구민회관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더 이상 백화점에 물건만 사러 가지는 않게 되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행복하게 살라고 충고했지만 자식들은 이미 자신의 행복을 우선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행복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긴 해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패배자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2/4
탁석산 철학자·‘한국의 정체성’ 저자 stonemt@naver.com
목록 닫기

한국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그 향방은?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