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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잠망경

“어업, 북한 자본주의 전초지대로 뜨다”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어업, 북한 자본주의 전초지대로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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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실험, 김정운 후계자 확정, 개성공단 전면중단 가능성…. 최근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한 제목들이다. ‘북한 이슈’가 또다시 한반도를 뒤흔들고 있다. ‘신동아’는 8월호부터 주성하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가 바라보는 북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주성하 기자는 김일성대를 졸업하고 탈북한 북한 엘리트 출신 기자로 인터넷에서 파워블로거로도 활동 중이다.‘편집자’
“어업, 북한 자본주의   전초지대로 뜨다”

함경북도 근해에서 밥조개, 섭조개를 양식하고 있는 김책대흥수산사업소 어부들.

북한에서 자본주의적 요소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은 어디일까. 북한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선뜻 장마당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질문에 주저 없이 수산업 분야라고 대답한다. 이 분야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개인이 회사를 차리고 고용권을 행사했으며 삯을 받고 일하는 ‘임금노동자’도 많다.

북한 어업의 과거와 미래를 좀 더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북한 어부 이모씨를 사례로 들어 글을 전개하기로 한다. 이씨의 생활상은 실제 북한 동해안에 살고 있는 한 어부와 90% 이상 일치한다. 필자는 북한에 있을 때부터 이씨를 잘 알고 있었고 서울에 와서도 매년 이씨의 근황을 들었다. 그의 신분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일부 사실을 전체 맥락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한도에서 바꾸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이씨가 군에서 제대하고 아버지 고향인 동해안의 한 어촌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1980년대 초반. 그는 마을 가까이에 있는 한 공장 노동자로 배치됐다. 이 마을에는 수산협동조합과 협동농장이 있었다. 수산조합에는 200마력짜리 어선 두 척(배 길이가 약 20m)과 75마력짜리 어선, 그리고 작은 쪽배들이 있다. 수산조합에 다니면 노동자, 협동농장에 다니면 농장원이라고 불렸다. 1980년대에는 노동자와 농장원의 생활수준이 비슷했다.

수산노동자로 불리는 어부들의 일에도 철이 있다. 어부들은 6월 중순경부터 바빠지기 시작한다. 1980년대엔 정어리가 정말 많이 잡혔다. 그런데 냉동시설이 없어 아무리 많이 잡아와봤자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정어리잡이 배는 연일 만선이었다. 배가 돌아오면 마을 어귀에 있는 확성기에서 방송이 흘러 나왔다.

“방금 정어리배가 도착했습니다. 정어리 1㎏에 4전입니다.”

3~4시간쯤 지나 다시 방송이 울린다. “정어리 1㎏에 2전입니다. 빨리 가져가십시오.”

다시 몇 시간이 흐르면 “정어리 공짜로 가져가시오”라는 방송이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정어리를 사서 먹지 않았다. 먹고 싶으면 부두에 나가 아는 사람에게 그냥 달라면 됐다. 냉장고가 없어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남은 정어리는 가까운 농장 밭에 버려졌다. 여름이면 늘 정어리 더미가 썩으면서 나는 고약한 냄새가 마을에 퍼졌다.

어부들은 다음날 또다시 바다에 나간다. 고기잡이는 ‘혁명과업’일 뿐만 아니라 배급과 월급을 받아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의 임무이기도 했다. 당시 배급 할당량은 1인당 약 600g이고 월급은 60원 안팎이었다. 계획량을 채우지 못하면 배급은 줄어들지 않으나 월급은 삭감된다. 많이 잡아오면 인센티브도 받는다. 그러니 열심히 잡아올 수밖에 없다.

1980년대엔 정어리를 거름으로 사용

썩고 말고는 이들이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물론 정어리를 실어가기 위해 상급기관에서 어쩌다가 자동차를 보낼 때도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어리가 싸구려 생선이라는 인식이 강해 그렇게 실어가 봤자 기름 값도 못해 방치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고기가 어촌에서 거름이 될 동안 양강도나 자강도 등 내륙 주민들은 생선을 구경하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사회주의의 병폐다.

7월 중순부터 나오는 오징어는 말릴 수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오징어철은 10월말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다시 한 달 정도 배 수리 기간을 거치면 12월부터 명태철이다. 명태철은 2월까지 계속되는데 이때가 수산조합이 가장 바쁜 때다. 200마력급 어선이 나가서 만선하면 약 10t을 실을 수 있다. 200마력짜리 어선 선장은 수십 년을 바다에서 보낸 사람들이며 수산조합의 핵심 기둥이다. 과장하면 바다에서 명태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사람들이다. 이씨 마을에서는 명태를 많이 잡아 노력영웅 칭호를 받은 소위 ‘영웅선장’도 나왔다. 북한 배우들이 인민배우, 공훈배우라는 명예칭호를 받듯이 우수한 어부도 공훈어부라는 칭호를 받는다. 전국적으로 몇 명 안 되는 공훈어부가 이씨 마을에 있었다.

잡아온 명태는 황태로 만든다. 마을 앞 백사장에 나무로 덕장을 만들고 명태를 걸어놓는데 겨울에는 장관을 이루었다. 마을 사람들은 먹고 싶으면 덕장에 가서 명태를 벗겨온다. 물론 형식상 경비원이 있지만 밤에 가서 몇 두름(1두름은 20마리)을 벗겨 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경비원도 같은 마을 사람이라 봐도 못 본 체하기 때문이다.

명태 철에는 어부의 아낙들도 모두 동원됐다. 명태가 10t씩 가공장에 부려지면 동원된 아낙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온밤을 새워 명태 내장을 따고 명란을 선별했다. 명란과 말린 명태는 해외에 수출된다고 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해산물 중에서 해외에 수출되는 것은 전복과 해삼, 말린 명태와 명란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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