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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의 정치철학적 분석

‘진보깡통’‘보수꼴통’은 선진 한국의 걸림돌

  • 김용신│정치철학 박사 yongshin@hanmail.net │

보수·진보의 정치철학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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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의 정치철학적 분석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유주의자 중 ‘리버럴’로 분류된다.

패스플레이와 러닝플레이

역사적으로 혁명주의자의 미래 청사진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왕권시대에는 세습적 왕이 중심이 된 군주주의 나라가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유주의적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자유주의 혁명의 슬로건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자유주의가 힘을 얻은 이후 자본주의의 모순이 하나둘씩 노정되면서 공산혁명주의자들이 ‘계급 없는 사회건설’을 통해 “능력껏 일하고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했는데 이 얼마나 흥분되는 말인가! 반대로 현실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에게 혁명은 공포의 대상이다. 혁명이 일어나면 자기의 모든 기득권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소외되거나 현실에 불만을 품은 사람에게 혁명은 처지를 순식간에 바꿀 절호의 기회로 느껴질 수 있다.

한 사회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순이 노출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보수주의자가 기득권을 유지하려면 나름대로 변신을 해야만 한다. 적어도 혁명을 통해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는 것보다는, 아쉽지만 불만 세력의 요구를 일부 수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주의자들은 혁명에 대항하고자 ‘개혁’이라는 용어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다. 혁명이 아니고 개혁을 통해 불만세력의 마음을 달래야만 기득권이 일시에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학에서는 “혁명의 위협 없이는 개혁도 없다” 는 말이 격언처럼 사용된다. 당연히 여기에서 개혁은 혁명의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같은 논리는 과격한 해석일 수 있다. 개인적 이익만을 강조한 사회변화 논리이기 때문이다. 사회변화를 미식축구경기에서 힌트를 얻어 설명해보자. 미식축구 전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패스플레이(Pass Play)인데 이는 쿼터백(Quarterback)이 긴 패스로 공을 연결하는 전술이다. 성공하면 한번에 먼 거리를 전진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패스한 공을 상대방이 빼앗으면 오히려 위험에 빠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한 전술을 러닝플레이(Running Play)라고 한다. 러닝백(Runningback)이 쿼터백에게서 볼을 전달받아 상대 진영으로 뛰어가는 전략. 러닝백은 상대방의 태클이 심하기 때문에 한번에 먼 거리를 뛰어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실패율을 낮추는 데는 이 전략이 유효하다.

이러한 전술을 사회변화 이론에 적용하면 보수세력의 개혁적 방법은 러닝플레이에, 그리고 급진세력의 혁명적 방법은 패스플레이에 빗댈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패스플레이나 러닝플레이가 모두 승리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수세력이나 혁명세력 모두 더욱 좋은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욕구가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결국에는 선악을 떠나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적 입장에서 어떤 방법이 더 효과적인지의 문제만이 남는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혁명을 통해 진화해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의 틀로 보면 어떤 혁명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또 다른 혁명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인간의 본질적인 비합리성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혁명은 절대성(Ultimate Expla-nation)이라는 그림자에 함몰돼 한 세력의 침몰과 다른 세력의 부상이라는 악순환만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해 포퍼(Karl Popper)는 혁명을 대신해 ‘점진적 개혁(Piecemeal Social Engineering)’을 부르짖는다. 그 핵심은 간단하다. 인간사회는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기에 혁명의 환상성을 줄이려면 사회 구성원의 불만을 완화할 수 있는 점진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포퍼의 주장을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라고 부르며 포퍼가 보수개혁 이론의 근거를 제공했다고 여긴다. 덧붙여 독일의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이 마르크스나 레닌(Lennin)의 공산혁명 이론에 대항해 수정주의(Revisionism)를 주장한 것도 혁명이 아닌 개혁을 통해 사회주의적 가치를 실현해보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진보는 무엇인가?

김일성체제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정치철학적 틀로 보면 진보주의(Progressivism)는 이념을 설명하는 용어로서는 생소하다. 굳이 논하자면 역사관(觀)을 설명하는 용어에 가깝다. 즉 헤겔(Hegel)의 역사관을 말할 때 진보주의라는 용어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헤겔은 역사는 정반합의 갈등구조를 통해 자유정신(Free Spirit)을 향해 진보한다고 보았다. 헤겔의 변증법을 물질적 면에서 재해석해 공산혁명을 강조한 마르크스의 역사관도 ‘계급 없는 사회(Classless Society)’를 향한 진보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진보사관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서양 정치철학에서는 정치이념과 관련해 보수의 상대적 개념으로 혁명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 사회에서는 보수의 상대적 용어로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분명 특이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왜 진보라는 단어가 사용되게 됐을까? 1956년 조봉암이 창당한 진보당은 이를 설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왜 조봉암이 정당 이름으로 진보라는 용어를 썼는지는 잘 모를 일이다. 그런데 조봉암이 초기에 사회주의자였음을 상기하면 그 답이 어렴풋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는 1925년 조선공산당 창립에 참여했으나 ‘노동계급의 독재’에 반대하면서 공산당을 비판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한다. 그러면서도 ‘자본계급의 전제’에도 반대하는 의견을 견지했다. 따라서 그는 사회주의적 가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의회를 통해 사회주의적 가치를 혁명이 아닌 방법으로 실현해보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왜 진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까? 아마도 마르크스의 역사관이 진보사관이라는 데서 착안한 것 같다. 실제로 당시 사회주의적 가치를 갖고 있지만 김일성의 혁명노선에는 반대하는 사람을 ‘진보세력’이라고 불렀다. 한마디로 진보라는 용어는 혁명은 아니지만 사회주의적 가치를 옹호하는 세력에게 붙여진 한국적 꼬리표였던 것이다.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적 좌파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수정주의적 시각을 견지하더라도 반공을 최우선으로 삼은 이승만 정권에서 사회주의적 가치는 용납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이른바 진보세력은 그 명맥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 조봉암도 1959년 간첩죄로 사형당한다. 그뿐만 아니라 박정희 정권에서도 사회주의적 가치엔 친북세력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으며 좌파적 의미를 갖고 있는 진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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