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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④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집중분석]장마당의 힘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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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학생 최고 인기직종은 장마당 상인
  • ● ‘시장시스템’ 활성화하는 전화기
  • ● 국제환율 시세 정확히 반영하는 암시장 환율
  • ● 북한 양대 통치세력은 노동당과 장마당?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북한에서 요즘 유행하는 우스갯소리. 북한의 어느 탁아소. 5세반(班)에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아이들이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새로 온 어린이 주변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한 아이가 작은 입을 오물오물하며 물었다.

“너네 엄만 뭐하니?” “공업품.”

“돈 좀 빠지니?” “그냥 그렇다.”

‘공업품’이란 말은 장마당에서 공업품 장사를 한다는 의미다. ‘돈 좀 빠지니’는 ‘돈을 좀 버니’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이 우스갯소리는 엄마들이 하루 종일 장사 이야기만 하다보니 아이들이 주워듣는 대화도 장사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풍자하고 있다.

최근 들어 장마당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가 날로 강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이제 장마당과 북한 주민 사이의 관계는 그 어떤 강제력도 뗄 수 없는 그런 관계가 돼버렸다.

북한의 장마당 이야기는 남한에도 많이 알려져왔다. 북한에서 장마당은 죽어있는 존재가 아니다. 장마당은 매일 매순간 북한 주민의 희망과 절망, 웃음과 눈물을 먹고살면서 꿈틀거리는 생명체다. 장마당은 지금도 끝없이 진화하고 있다.

“북한 장마당  최고 히트상품은  오뚜기 사과식초”

맥주와 음료수 등 외국산도 팔리는 장마당.

이 글에는 그 꿈틀거림, 변화와 진화를 담으려고 했다. 이미 알려진 북한 장마당에 대한 일반적인 풍속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 변화 움직임을 중심으로 담으려 노력했다. 이 글에는 몇 달에 거쳐 인터뷰한 북한 주민 여러 명의 생생한 목소리가 녹아 있다.

북한의 고등중학교 졸업연령은 만 16~17세다. 요즘 고등중 여학생은 졸업하면 장마당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살 것이라는 목표를 미리 다 세우고 있다고 한다. 특히 도시가 그렇다. 졸업 시즌이 다가오면 여학생들이 모여앉아 “나는 중기(가전제품) 장사할 거야” “나는 식료품할거야” “나는 낙지 달리기(오징어 장사)할 거야”하는 식의 대화를 나누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 이들에게 장마당은 평생직장처럼 인식된다. 이미 그들의 부모는 그렇게 살고 있다. 여학생은 장마당을 제외하고는 꿈을 펼칠 곳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학생은 졸업 후 꿈을 말할 때 일반적으로 권력 지향적이다. 노동당이나 보위부의 간부, 군관 또는 기업 사장이 된다든지 하는 식이다. 북한에선 ‘권력=돈’이기 때문에 이는 권력과 돈을 함께 얻는 방식이기도 하다. 물론 출세에 필수적인 출신성분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에 돈만 벌겠다는 남학생도 적지 않다. 남학생과 비교하면 여학생은 권력에서 소외됐다. 북한에서 여성의 권리가 그만큼 취약하기 때문이다. 결국 여학생에게 남은 선택은 돈이다.

장마당은 평생직장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장마당을 떠날 수 없다. 장마당은 앞으로 취직해야 할 일터며, 장사 품목은 그들의 직종이다. 이는 남한 여학생이 대학에 가서 무엇을 전공 할 것이며 어떤 회사에 취직하겠다는 꿈을 가지는 것과 똑같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남한에서는 시장경제 질서 안에서 경쟁이 이뤄진다면 북한에선 장마당이라는 공간에서 경쟁이 이뤄지는 것이다. 남한에서 전문직 출신여성은 결혼해도 취득한 자격증이 유효하듯이 북한에서 장마당 장사 역시 결혼과 상관없이 유효한 전문직이다.

북한에서 취직해 생활을 꾸려나가는 시대는 지났다. 현재 제대로 가동되는 공장 기업소를 찾아보기 어렵고, 설사 취직해도 안 하느니보다 훨씬 못하다. 쌀 1~2㎏의 월급에 배급이 아예 없는 직장이 태반이다. 취직하게 되면 조직생활로 갖은 통제를 받는데다 여기저기 노력동원을 다녀야 하며 각종 명목으로 걷어가는 것이 또한 엄청 많아진다. 직장 근로자는 직장에서 받는 월급과 배급보다는 직장에 내는 것이 훨씬 많다. 직장 생활로 흑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적자를 보는 셈이다.

그렇지만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에 대한 통제는 매우 엄격해 만일 국가가 알선한 직장에 이유 없이 무단결근하게 되면 행정처벌이 따른다. 심한 경우 감옥행이다. 여성도 이런 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에서 여성에 대한 처벌은 남성에 견주어 볼 때 매우 경미하다. 특히 결혼했을 경우에는 처벌 강도가 더욱 낮아진다.

여성이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자유가 남성에 비해 매우 크다보니 북한 장마당은 여성의 힘으로 운영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마당에선 여성파워가 남성을 압도한다. 과거 여학생도 조국을 위해 군대에 간다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한다는 꿈을 꾸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군대에 가면 자기만 손해고, 좋은 외화벌이 회사라고 해도 결국은 자기 손으로 돈을 버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누구나 점차 깨닫고 있다.

장마당에 대한 동경은 어려서부터 길러진다. 요즘 북한 학교는 온갖 물품을 바치도록 학생들을 끝없이 쥐어짠다. 선생도 학부형에게서 뇌물을 받지 않으면 생계유지가 곤란하다. 그러니 돈이 있고 권세 있는 집 자녀가 선생에게 뇌물을 바치고 학생 간부 자리를 자연스럽게 꿰찬다. 돈이 없으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내라는 것을 잘 낼 수 없고, 교사와 ‘사업’이 안 되기 때문에 돈 많은 집 자제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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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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