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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되기 어려운 나라, 대한민국

“I?m not an animal. I?m a human- being”

  • 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난민 되기 어려운 나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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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되기 어려운 나라, 대한민국

난민신청자는 법적으로 노동 허가를 받지 못해 굶주려야 한다.

“불법으로 일하면 어떤가.”

“그러다 적발되면 감옥에 갇히는데, 그럼 내 가족은 누가 책임지나. 추방당하면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겠나.”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내가 죽으면 이 모든 게 끝날까 싶기도 하다. 그럼 반대파도 더 이상 나를 쫓지 않을 것이고, 가족들도 안전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죽어야 누군가 우리 아이들을 잘 보살펴준다면 죽음도 불사하겠다.”

치석 가득 낀 이를 드러내며 말을 이어간 그가 며칠 뒤 e-메일을 보내왔다.



I & my family know now after cut electric & Gas already cut & water also very slow & my wife serious breath problem so we have no way so we now wait our death time so i just request if Korea government want i die so kill me no problem i agree but as a husband & father i want safe my wife & kids life & want they live happy & peacefully so please safe my wife & kids life & gave to them happy life & kill me only & not kill my family.(이미 전기와 가스가 끊겼습니다. 물도 거의 안 나옵니다. 임신한 아내는 숨쉬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한국 정부가 원한다면 나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과 아버지로서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게 하고 싶습니다. 나만 죽이고 내 가족은 죽이지 마십시오.)

# 동대문역 패스트푸드점

7월7일 오후 4시 서울지하철 동대문역, 만나기로 약속한 이라크인이 선글라스를 낀 말끔한 차림으로 나타났다. 패스트푸드점으로 들어가 어떤 음료수를 마실 거냐 물으니, “Anything is OK”를 연발한다. 어깨를 들썩이곤 미안해하며, 영어로 상황을 설명해나갔다.

“매형이 전 총리의 가족이란 이유로 살해 위협을 느꼈다. 바그다드가 붕괴된 2003년부터 사람들이 우리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래서 가족들은 모두 이라크를 떠났다. 나는 요르단에 1년, 두바이에 2년, 시리아에 3년 있다가 시리아 정부가 더 이상 비자를 줄 수 없다고 해서 캐나다로 가려고 했다. 다른 가족들은 전부 캐나다에 살고 있다. 나도 위조여권을 가지고 중간기착지인 한국을 거쳐 캐나다로 들어가려다 공항 검색요원에게 걸렸다. 아랍인이라 검사한 것 같다. 두 달간 공항에 있는 감옥에서 하루 세 번 치킨버거와 콜라만 먹고 갇혀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다.”

“왜 두 달이 지나 풀렸나?”

“그건 나도 모르겠다. 나오기 전에 몸이 아파 병원에 갔고, 난민신청을 했다. 난 가족들이 있는 캐나다에 갈 수도 없고, 여권도 없는 상태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것뿐이다.”

“가족들은 어떻게 사나?”

“누나와 남동생이 난민이 된 후 어머니를 초청했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초청했다. 그런데 나는 노인도 아니고 미성년자도 아니어서 비자가 나오질 않았다. 동생은 캐나다에 가서 그래픽 엔지니어링을 전공해서 현재는 비행기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아홉 명의 가족 중 둘만 일하지만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위한 국가보조금이 나와 그럭저럭 산다.”

“불법이라도 일을 하는 게 어떤가.”

“법을 어기다 걸리면 난 끝이다.”

그는 애써 웃으며, 이태원에 있는 이라크식당에 가면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쉼터에 머물며 숙식을 제공받았지만 그만 나가라고 해서, 다음달부터는 어디서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1994년 국제난민협약에 가입했다. 난민협약은 국제협약으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으므로, 한국 정부는 난민에 대한 보호 의무가 있다. 그러나 난민협약이 세부사항을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지키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특히 난민의 범위에 대해 명확한 규정이 없다. UNHCR 한국대표부는 “국제법상 난민의 법적 정의에 의해 인정된 난민이 아니더라도, 보충적 국제적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 인정된 자에게도 인정난민에게 제공되는 권리와 혜택을 동등하게, 혹은 상당부분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지적하지만, 이것이 한국 현실에 적용되고 있지는 않다.

올 6월20일부터 시행된 출입국관리법은 ‘난민신청자도 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혜택을 받은 난민신청자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 이런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영(令) 시행 전에 난민신청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제88조의9제4항의 개정규정의 기간은 이 영 시행일부터 기산한다’(부칙 제2조)

이 계산법에 따르면, 난민신청을 한 지 3, 4년이 지난 사람도 현재는 일할 수 없다. 다시 6월20일을 기준으로 1년을 기다려야 일할 수 있게 된다.

노동허가서를 호락호락 주는 것도 아니다. 근로계약서를 먼저 가져가야 노동허가서를 준다는 것. 서울대 법학과 정인섭 교수는 “불법체류자들이 악용할 가능성이 있어 관리 차원에서 이런 조치를 취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지만 법무법인 소명의 김종철 변호사는 “그렇지 않아도 G-1비자가 특이해 고용주가 고용을 꺼리는데, 고용주에게 일단은 불법으로 계약하고 나중에 허가를 받으라는 것은 논리상 앞뒤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1년을 기다린다고 해서 무조건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년이 지났지만 1차 심사에서 불허 판정을 받으면 2차 심사에서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일할 수 없다. 근로계약서를 가져와도 노동허가를 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재 난민신청자의 평균 심사 대기기간은 2년이다. 몇 달 만에 심사가 끝나는 사람과 3,4년 동안 인터뷰도 받지 못한 사람을 평균 낸 수치다.

난민신청자는 정부에서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일을 할 수도 없다. 거렁뱅이가 되거나 죽거나, 난민신청자의 처지다.

# 4호선 미아삼거리역

7월8일 오후 4시, 서울지하철 4호선 미아삼거리역에 노란 머리의 장신 남자가 서있다. 취재 약속한 사람인지 긴가민가해서 전화를 거니 옆에 있던 그가 받는다. 그가 충청도 말투로 한국말을 이어갔다.

“난 이란 사람이에요. 혼자 여기 온 지 13년 됐어요. 한국에 오려고 해서 온 게 아니라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어요. 이란에서 일하는 한국 직원이 도와줘서 관광비자를 받았어요. 나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이란에서는 그러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사람 많아요. 98%가 무슬림이거든요. 이란이 이라크전 할 때 바시지라고 하는 민간인 부대가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과격한 행동을 해도 정부가 어떻게 하질 못해요.”

“종교가 아무리 중요해도 가족보다 소중한 건 아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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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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