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호

북한 핵탄두 소형화 능력 추적

“리튬6 확보해 폭발력 강화 시도 확인… 노동미사일 탑재는 이미 가능”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9-07-07 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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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핵탄두 소형화 능력 추적

    파키스탄의 핵탄두 장착 가능 탄도미사일 샤힌1호의 2003년 10월 시험발사 당시 모습.

    최근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강경행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998년 대포동 1호 발사나 2006년 1차 핵실험 당시의 상황과도 사뭇 다르다. 지난 4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5월의 2차 핵실험, 곧바로 나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경고는, 핵과 미사일을 결합한 대미(對美) 핵 억제력을 노골적으로 과시하고픈 평양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 탑재 ICBM의 확보.’ 이는 사실상 북한이 추구하는 핵 무기화의 정점이다. 본토가 아닌 괌이나 하와이, 주일미군 기지만을 타격할 수 있어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 경우에도, 심지어 북한이 남한이나 일본의 주요 군사목표에 핵을 사용한 이후에도 미국이 핵우산을 가동하도록 결심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러한 능력이 바로 평양이 말하는 ‘핵 억제력’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북한이 돌파해야 할 기술적 관문은 크게 미사일 기술과 핵폭탄 소형화 기술로 나뉜다. 미사일 기술의 대표과제는 장거리를 날아간 탄두가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발생하는 마찰열 피해를 최소화하는 삭마제(削磨劑) 설계 기술. 북한이 이미 공언한 바 있는 ICBM 발사실험이 사정거리 연장보다는 대기권 진입을 시연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핵폭탄의 소형화·경량화는 핵실험을 실시한 국가가 예외없이 추구했던 목표다. 최근 사례만 봐도 인도는 1974년 1차 핵실험에 이어 1998년 2차 핵실험을 실시한 뒤 핵무기를 소형화했다. 파키스탄은 1980년대 중반에 핵물질을 뺀 핵폭발장치 폭발실험을 20여 회 실시했고, 이를 기초로 1998년 진짜 핵실험을 하면서 핵무기를 소형화했다.

    이 때문에 북한의 핵 소형화는 1차 핵실험 직후부터 각국 군사·정보당국의 주요 관심사였고, 2차 핵실험 이후에는 핵심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핵폭탄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한국으로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 전직 안보당국 고위관계자는 “분명한 것은 소형화했다 혹은 소형화할 수 있다는 증거가 확인된 적이 없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가능성의 영역일 뿐 사실로 입증된 건 매우 적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실제로 북한이 핵 소형화에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기술적 가능성을 하나하나 따져보는 작업이 유일하다. 핵폭탄을 구성하는 주요 파트의 무게를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 북한의 기술수준과 여건에서 과연 가능한 방법인지, 이들을 종합했을 때 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수준으로 크기가 줄어들지를 검토해보는 식이다. 국내외 핵공학 전문가들과 북한 과학기술 연구자들, 관련 부처에서 북한 핵 능력 판단업무에 관여한 전현직 당국자들의 분석과 확인된 사실관계를 종합해 이 질문의 답에 접근해보기로 한다.

    노동미사일을 주목하는 이유

    먼저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핵탄두의 조건을 생각해보자. 언뜻 크기가 큰 장거리 미사일이 더 큰 탄두를 탑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경우 탄두가 실리는 곳은 맨 윗단 꼭대기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은 낮은 단계 미사일을 조립해 만든 다단계 추진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직경이 크게 줄어든다. 대포통1호의 상부 추진체는 직경이 작아 핵폭탄을 싣기가 매우 어렵다.

    더욱이 북한 장거리 미사일은 사거리를 늘리기 위해 연료를 가능한 한 많이 넣는 방향으로 개발됐다. 그렇다 보니 남는 공간이 없어 탄두는 오히려 작아졌다. 한국 국방부의 ‘2008국방백서’가 1998년 발사된 대포동 1호의 탄두중량을 500kg 정도로 낮게 잡는 것은 이 때문이다. 2월말 미 의회조사국이 발간한 북한 탄도미사일 보고서는 대포동 2호가 하와이나 미국 본토까지 도달하려면 탄두중량이200~300kg에 불과해야 할 것이라는 분석을 소개하고 있다.

    반면 노동미사일(사거리 1300km)이나 2007년 실전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중거리미사일(IRBM·사거리 3000km)의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통단으로 만들어진 이들 미사일은 최대사거리에 못 미치는 목표물을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연료량을 줄이고 탄두중량을 늘리는 식으로 설계를 변경하는 게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 국방부가 판단하고 있는 노동미사일과 IRBM의 탄두중량은 700kg~1t 정도다. 그러나 MIT의 데이비드 라이트 박사와 러시아과학아카데미 티무르 카디셰프 선임연구원의 분석을 원용하면, 설계를 변경해 사거리를 500km로 줄이는 대신 최대 2t까지 탄두중량을 늘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들 연구진이 1994년 ‘사이언스앤드글로벌시큐리티’지(誌)에 기고한 분석은 노동미사일의 사거리와 탄두중량이 거의 반비례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 핵탄두 소형화 능력 추적
    두 차례 핵실험에 사용된 북한 핵폭발장치의 제원은 전혀 알려진 바 없기 때문에, 초보적인 수준의 플루토늄 핵폭탄으로 흔히 거론되는 ‘팻맨(Fat Man)’, 즉 1945년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한 핵폭탄의 설계를 원용해 추산하는 방식이 활용된다. 팻맨의 길이는 5m, 직경은 1.2m였다. 덩치만 놓고 볼 때, 직경이 90cm가 안 되는 단거리 스커드 미사일에 탑재하긴 어렵지만 길이 15m 직경 1.3m가 넘는 노동미사일에 싣는 데는 무리가 없다. 팻맨의 중량은 4.5t가량이었고 이 가운데 미사일 탄두에는 필요 없는 부속장치를 제외하면 순수 폭탄 중량은 3.5~4t으로 추정된다. 노동미사일을 변형해 탑재할 수 있다는 최대중량보다 1.7~2배 무거운 셈이다.

    이라크가 구했다면 북한은?

    플루토늄을 이용해 만드는 내폭형 핵폭탄은 중성자 발생장치와 핵물질, 이를 감싸고 있는 반사체(reflector), 그 외곽의 탬퍼(tamper), 그 바깥의 고폭장약으로 구성된다. 고폭장약이 한꺼번에 폭발해 내부의 플루토늄 핵물질을 압축하여 플라즈마 상태로 만들어놓으면, 여기에 중성자 발생장치가 만든 중성자가 투입돼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켜 엄청난 폭발력을 만들어내는 구조다. 주변의 반사체는 이때 만들어진 중성자가 안으로 다시 반사되도록 함으로써 핵분열을 계속 일으키는 구실을 한다. 반사체와 같은 물질로 만들어지는 탬퍼는 고폭장약이 폭발할 때 핵물질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핵분열이 충분히 일어나게 만든다.

    핵폭탄을 만드는 기술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게 핵공학자들의 대체적인 설명이다. 60년 이상 된 기술인만큼 첨단기술로 볼 만한 부분이 드문데다 구체적인 내역도 대부분 공개돼 있다. 다만 1945년 이후 이뤄진 기술적인 진보는 크기와 무게는 줄이면서 폭발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돼왔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미국이 가장 많이 보유한 B-61 계열의 핵탄두는 중량을 540kg까지 줄였지만 위력은 500~3000kt로 향상됐다. 요컨대 북한이 소형화를 이룰 수 있느냐는 지난 60여 년간 핵 강국이 이룬 기술진보를 얼마나 따라잡느냐에 달려있다.

    핵폭탄 구성요소 가운데 중성자발생장치와 핵물질은 무게가 매우 작다. 플루토늄의 무게는 통상 5kg 내외에 불과하다.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고폭장약으로 전체 중량의 60% 내외에 달한다. 금속으로 만들어지는 반사체와 탬퍼가 25%가량을 차지하고, 나머지는 케이스와 점화기, 충전기 등 기계장치의 무게다. 팻맨을 기준으로 본다면 총 4.5t 가운데 장약이 2.7t, 반사체와 탬퍼가 1.1t, 나머지가 0.7t가량을 차지하는 셈이다.

    먼저 고폭장약부터 살펴보자. 핵무기 설계의 가장 어려운 과제로 불리는 고폭장약 기술은, 핵물질을 에워싼 폭약이 동시에 플루토늄을 향해 폭발하게 하는 게 관건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충격파가 한꺼번에 핵물질의 중앙으로 집중되어야만 충분한 고온·고압이 발생해 플루토늄이 핵분열을 제대로 일으킬 수 있다. 극히 작은 오차로 한쪽에서 먼저 폭발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플루토늄은 폭발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 피시식 꺼져버리고(fizzle) 만다. 북한이 1차 핵실험에서 예상했던 출력을 내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충격파를 동시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폭약을 렌즈 형태로 만들어 핵물질 주위의 구형 조립체에 부착해야 한다. 각각의 고폭렌즈는 안경알을 가공하는 정밀도의 밀링기계로 가공해야 하고 구성성분도 순수하고 균일해야 한다. 팻맨의 경우 총 32개의 고폭렌즈를 사용했지만, 이후 효율성을 증가시킨 40, 60, 72, 92개 등 다양한 개수의 고폭렌즈를 쓰는 디자인이 개발됐다.

    고폭렌즈에 쓰이는 폭약은 재래식 폭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전용할 수 있다. 미국이 초기 핵무기에 사용했던 고폭약 RDX의 경우 초속 6000m 수준의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그 후 폭약기술의 발달과 함께 훨씬 적은 분량으로도 같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됐고, 1960년대 이후 사용된 HMX나 PETN 폭약은 같은 폭발력의 RDX에 비해 무게가 40% 미만에 불과하다.

    이들 폭약이 RDX에 비해 고가이긴 하지만, 그 제조나 관리가 어렵지 않아 고체 로켓추진체 등 군사용으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이라크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제사찰을 받는 과정에서 이들 폭약을 대량으로 구비하고 있었던 게 확인된 것만 봐도 북한이 입수하기 어려운 물건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들을 고폭장약으로 활용하면 팻맨에 비해 장약의 중량을 40% 이하, 즉 1.1t 내외까지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폭실험 140회의 비밀

    고폭장약의 무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핵물질의 양을 늘리면 된다. 핵공학 박사인 강정민 스탠퍼드대 객원연구원은 “고폭장약의 양이 같을 경우 플루토늄이 늘어나면 핵분열 연쇄반응이 증가하므로 폭발력이 커진다. 뒤집어 말해 고폭장약의 양을 줄이고 플루토늄을 늘리는 방식으로 핵폭탄 전체 무게를 줄여도 폭발력을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말했듯 핵폭탄의 무게에서 플루토늄 핵물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낮기 때문이다.

    북한 핵탄두 소형화 능력 추적

    1945년 8월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한 핵폭탄 ‘팻맨(Fat Man)’. 플루토늄으로 만든 내폭형 핵폭탄의 대표적인 초기 모델이다(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1990년대 핵 사찰 과정에서 추정했던 이라크의 내폭형 핵폭탄 구조도.

    그 상관관계를 구하는 식은 매우 까다롭지만, 아주 간단히 정리하자면 핵물질을 두 배로 늘릴 경우 고폭장약은 25%가량 줄여도 같은 폭발력이 나온다. 플루토늄을 5kg이 아닌 10kg 넣을 경우 고폭장약 무게를 75%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HMX 폭약을 사용해 팻맨에 비해 40% 미만으로 떨어진 무게를 다시 30% 미만인 0.8t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적 경로가 열린다. 물론 귀하디귀한 핵물질 투입량을 늘린다는 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길이지만, 그럼에도 이 방식에 주목하는 것은 북한이 그동안 실시해온 고폭실험의 성격이나 성과 때문이다.

    2003년 7월 고영구 당시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이 1980년 초부터 2002년 9월까지 총 70여 차례 고폭실험을 실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제네바합의 이전의 폭약 성능 실험과 이후의 장치화한 실험을 합쳐 최근까지 총 140차례가 넘는 고폭실험이 평북 영변과 용덕동 일대에서 진행됐다는 게 정보당국의 평가다. 한국국방연구원 관련 자료는 이러한 분석이 청천강 상류 구룡강변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사진에 나타난 분화구 모양의 폭발실험 흔적을 꾸준히 축적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고폭실험은 앞서 설명한 대로 고폭렌즈들이 제대로 폭발하는지 검증하기 위해 실시한다. 눈여겨볼 점은 140여 회에 달하는 횟수다. 핵폭발장치를 만드는 것만이 목표였다면 30~40회로 충분하다는 핵공학자들의 평가를 감안할 때, 제네바합의 이후 재개된 고폭실험은 소형화 등 기술진전을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자연스레 도출된다.

    고폭실험의 성격을 가늠하는 지표는 위성사진에 촬영된 폭발 흔적의 크기다. 흔적이 크다는 건 고폭장약의 양이 많다는 것이고 따라서 핵폭탄도 크고 무겁다는 뜻이다. 반대로 흔적이 작으면 소형화된 핵폭탄용 고폭 디자인을 실험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촬영된 고폭실험 흔적 가운데는 크기가 작은 분화구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핵폭탄 소형화 기술의 진전, 혹은 핵물질을 늘려서라도 고폭장약을 적게 쓰는 방식을 사용할 공산을 배제할 수 없게 하는 근거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반사체다. 초보적인 핵폭탄에서 반사체는 철보다 질량이 5배 무거운 우라늄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후 금이나 텅스텐, 베릴륨 등으로 훨씬 가볍고도 성능이 뛰어난 반사체를 만드는 방법이 개발되어 중량을 70% 이하로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팻맨의 데이터에 적용해보면 반사체 중량을 0.8t 내외까지 떨어뜨릴 수 있는 셈이다.

    이들 물질은 북한에도 원석 광산이 있는 데다 핵폭탄이 아닌 산업용으로도 사용되는 소재다. 북한의 핵 과학자들이 확보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이를 정밀하게 설계, 제작하는 능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두껍게 감싸는 것에 불과한 만큼 고폭장약 배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의 과제다. 핵실험에 성공한 북한이 이 정도를 버거워할 리 없다는 게 북한 과학기술 사정에 정통한 이들의 평가다.

    ‘핵 외에는 용도가 없는 연구’

    마지막으로 살펴볼 쟁점은 출력강화(boosting) 기술에 관한 것이다. 고폭장약의 폭발로 플루토늄이 플라즈마 상태가 되었을 때, 2중수소(deuterium)와 3중수소(tritum)의 융합반응을 일으켜 고속중성자의 양을 2배 가량 늘리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크기가 작은 핵폭탄도 큰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 미국 등 핵 강국의 핵폭탄이 초기에 비해 크기를 줄이면서 위력을 비약적으로 강화한 배경에는 이러한 핵융합 기술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핵폭발이 일어나는 시점에 맞춰 폭탄 안에 2중수소와 3중수소를 넣어주면 된다. 2중수소는 바닷물에 녹아있어 구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3중수소를 제때 발생시키려면 자연 리튬에서 분리한 리튬6를 구해야 한다. 요컨대 리튬6를 확보하는 것이 출력강화를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관문인 셈이다. 이 때문에 IAEA는 이 물질을 주력 점검사항으로 정해 핵 활동 의심국가에서 꾸준히 체크해 왔다.

    중국 등에서 오랜 기간 북한 과학기술을 연구해온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남북협력팀장은 “북한의 한 과학원이 2004년 이전에 이 기술 확보를 시도한 적이 있음을 확인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2중수소-3중수소 융합반응을 위해 자연 리튬에서 리튬6를 분리하는 연구’였다는 것. 핵폭탄 출력강화 외에는 거의 다른 용도가 없는 연구주제다. 중국 역시 핵 능력 강화를 위해 이 기술을 연구해 실험까지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5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지금, 북한이 실제로 이 기술을 완성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리튬6가 불안정한 물질이다 보니 이를 추출, 농축해 관리하는 작업이 간단치 않은데다, 핵폭탄 안에서 정확한 시점에 융합반응이 일어나도록 최적화하는 것은 더 어렵다. 두 차례의 핵실험만으로 달성하기란 불가능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연구 역시 간단치 않다. 강정민 박사는 “핵실험 출력에서도 팻맨에 훨씬 미치지 못한 북한이 그런 고급 기술을 확보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북한이 리튬6 확보를 시도했다는 사실을 통해 평양이 소형화에 얼마나 강하게 집착하고 있는지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기술수준으로도 가능한 다른 소형화 경로는 모두 현실화했을 가능성을 높여주는 단서다. 특히 연구 시작시점이 1차 핵실험 이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북한의 핵개발이 강대국의 핵개발 과정을 순차적으로 밟아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 게 아님도 알 수 있다. 이론적으로 앞 단계에 해당하는 기술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참 다음 단계의 연구를 동시에 진행해왔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북한이 경량화를 위해 채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결합한 시나리오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단 논란의 여지가 큰 부스팅 기술은 제외하고도, 앞서 본 것처럼 HMX 폭약의 사용과 플루토늄 추가 투하로 고폭장약의 무게를 0.8t 수준까지, 우라늄보다 가벼운 물질로 반사체와 탬퍼를 만들어 이들의 중량을 역시 0.8t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여기에 뼈대와 케이스, 각종 기계장치를 경합금으로 대체해 약간만 무게를 줄여도, 노동미사일의 사거리를 희생해 최대치로 늘릴 수 있는 탄두중량 2t에 거의 근접한 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전히 남은 과제들

    이러한 이유로 이미 2000년대 초반에 한국 정부의 관계부처 기술분석 파트에서는 북한이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핵폭탄을 조악한 수준에서나마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있었다. 2006년 핵실험 직후 정부 일각에서 노동미사일 탑재 핵탄두가 이미 완성됐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국방백서 등 최종평가에는 반영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다.

    이렇듯 ‘우겨 넣자면’ 넣을 수는 있지만, 많은 관련 전문가가 여전히 적지 않은 관문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우선 노동미사일의 설계변경 문제가 있다. 이춘근 팀장은 “플루토늄 폭탄은 구형에 가깝기 때문에 노동미사일의 사거리를 줄여 탄두중량을 억지로 늘리면 무게중심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균형이 맞도록 조정하는 일이 새 미사일을 만드는 것에 준하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다.외형상으로는 같은 미사일이어도 설계부터 시험발사에 이르기까지 전부 새로 진행해야 하는 까닭이다. 다만 이렇게 놓고 볼 때, 2006년 7월 실시한 노동미사일 시험발사와 최근 포착된 IRBM 시험발사 징후가 이러한 개조작업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여지가 있다.

    북한이 보유한 플루토늄의 양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한계다. 현재까지 추출한 것으로 알려진 총량 40kg 가운데 두 차례 핵실험으로 10~15kg이 소진됐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쌓아놓은 폐연료봉의 재처리 작업에 들어갔다지만 여기서 나올 양은 5~7kg에 불과하다. 불능화조치를 통해 폐쇄된 영변 5MWe 원자로를 재가동해 핵물질을 추출하려면 2~3년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플루토늄 투입량을 늘려가며 탄두를 만든다면 남은 25~30kg의 플루토늄을 다 쏟아 부어도 노동미사일용 핵탄두를 3기 이상 만들기 어렵다. 핵물질의 양이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과연 가능한 선택일지는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신뢰성이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중거리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핵탄두를 만들어서 대외에 과시한다 해도, 이 탄두가 실제상황에서 작동할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민감하기 짝이 없는 전자장치들이 미사일 발사과정의 충격을 버텨내고 비행하는 동안의 악조건 속에서도 성능을 유지해, 목표지점에서 원하는 시점에 핵폭발을 일으킬지는 장담하기 쉽지 않다. 이는 철저히 사전 준비된 핵실험과는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 경제제재와 금수조치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핵개발을 진행하는 동안 구하기 쉽지 않은 부품과 재료를 우회하려고 다양한 임기응변을 구사해가며 만든 물건이 실전에서 ‘전술적 성능’을 발휘할 거라고 보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신뢰할 수 없다 해도

    북한이 최근의 행보를 통해 노리는 궁극적인 목표가 미국과의 핵군축 양자협상이라면 신뢰성 문제는 더욱 중요해진다. 미국이 북핵의 전술적인 능력을 인정하는 경우에만, 다시 말해 미 본토나 괌, 하와이, 주일미군 기지가 핵 탑재 미사일로 공격받을 수 있다는 ‘현존하고 명백한 위험(present and clear danger)’으로 인식하는 경우에만 이러한 협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쉽게 인정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다음 순간 동북아 전략은 물론 전세계 핵 비확산 정책 전부를 재검토해야 하는 엄청난 과제에 직면하게 되는 까닭이다. 당장 한국과 일본의 핵우산 정책부터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할 판이다.

    특히 북한이 핵탄두 탑재를 위해 노동미사일의 사거리를 희생했다면 이 미사일의 공격범위는 괌은 고사하고 일본에도 미치기 어렵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해 사실상 한국만을 핵 인질로 붙잡는 수준의 것이라면, 미국 입장에서는 1차 핵실험을 전후해 북한의 핵 능력이 모호했던 시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미국 측 당국자들이 4월 장거리 로켓 발사나 5월 2차 핵실험 결과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해온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적인 자세와 무관하게, 한반도 유사시 등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민하는 상황에서는 그 군사적 의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터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반도 전쟁 수행에는 심각한 장애가 생기기 때문이다. 유사시 증원될 미군 전력이 북한 핵무기에 위협받는 상황이 오면 전쟁 수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민은 전면전에 대비한 한미 양국의 공동 작전계획이 북한의 핵능력을 주요 변수로 고려해 작성되고 있다는 전언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터질지 안 터질지 의심스럽다 해도, ‘핵탄두를 우겨 넣은 미사일’을 통해 북한이 무시할 수 없는 군사적 변수를 확보하게 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미국을 놀라게 해 협상 테이블에 앉게 하든, 자신들이 주장하는 대로 핵 억제력을 갖게 되든, 북한으로서는 손해날 게 없는 게임인 것이다. 2012년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젖히는 해’를 목표로 평양이 이어가고 있는 초강경 행보에는 이렇듯 정밀한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밟아나가는 이 ‘절대 무기’의 공포 앞에서, 시간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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