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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되기 어려운 나라, 대한민국

“I?m not an animal. I?m a human- being”

  • 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난민 되기 어려운 나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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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되기 어려운 나라, 대한민국
# 화성 외국인보호소

7월6일, 서울지하철 1호선 금정역에 내려 330번 버스를 타고 한 시간여 달리니 표지판이 보인다. 화성 외국인보호소. 아프리카인, 중앙아시아인, 동남아시아인을 뒤로하고 면회신청서를 제출하자, 5분도 지나지 않아 관리인이 내 이름을 부른다. 녹색 반바지에 반팔 상의 차림의 흑인이 방에 들어와 기자를 보고 의아해한다. 플라스틱창을 사이로 전화수화기를 들고 서툰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를 것이다. 난민인권센터 미스터 김성인 소개로 온 기자다. 동그란 안경을 쓴 김종철 변호사도 안다. 난민 관련 기사를 쓰려고 하는데, 당신처럼 일하다 잡혀온 난민신청자들을 인터뷰하고 싶다.”

11개월째 갇혀 있다는 그는 못미더워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까.

“내가 법정에서 쓰러졌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6월24일에 병원에 데리고 갔다. 난 사람 죽인 범죄자도 아닌데 수갑을 차고 진찰을 받았다. X레이를 찍었다. 의사가 내 심장이 너무 크다(고혈압)고 했다. 그래서 한 달 넘게 약을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틀만 약을 먹었다. 지금도 말을 하면 머리가 어지럽다. 밥과 빵도 소화시킬 수 없다. 교회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주스와 우유를 사먹고 있다. 늘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대로 어떤 조치도 받지 못하고 죽게 될까 겁난다. 난 동물이 아니다. 사람(human-being)이다. 내게는 의사를 다시 만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검은 얼굴 때문에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그의 눈에 뻘건 실핏줄이 생겼다.

“그 많은 나라 중에서 왜 한국에 왔나.”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다. 한국은 알지도 못했다. 콩고가 정치적으로 위험해 탈출했다. 마침 비즈니스로 한국을 자주 찾는 나이지리아 여성이 도와줘 한국 관광비자를 받았다. 한국에 온 뒤 2004년 난민신청을 했다. 1차 심사, 2차 심사에서 난민인정을 못 받았다. 그래서 재판을 진행 중이었다. 나 같은 신청자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래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는데 이번에 건축현장에서 일하다 잡혔다. 11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를 잡으러 왔다.”

# 백운역 다세대주택

7월7일, 인천 부평구에 있는 백운역으로 갔다. 기자를 마중 나온 중동인은 한 손으로 아들을 안고 있었다. 머리에 두른 천이 등까지 닿아서일까, 아니면 오랫동안 안 깎은 수염 때문일까. 진한 땀내가 났다. 아이는 웃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을 찌푸렸다. 다세대주택 3층집에 들어서자 숨을 훅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숨쉬기가 거북할 정도로 짙은 땀내가 났다. 말로만 듣던 구더기 냄새가 이럴까. 그의 아내와 두 딸은 검은 천으로 온몸을 가리고 있어 눈만 빠꼼하게 드러났다. 어설픈 영어 대화가 이어졌다.

“사진 촬영해도 되나.”

“얼마든지 해도 상관없다. 난 우리가 얼마나 끔찍하게 살고 있는지 한국 정부에 보여주고 싶다. 나는 일을 할 수 없고,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 우리는 11개월째 이 방 안에만 있다. 처음에 사원에서 도움을 줘서 자리를 잡았지만 더 이상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유엔난민기구(UNHCR)와 난민인권센터에서 얼마간의 생활비는 줬지만 더 줄 수 없다고 한다. 우리보고 죽으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주면서 일마저 못하게 하면 죽으라는 것 아니냐. 11개월이 지났지만 1차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왜 한국에 왔나.”

“난 시아파다. 반대파의 비밀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몇년째 쫓기고 있다. 죽이겠다는 협박이 계속되다 어느 날 내가 안고 있던 아들이 그들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그 사건이 알려진 신문기사를 여러 건 보여주며) 사회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사는 게 너무 위험했다. 그래서 무작정 한국에 들어왔다. 나는 태권도 물품을 수입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한국에 여러 번 왔었다. 다른 나라에 가고 싶었지만 한국 비자만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나?”

“보내고 싶지만 보낼 수 없다. 나에겐 돈이 한푼도 없다. 보낼 수만 있다면 보내겠다.”

(국제아동법상 초등학교의 경우 교장 재량으로 난민에게 교육을 허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학적에 오르는 것은 아니어서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아, 중학교에 갈 수는 없다. 난민신청자 자녀 상당수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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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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