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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노무현 그후

노사모 출신 동아일보 기자의 노무현 10년 취재기

난 어찌하여 노무현을 알게 됐고 사랑했고 절망했는가

  • 글·사진 정호재│동아일보 인터넷뉴스팀 기자 demian@donga.com│

노사모 출신 동아일보 기자의 노무현 10년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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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편 가르기 논쟁에 휩싸였다. 언론정책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무현과 그의 지지세력인 노사모는 이른바 동·조·중과 전쟁을 벌였다. 2000년 4월29일은 노사모가 첫 모임을 가진 날이다. 당시 대학 4년생이던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 모임의 창립회원이 됐다. 이후 동아일보에 입사하면서 노사모에서 멀어진 나는 취재과정에 그들로부터 경멸의 시선을 받았고, 그들의 운동권적인 행태에 절망하기도 했다. 노무현에 대한 비난이야 어쨌든 노무현은 이 나라 정치개혁의 아이콘이었다는 평범한 사실을 그가 죽고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노사모 출신 동아일보 기자의 노무현 10년 취재기

2002년 3월 민주당 대통령후보 전북경선에서 1위가 확정된 후 기뻐하는 노사모 회원들.

2000년

모든 것은 9년 전,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만일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그’의 서거 소식에 조금 덜 울었을지 모른다. 난 그 전화를 받기 3일 전,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 짤막한 댓글을 남겼다. 당시 HTML 집합에는 다음과 같은 주제의 리플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진짜 정치인 노무현을 후원합시다” “옳소!” “어떻게?” “모여서 상의?” “대찬성!” 아마도 2000년 4월19일이나 20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0년 4월13일 치러진 제16대 총선은 미디어 측면에서 역사에 기록될 중요한 선거였다. 바로 인터넷이란 미디어가 최초로 개입한 선거였기 때문이다. 대다수 정치인은 컨설턴트의 조언을 받아 개인 홈페이지를 급조했고 어쭙잖게 인터넷을 홍보의 무기로 삼았다. 물론 그 수준은 천양지차였고 그 효과 역시 특정 세대에 한정됐을 뿐이었다.

선거가 끝나자 누리꾼들은 선거 초반을 주도했던 ‘낙선운동’보다 한 사내의 고군분투, 아니 바보스러움에 관심을 집중했다. 바로 부산 북·강서을에서 낙선한 ‘노무현’이란 정치인이었다. 아마도 선거 직후 몇몇 진보매체와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서 그의 뚝심을 주목했나보다. 네티즌들의 애정표현은 일순간 파도가 돼 그의 홈페이지를 다운시킬 정도가 됐고 누군가 자발적으로 인터넷 게시판을 급조한 것이다.

당시 기자는 꽤 앞서가는 누리꾼이었다. 미국 첨단 인터넷시장을 경험하고 돌아온 대학 4학년생으로, 학점과 토익점수를 제외하면 두려울 게 없는 팔팔한 청춘이었고 인터넷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란 믿음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엊그제 노무현 후원회에 동참하신다고 댓글 다셨죠? 그거 보고 연락드립니다. 돌아오는 토요일(29일) 종각역 청진동에서 모이려는데 나와주실 수 있으시죠?”

당시 게시판을 급조하고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건 이는‘절세미녀’라는 닉(네임)을 사용한 20대 후반의 평범한 처자였다. 그녀가 다른 직장을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정치인 노무현의 ‘사이버 보좌관’이란 직책을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정치인 노무현은 노하우라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130여 명의 온라인 참모를 모집 운영하는 남다른 웹친화력을 선보였다. 갑작스러운 전화에 당황한 나는 상기된 목소리로 “참석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소꿉친구와 불알친구’

약속날인 토요일 오후는 한가로웠다. 약속시간인 5시보다 2시간 빠른 3시에 모임장소를 찾았다. 모임을 준비 중이던 ‘절세미녀’는 내게 이름표를 달아주며 “가장 먼저 도착했네요”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고 보면 나는 노사모 모임에 가장 먼저 도착해 이름을 올린 ‘역사적 인물’이 된 셈이다.

2000년 4월29일은 ‘노사모’ 조직이 첫 모임을 가진 날이다. 물론 역사는 이보다 조금 늦은 5월7일, 대전에 집결한 수백 명의 회합을 정식 노사모의 출발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야사로 기억될 첫 모임은 바로 서울을 위시한 전국 각지에서 번개 형식으로 모임이 이뤄진 4월29일이다. 청진동 골목에는 당시 이광재, 서갑원씨가 운영하는 자그마한 카페 ‘소꿉친구와 불알친구’가 있었는데, 그 장소에서 30여 명이 회합을 가졌고 그날 모임이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셈이다.

그날 모임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노무현을 지지하는지를 놓고 두 가지 의견이 대립했다. 망국적인 지역정치를 타파하는 데 그를 지렛대로 삼자는 주장과 일각에서 제기된 ‘노무현 대통령론’의 경쟁이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대학 4학년생인 나에게도 꽤나 당혹스러운 주장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YS나 DJ급의 거물만이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했지, 의정 경험이 일천한 그를 대통령감으로 낙점해 후원하자는 발상에는 어색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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