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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과 러시아 역할론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

한반도 통일과 러시아 역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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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는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로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다른 한편으로 몰라보게 수척해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은 북한의 급변사태, 나아가 한반도의 급변사태를 예고하는 듯하다.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러시아는 어떤 역할을 할까. 이 문제는 러시아 이야기이면서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 맹점에 대한 이야기다.
한반도 통일과 러시아 역할론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인천 앞바다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자폭한 러시아 해군의 후예들이 100년 만인 2004년 2월10일 인천항을 찾았다.

1860년 러시아는 청나라로부터 연해주를 차지했다. 조선으로선 잘 지내온 청나라 대신 낯선 서양의 열강과 접경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1891년 러시아는 시베리아철도를 부설하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뭔 소리?” 유라시아대륙의 끝과 끝을 철도로 잇는다는 건 동양의 전(前)근대체제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더구나 철도로 실어 나른다는 물동량은 어마어마했다. 1897년 대한제국이 개국하던 해, 러시아는 마침내 그 일을 해냈다. 한국의 개화파 지식인들은 한반도 턱밑까지 펼쳐진 지구적 구조물을 보고 경악했다.

‘그 철도로 한반도의 인력과 물자가 모두 빨려들어갈지 모른다’는 공포감. 이는 개화파 지식인들이 일본의 ‘동양주의’(동양의 일본 중국 한국이 힘을 합쳐야 러시아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다)로 기우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그런데 구한말 언론사들은 개화파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한국언론사’, 나남) 이들의 생각이 신문의 논조로 표출되고 그 신문의 논조는 대한제국의 집권층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이었다.

구한말 신문들의 反러 논조

구한말의 ‘메이저 신문’ 격인 ‘독립신문’ ‘황성신문’ ‘제국신문’ ‘매일신문’에서는 반(反)러 정서가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자주독립 성향의 ‘독립신문’조차 러시아에 대해선 “동북의 강산을 수중에 농락코자 하여”(1899년 1월17일 논설)라고 적대적으로 썼고 일본에 대해선 “대동 합방하는 높은 의리로”(1899년 11월16일 논설)라고 치켜세웠다. ‘황성신문’은 1900년 8월8일 잡보에서 “주한 러시아 공사가 일본 공사에게 한반도를 나눠 점유할 것을 제의했으나 일본이 거절했다”는 일본 신문 기사를 인용 보도했다. 러시아는 음모를 꾸미는 침략국, 일본은 불의를 뿌리친 정의로운 국가라는 인상을 줬다.

한반도 통일과 러시아 역할론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발틱함대의 패전.

신문들의 반러 논조는 제국의 외교정책을 변화시켰다. ‘매일신문’은 1898년 5월16일 ‘외교문서’를 입수하여 “러시아가 진남포항과 목포항의 토지를 구매하려 한다”고 특종 보도했다. 이 보도의 파장은 컸다. 러시아에 대한 여론의 감성적 저항을 촉발시켰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 날 일본인이 서울에서 발행하는 신문인 ‘한성신보’도 같은 외교문서 내용을 보도했다는 점이다. 일본 당국이 외교문서를 빼내와 한국인이 발행하는 ‘매일신문’과 일본인이 발행하는 ‘한성신보’에 넘겨 보도하도록 한, 일종의 ‘언론 플레이’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후 대한제국과 러시아는 커다란 제약을 받았다.

만약 목포에 러시아 해군기지가 설치되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수년 뒤인 1904년 일본은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러시아는 한국에 거의 발도 못 붙인 반면 일본은 한국 전역을 병참기지, 보급로로 활용했다. 구한말 러시아는 일본만큼이나 한반도에 영토적 욕심이 강했는지, 본국 중심부와의 거리로 인해 실제 통치할 능력은 있었는지 등에 대해 대한제국의 여론주도층이 좀 더 균형 잡힌 정세판단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구한말 지식인 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과도한 편견과 무시라는 실책을 범했으며 이는 국가 역량을 더욱 약화시킨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편견과 무시의 결과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해 1905년 을사조약을 체결하자 대한제국의 신문들은 일본의 ‘동양주의’는 허구이고 자신들의 정세판단이 틀렸음을 알게 됐다. ‘황성신문’은 1905년 11월20일 을사조약을 탄식하는 ‘시일야방성대곡’ 논설을 실었다. ‘대한매일신보’는 ‘동양주의’에 대해 “동양을 소멸케 하는 주의”(1908년 12월17일자 논설)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이어 한국이 나아갈 바는 오로지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는 민족주의뿐”(1909년 5월28일자 논설)이라고 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고 대한제국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9년 현재까지 러시아는 남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의 일원으로 남아있다. 구한말이나 미·소 냉전시대의 위세에 비하면 그 위상은 축소됐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국내에서 러시아에 대한 관심과 담론은 너무 빈약한 수준이다. 그 원인은 러시아가 아닌 우리 탓일 수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유용한 협력대상인데 한국은 이를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고 이 때문에 러시아의 비중이 낮아 보인다는 관점이다.

이명박 정권은 5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이전에도 북한과 대립만 해왔다. 북측도 문제지만 남측의 내부 혼선, 정제되지 못한 발언, 인간미 결핍이 빚어낸 측면도 컸다. 남북관계는 이미 ‘전면 대결태세’(1월17일) 국면에 들어서 있었고 남북한 합의사항은 ‘무효화’(1월30일) 위기에 빠져 있었다. 이런 점에서 핵실험이라는 극단적 상황변화는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권에 숨통을 터준 측면이 있다. ‘남북관계 파탄’의 정치적 책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핵실험 이후 이명박 정권은 대북 강경태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7월13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한에 강하게 해서 회담에 나오도록 하는 전략이다” “북한 제재에 협력해달라고 하는데 다른 소리를 내면 안 되지 않느냐” “세계가 다 강한 견제를 하고 있는데 한국만 원론적인 소리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2007년 대통령선거 때부터의 오래된 논쟁이 결론에 이른 것으로도 비친다. 이명박 정권의 ‘비핵개방3000’에 대한 공격의 핵심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남북관계를 올 스톱할 것이냐”였다. 지금의 상황전개는 ‘올 스톱’으로 진행되는 양상이다.

금기시돼온 논의들

이러한 네오클래식(neo-classic·신고전주의) 대북정책은 일견 선명해 보인다. 대신 북한이 버티어내는 한 실질적 진전도 없다. 남북관계는 필연적으로 더 악화된다. 우리에게 숙명과 같은 문제는, 북한은 핵을 가진 위협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함께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이중적 지위에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에선 동족애와 인도주의가 사라졌다. 10년간 해오던 인도적 지원은 끊겼다. 수많은 사람이 기아로 고통 받고 죽어간다는데 어떤 제스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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