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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마타하리’김수임 사건 美 비밀문서 집중분석

‘여간첩은 고문 조작…베어드 대령의 對남로당 정보원?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한국판 마타하리’김수임 사건 美 비밀문서 집중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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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임 사건 다룬 美 비밀문서 ‘베어드 파일’ 김수임 아들이 찾아내
  • ●“기소사항 중 군사기밀유출 등 미군과 관련된 어떤 증거도 없다”
  • ● 베어드, 김수임 구할 수 있었지만 혼자 미국으로 도망
  • ● 이강국 “김수임 이용해 베어드를 만나 협력 약속” 진술
  • ● 김원일 “역사와 화해하고 역사를 바로잡는 건 정부의 몫”
  • ● 오재호 “김수임은 고문으로 들것에 실려 법정에 들어와”
‘한국판 마타하리’김수임 사건 美 비밀문서 집중분석
1950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수임. 그 앞에는 항상 ‘미모의 여간첩’ ‘한국판 마타하리’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는 광복 직후 남한 최고 권력자의 하나였던 주한미군 헌병사령관 베어드 대령의 내연녀였다. 동시에 북한 최고 실력자의 한 명이었던 이강국(북한 초대 외무부장)의 애인이었다. 1946년 미 군정청이 이강국에 대해 체포령을 내리자 베어드 대령의 차를 이용해 월북시켰는가 하면, 이강국의 지시에 따라 남한의 군사비밀을 빼돌리는 등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1950년 4월 체포돼 6월 사형당했다. ‘애인’ 이강국 역시 6·25전쟁 종전 직전 북한에서 간첩혐의로 처형당했다.

사라진 재판기록

이처럼 그는 반공의식을 고취시킬 대표적 사례였을 뿐 아니라 삼각관계, 죽음, 비극적인 사랑 등 극적인 요소가 많아 오랫동안 영화와 드라마, 소설의 단골 소재로 인구에 회자됐다.

1950년 미국잡지 ‘코로넷(Coronet)’에서는 그를 ‘남한 사교계의 여왕은 빨갱이였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하며 ‘미국을 배신한 한국인 팜파탈’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이야기는 미국에서도 드라마로 여러 편 제작될 정도였다. 로널드 레이건이 주연한 드라마에서는 ‘아시아의 마타하리’로 묘사됐다. 워싱턴의 칼럼니스트 드류 피어슨은 ‘그의 간첩행위가 6·25전쟁이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도화선이 됐다’며 6·25전쟁을 유발시킨 장본인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나는 속았다’(1963),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1974), TV드라마 ‘제1공화국-여간첩 김수임’(1981), 실화소설 ‘특별수사본부-여간첩 김수임’(1980) 등을 통해 주로 ‘붉은 여간첩’ ‘한국판 마타하리’로 그려졌다. 또한 가택수색을 하러 온 수사관들에게 술상을 차려주는가 하면, 미리 몸단장을 할 수 있도록 사형 전날 알려달라고 당부했다는 ‘요부’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하면서 김수임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사랑에 목숨까지 바친 ‘순수한 여인’, 사랑 때문에 간첩행위까지 했으나 결국엔 사랑마저 이용하는 공산주의자에게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은 ‘가엾은 여인’으로 그려졌다. 배우 윤석화가 김수임 역을 맡은 연극 ‘나, 김수임’(1997), 김수임의 대학후배 전숙희씨의 실화소설 ‘사랑이 그녀를 쏘았다’(2002), 드라마 ‘서울 1945’(2006) 등이 그것이다.

학계 일각에선 ‘남북대립 상황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됐다’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과 미군정의 과도기에 벌어진 정치게임의 희생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사건의 진실을 파악할 자료가 너무 빈약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규정상 영구보존해야 하는 판결문 등 재판기록마저 행방불명이다. 앞뒤의 사건기록과 판결문은 다 남아 있는데 김수임 사건 기록만 사라졌다. 따라서 언제 사형이 집행됐는지조차 공식기록이 없다.

그런데 최근 미국 AP통신에서 그의 죽음과 관련 새로운 시각을 보도했다. 비밀 해제된 ‘베어드 조사보고서(이하 베어드 파일)’ 등 미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발굴한 1950년대 기밀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는 것. 사건 자체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베어드 파일’은 미 육군성이 작성한 비밀문서다. 미 육군성은 1950년 8월2일부터 김수임의 자백 및 재판기록을 토대로 베어드 대령의 관련 여부에 대해 조사했다. 그가 정부(情婦)인 김수임에게 주한미군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는지 여부와 그녀의 공산주의 활동을 보호, 지원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게 핵심이었다. 3개월에 걸친 조사를 마친 뒤 300여 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게 ‘베어드 파일’이다.

기사에 따르면 김수임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한 사람은 바로 김수임의 아들 김원일(59·캘리포니아 라시에라대학·신학) 교수였다. 김 교수는 10년 넘게 어머니 김수임을 연구했는데, 그가 찾아낸 자료만 ‘베어드 파일’ 등 1000여 쪽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김 교수의 곁에는 김수임을 새로운 시각으로 영화화하려는 조명화(63) 감독이 있었다. 조 감독 역시 6년째 김수임을 연구 중이라 서로 자료와 정보를 교환해왔다.

김원일 교수가 발굴한 베어드 파일 등 미국의 기밀문서들과 김수임 사건 재판 보도 기사, 북한의 이강국 재판기록, 관련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김수임 사건의 진실을 재조명했다.

파란만장한 삶

출생에서 죽음까지 김수임의 삶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했다. 1911년 개성에서 빈농의 딸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 부모가 이혼하고 각각 재혼해 가계(家系)가 복잡하다. 어머니가 다른 이복(異腹)동생도, 아버지가 다른 이부(異父)동생도 있다. 가난으로 11세 때 민며느리로 팔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서울로 올라와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고, 총명한 머리로 이화여전 영문과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렇다고 외모까지 출중한 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베어드 파일엔 서울 옥인동 자택에서 찍은 2장의 사진을 첨부한 뒤 “알려진 것(대단한 미인)과 실제 외모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메모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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