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호

김정일 유고, 그 후는?

‘北 군부와 특급 채널’ 대북 사업가의 평양발 긴급 리포트

  • 입력2008-10-07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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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우습다고 해야 할까. 9월 초순에서 중순으로 이어지는 며칠 사이 한반도의 오늘에 대해 생각하자니 든 생각이다. 특히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병설이 퍼지는 광경을 보고 나서부터다. 이건 코미디보다 못한 장면이었다. 정보력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넘쳐나고 제각각이어서 그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가운데 현실적인 대처방안이 보이지 않아서 탈이었다. 누굴 믿어야 할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북한 정보’의 속성을 다시 한번 보여준 해프닝이었다.

    이 일을 거친 결과가 또다시 ‘북한 정보는 역시 안개 속’이라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비극이다. 이 사태를 통해 배우는 게 있어야 하고, 거기서 정책이 나와야 한다. 개입 당사자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분단 현실에서 무작정 이러니저러니 혼자 목청껏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대안’이 될 수 없다.

    AP통신, 뉴욕타임스 등이 긴급하게 김 위원장이 뇌졸중을 맞았다는 기사를 타전한 것은 9월9일이었다. 이를 받아 한국 정부에서도 바로 맞장구를 쳐서 “사전에 (첩보로) 알고 있었다”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미 국무부는 대변인을 통해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그 와중에 나온 이야기는 꽤 호들갑스러웠다. 6~8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핵 통제 문제가 운위된 것은 약과에 속한다. 한 언론에서는 ‘뇌졸증’과 ‘뇌졸중’마저 구분하지 못하는 기사도 나왔다. 영어 ‘strok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촌극이다. 뇌졸중은 뇌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손발마비, 언어장애, 호흡곤란 등 신체적 정신적인 병증이 한꺼번에 오는 걸 말한다. 일반적으로 ‘stroke’라는 단어는 뇌졸중을 포함해 다른 형태의 발작(發作)도 포괄하는 표현이다. 이 단어가 가리키는 병증이 아주 넓은 셈이다. 그러고 보면 김 위원장의 과거 병증까지 감안해 꽤 영특한 단어를 상황에 맞게 꺼낸 해외 언론의 재주도 칭찬해줄만하다. 여하튼 그 순간부터 중병설은 대세가 됐다.

    상황이 마무리되어가는 추세에 이르자 이런 말도 나왔다. “병이 있었으나 (수술 후) 회복단계다.” 이건 한국 정보기관의 친절한 설명이다. ‘(오래전에 알았으며 지금도) 심각하게 사태에 대비한다’는 청와대의 발언이 나온 뒤 정리단계의 해설쯤 되는 셈이다. 이 말에 따라 사태는 하루 반나절 만에 수그러졌다. 사실이 정말 그런지는 나중에 다시 따져볼 일이다. 보다 중요한 포인트는 이번 사태가 과연 ‘예상하지 못한 일인지 아닌지’ 하는 점이다. 문제는 바로 이 대목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9월9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수립 60주년 기념일이었다. 한국에서도 ‘건국절’로 한바탕 소란스러운 논쟁을 벌였지만, 분단국가에서 이른바 ‘꺾어지는 해’에 다른 때보다 더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사람 나이 60도 환갑이라 해서 기념하는데, 하물며 제각각 수립한 정부라도 60년이라면 그 의미가 남다르지 않으랴. 그래서 아주 잘 차려진 잔칫상을 기대했더니 ‘주인’이 안 나타나는 상황이 벌어지자 그 이유를 찾게 된 것이다. 원인은? 그야말로 ‘유고(有故)’, 뭔가 사건이 생긴 사태였다.

    소문은 꼬리를 물더니 마침내는 김정일 사후의 후계구도가 어떻다거나 심지어 ‘북(北) 정권, 한국으로 흡수될 수도’라는 기사까지 등장했다. 9월10일 오후 지하철 무가지에 등장한 연합뉴스 인용 기사의 제목이다.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이 예상한 4개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가 그랬다. 각론은 간단하다. 3대째 세습, 군부 통치, 집단지도체제, 그리고 한국으로의 흡수가 4대 시나리오라는 얘기였다.

    한마디로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격언이 딱 맞다. 차분하지 않다. 한국만 놓고 보자면 이런 말은 1994년 7월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한 직후 김영삼 정권이 곧바로 ‘북한 즉시 패망론’에 젖어들었던 광경을 떠오르게 한다. 그로 인한 오판이 얼마나 긴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1994년의 기억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김 위원장은 1942년 2월16일생, 우리 나이로 67세이고 만으로 66세다. 나이가 이쯤 되면 누구도 건강을 장담하기 어렵다. 2005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평양 방문 때, 2006년 1월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을 평양에서 맞이하던 첫날에도 그의 건강 이야기는 언제나 관측자의 화젯거리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연로해간다는 건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당사자가 직접 “심장병, 당뇨병이라고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함으로써 그런 병이 있다는 걸 거꾸로 밝힌 적도 있다. 체형만 봐도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부인하기가 어렵고, 여러 차례 특별한 진찰과 검진, 수술을 거친 흔적도 드러났다.

    그러나 북한의 현 상황이나 향후, 그 밖의 것들에 관한 말들은 모두 추측일 뿐이다. 오죽했으면 “밀폐된 국가여서 정보가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미국 당국에서조차 나왔을까. 그런데도 끊임없이 분석하고, 또 분석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근거는? 그런 건 없다. 제3자가 재검증하기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불확실한 정보와 엉터리 정보 소식통이 난무하는 것일까?

    이번에도 예의 꽤나 강력한 ‘설(說)’과 정보통이 등장했다. 미 국방부 출입기자가 9월9일 소식을 들고 나왔고, 그게 확산됐다. 소스는 미 중앙정보국(CIA)을 거쳐 다시 한국의 정보기관, 외교통상부 재외공관, 청와대로까지 이어진다. 여러 채널에서 재확인을 거치니 사실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제나 결론은 여전히 ‘미확인’이다.

    정부는 호들갑스럽게 장관회의를 개최했다. 언론은 국가 비상사태 운운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천편일률적으로 외신보도가 그대로 인용되고, 다시 북한 패망과 혼란을 전제로 한, 이른바 ‘시나리오’가 줄을 잇는다. “김정일 위원장 건강에 이상 없다”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교도통신 인터뷰 정도가 찬물을 끼얹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제 모든 이의 관심은 확실히 ‘김정일 사후의 북한’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런 모양새가 오히려 더 불안하다. 1994년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상대가 곧 패망할 텐데 대화가 무슨 소용이냐’ 식의 접근법, 그런 생각이 횡행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최근 상황을 꼼꼼히 따져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야 뭔가 남는 게 있을 것 아닌가. 누구도 이것이 옳다 틀리다 말을 할 수 없을 때는 상황을 면밀하게 되짚어보는 수밖에 없다. 이번 사안이 워낙 중대한 만큼 어쩌면 이 일을 계기로 어느 나라의 정보기관이 우수한 정보라인을 가지고 있는지 검증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제대로 맞히지 못한 국가나 기관은 일단 정보수집과 분석력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8월7일부터 9월12일까지

    8월7일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김영남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그는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해 우방궈, 시진핑 등 쟁쟁한 인물들과 연쇄회담을 가졌다. 6월 시진핑 국가 부주석 방북 이후 형성된 북·중 간의 끈끈해진 밀월이 눈에 선히 보였다. 그 무렵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이런 유의 대화가 주종을 이뤘다. “올림픽 기간에는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는 올림픽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조만간 우리식대로 행동할 것이다.” 대화 내용만 본다면, 북한과 중국 사이에 6자회담에서 제기된 문제나 북미·북일 관계 등의 사안에 대해 상당한 교감이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이 북핵 프로그램 검증체계를 들이밀면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지 못하겠다고 압박하기 시작한 시점은 바로 그 직후다. 8월11일 테러지원국 해제 시한이 지나면서 백악관은 본격적으로 상황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서명 안 하면 해제 없다”는 말이 미국의 기본 원칙처럼 됐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거부한다. 북의 주장은 간결했다. 북핵 문제 해결은 1단계 가동 중단과 폐쇄, 봉인을 하는 것이고 2단계에서 신고와 불능화를 하며, 3단계에서 검증 및 폐기를 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이라는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미국이 꺼낸 검증체계라는 원칙은 2단계 사안이 아니라는 게 북한의 주장이고, 이는 2·13합의나 10·3공동선언의 애매한 문구에서 이미 예견됐던 문제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북핵 문제 혹은 6자회담은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관련 사안을 챙기는 대표적인 이슈다. 그는 이 문제를 자신의 성과물로 만들려는 의욕을 갖고 있고, 이 때문에 ‘북한 vs 미국’이라는 대결구도와 협상은 줄곧 팽팽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직후인 8월14일, 인민군 제1319부대 방문을 끝으로 김 위원장은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18일, 테러지원국을 해제하지 않는 미국에 대한 북한 측의 비난 포화가 시작된다. 해외에서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은 대체로 8월 말경에 벌어졌다는 게 정설인 듯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9월 초 북한 경제대표단이 동남아 국가로 떠났다는 사실이다. 이는 분명 식량을 구하기 위한 방문이라고 봐야 하고, 그런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 정상적인 공식 경제사절단이라면 반드시 ‘꼭대기’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 그들이 베이징을 거쳐 제3국으로 갈 정도였다면 당시만 해도 김 위원장의 건강은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당연히 그때까지 ‘사건’은 대외적으로 거의 불거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최근 언론이 전한 중병설, 와병설, 사망설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8월 중순 이후 프랑스, 독일 의료진의 방북에 따른 후속 추론에 가깝다. 거기서부터 뇌졸중이라는 말이 나왔고 어떤 언론은 중풍까지도 끄집어냈다. 그렇지만 적어도 9월 초까지 평양에는 별다른 요동이 감지되지 않았고 어떤 국가, 언론도 이 문제를 꺼내기가 버거웠다. 자칫하면 오보, 오정보로 망신당하기 십상인 시점이었다.

    여기서 특기할 사실은 중국 고위사절단이 정권수립 60주년 기념식에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차이우(蔡武) 문화부장이 이끄는 경축사절단이 간 게 전부다. 이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단순히 전례에 비추어 낮은 수준이라는 것 때문만이 아니다. 북·중 간에는 8월 중순 이후 대규모 차관 도입 협의를 위해 상당히 심도 깊은 이야기가 오갔으며, 9·9절에 이를 협의하기 위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중국을 방문한다는 게 베이징에서는 거의 정설처럼 이야기되고 있던 터였다.

    이런 중대한 협의 의제가 있는 상황에서 상호방문 사절단의 직급이 확 낮아졌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올림픽이 끝난 후 중국의 행보, 특히 북·중 관계의 향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사전에 김 위원장의 병증 상태를 알고 문화부장 수준의 ‘가벼운 축하사절’을 꾸린 것 아니냐는 추측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9월9일 오전 행사가 오후로 미뤄진 것을 두고 ‘건강이 괜찮으면 참석하기 위해서 미룬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트릭인가 사실인가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에 대해 미국에서는 이를 일종의 트릭(trick)으로 보는 시각도 나왔다. 대선을 앞둔 부시 행정부가 테러지원국 해제조치 발효를 지연시키고 있고 앞으로도 이러한 태도를 변경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북한이 굳이 6자회담을 포기하겠다고 표명하고 나설 상황도 아니다. 핵 시설 봉인을 해제하고 재처리 시설 일부를 원상복구하려는 북측의 움직임이 ‘누구의 지시에 따른 것이건 간에’, 김 위원장이 이를 몰랐다고 하기 어렵다는 건 분명하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의 건강을 둘러싼 일련의 해프닝 역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해 북측이 벌인 의도적인 심리전일 수 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김정일 유고, 그 후는?

    9월10일 김성호 국가정보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 이상설과 북한 정세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붕괴(meltdown)’라는 책을 통해 북한 정권과 체제가 안정성이 없고 붕괴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 바 있는 마이클 치노이 전 CNN기자(현 국제정책태평양위 연구위원)는 아예 “(김 위원장의) 행사 불참을 통해 북한 요구사항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이 사태를 만든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현재의 교착상태를 뚫을 수단 가운데 하나로 ‘노련한 협상가’인 김 위원장이 던진 승부수라는 해석이다. 치노이는 한때 “북한이 미국에 정치적 위임을 함으로써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까지 말한 인물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 군부와 실용파 간의 내부 갈등구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김 위원장이 핵 유지를 고집하는 군부와 식량과 악화된 경제사정을 해소하려는 실용파 사이에 끼여 고민하는 와중에 이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북한 내부 사정을 본다면 전혀 근거 없는 분석은 아니다.

    특히 9월11일 당시 주요국들이 밝힌 입장을 복기해보면 묘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를 들여다보는 각국의 처지가 고스란히 엿보이는 것이다. 먼저 미국의 경우, 데이너 페라노 백악관 대변인은 “불투명한 사회여서 정보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고,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아예 “코멘트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일본은 내각정보조사실을 산하에 둔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이 “이례적이며 정보수집을 하고 정보도 있다. 그러나 밝힐 입장이 아니다”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중국은 장위(姜瑜) 외교부 대변인이 “관련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딱 잘라 말했다. 차이우 부장이 평양에 있는 상태임을 감안하면 그의 말은 ‘알지만 부인한다’는 중국 특유의 외교화법으로 읽힌다. 상대적으로 일본의 적극성이 눈에 띄는데, 이는 언제나 한반도에 대해 공격적인 관심을 보이는 일본의 기본태도 때문일 것이다.

    가장 용감하게 사실을 ‘확인’해준 곳은 한국이다. 김성호 국가정보원장은 9월10일 “뇌졸중 뇌일혈 중 하나로 보이나 특정하긴 어렵다. 수술 후 회복단계다”라는 말로 어느 나라보다도 확실해 보이는 정보를 내놓았다. 병증 두 가지와 현재 김 위원장의 상태까지 언급한 것은 세계에서 처음이었다. 여기에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중병설은) 구문이며 오래전부터 정보를 입수해서 점검해왔다”고 말했다. 익명의 고위 관계자는 익히 거론된 후계자 문제와 관련해 “친족의 3대 승계는 어렵다”고 보는 견해도 피력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일단 중병설은 사실이 되어가는 추세다. 공식적으로 드러난 근거는 딱 한 가지, 김 위원장이 9월9일 북한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 하나로 ‘김정일의 유고에 대비하자’는 모든 논쟁이 시작된 셈이다. 북측의 교묘한 트릭이라는 주장보다는 실제로 와병했다는 분석이 분명 대세를 차지하고 있고, 지금은 회복 중이라는 한국 정보기관의 말에 무게가 실렸다.

    서울의 능동적 미래는

    여기서 다시 묻는다. 과연 그런가?

    이번 사안은 다음의 세 가지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전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당면한 숙제라는 점까지 고려해서 봐야 한다. 감상적인 분위기나 턱도 없는 자기만족의 환상에 젖어 판단할 일이 결코 아니다.

    첫째, 김 위원장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심장병, 관절염, 고혈압 등은 익히 알려진 병증이고 체질이나 외양으로도 그렇게 보인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든 유고 사태는 벌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떠들기 보다는 그런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북한과의 관계는 어떤지,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화라인은 구축되었는지를 따져보는 게 더 현명하다.

    지금까지 이를 드러내놓고 논의하지 않은 것은, 외교적으로 ‘최고지도자의 건강문제’는 절대 거론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내정간섭으로도 볼 수 있는 민감한 주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떤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얼마든 자체적인 평가와 판단이 가능하다. 무작정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기를 기다린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일이다.

    둘째, 후계자 혹은 지도체제의 문제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이사는 이를 ‘핵무기 통제의 싸움’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혁명의 정통 승계에 대한 내부갈등’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일단 싸움의 형식은 반드시 그렇게 구성될 것이다. 누가 당위를 갖고 있는가 혹은 그러한 당위를 뒷받침할 힘을 누가 갖고 있는가가 판가름 나는 권력 싸움이다. 명분과 힘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다.

    3대 승계로 이어지든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되든, 그도 아니라면 누군가 제3의 인물이 추대되든 간에, 그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리라는 사실과 그러한 갈등을 봉합하는 절차가 필요하리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사이 동구권 국가들이 붕괴될 때 벌어진 상황이 북한에서도 분명 고스란히 재현되리라고 예상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전례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북한 내부의 권력 갈등이 외부로 터져 나오기를 무작정 예상하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오히려 내부 갈등이 봉합될 경우, 그 이후의 준비가 더욱 중요하다.

    셋째, 북한이 불안정해지는 경우 이에 관여할 수 있는 국가가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결론은 이미 대략 정해져 있다. 마이클 치노이의 기대처럼 북한이 미국에 정치적 위임을 할 거라는 생각은 내가 보기엔 근거가 빈약한, 치기 어린 한 개인의 소망에 불과하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북한에 관여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미국, 일본, 한국 모두 직접 개입할 수 없다. 이들 국가의 개입은 곧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명분을 만들어 북침 통일을 하자는 발상은 일종의 망상이다. 현 상황에서 그런 가능성에 기대는 건 금물이고 막연한 환상 이상의 의미가 없다.

    한국은 어떨까. 사실상 아무런 역할이 없다. 누가 후계자가 되건 집단지도체제가 만들어지건 간에 휴전선에 이상만 없다면 개입 가능한 여지가 전혀 없다. 북한 내부의 분위기로 보자면 평양이 먼저 서울에 손을 내밀 가능성은 전무하다. 군과 당이 모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한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한·미·일 동맹에 대한 북한의 기대감은 전무하다는 게 정설이다. 적대감만 오히려 고조된 상황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유사시 북한이 중국에 기대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움직임이 벌어질 경우 막을 방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선제행동을 취할 당위나 명분도 없다. 설혹 북한에서 내전이 벌어진다 해도, 도움을 요청하는 주체가 정당한 경로를 거친다면 그 대상은 역시 중국이 유력하다. 미국에 손을 내밀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보는 게 옳다. 개혁과 개방을 미국 손에 맡길 정도로 북·미 사이에 신뢰가 형성된 바도 없다. 미국이 북한에 개입하기 위한 군사적인 전략은 성립되지 않았고, 앞으로 조성될 여지도 크지 않다. 미국이 섣불리 개입할 경우에는 오히려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반도의 몫이다.

    한국만의 독자적 입지

    이번 사태가 해프닝이든 혹은 일정 수준 팩트가 있는 일이든, 한반도 주변 국가에 던지는 메시지는 살벌할 정도로 의미심장하다. 드디어 한반도에서 지난 60년의 대결구도와는 다른 ‘새로운 단계’가 형성될 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각국은 이제야 이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이는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니라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올 수도 있다. 현대의학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인간 수명을 상당기간 연장시킨다. 그러나 언젠가는 김 위원장도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금 벌어진 해프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만일 김 위원장이 아무도 몰래 후계자를 잘 관리하고 있다면, 또 그럴 만한 시간을 번다면, 이후에는 또 다른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 중병설이나 사망설이 의미를 잃는 상황도 가능하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후계문제에 대한 논의는 불투명하고, 그 불투명성이 외부의 논의를 한껏 뜨겁게 달군다. 김정일 체제가 불안정하다는 논쟁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김정일 유고, 그 후는?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9월5일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일본 측 수석대표와 연쇄 개별회동을 한 뒤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런데 논쟁의 추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의 일’일 뿐이지 ‘우리의 일’로 고민한 흔적은 전혀 없다. 대부분 능동적인 대처보다 수동적인 방어가 목적이 될 뿐이다. 분석도 그래서 의미를 잃는다. 이를테면 핵무기 통제권의 부실이나 난민 발생, 내란 발생 등의 부정적인 상황이 벌어질 경우의 대책, 그로 인해 주변국에 피해가 생긴다면 어떻게 대응한다는 작전 수준이다. 지극히 상식적이다. 미국은 한미 간에 이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일반 국민은 모른다. 일본까지 개입한다면 최악의 경우 일본군이 북한 땅을 밟는 시나리오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긴 하지만,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이번 해프닝에서 드러낸 대처 역량을 놓고 보면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60년 분단 현실에서 가장 큰 사건이 실제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으며 그 첫 경고가 이번 일을 통해 울리기 시작했다는 게 내 판단이다. 결국 이에 대한 대비의 출발점은 과연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남북한이라는 양자관계가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있다. 막연한 반공·반북주의만으로 오늘과 내일의 한반도 돌발사태에 대응하기는 어렵다. 시대는 바뀌었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의 입장은 서로 다르며, 그 가운데 한국만의 독특한 입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남북 간의 채널을 닫아걸고 있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여전히 아마추어 수준이다. 부디 이번 해프닝의 교훈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冬

    북한 정권수립 60주년 경축행사가 열린 9월9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행사 참가자들이 횃불을 이용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름을 만들어 냈다. 김 위원장이 이날 열린 군사퍼레이드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 불참하자 그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설이 확산됐다.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숙소인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념 촬영을 한 뒤 정상회담을 위해 자리를 옮기고 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 때문에 그의 건강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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