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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동반자, 협력… 단어와 수사보다 내실에 주목해야

쏟아지는 ‘외교관계 이름’의 허와 실

  • 강준영│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jykang@hufs.ac.kr│

전략, 동반자, 협력… 단어와 수사보다 내실에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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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관계를 맺는 국가들은 서로 다른 제도나 가치, 이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제도, 가치, 이념은 다르지만 그래도 같은 정책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현실적인 필요에 따른 관계’라는 뉘앙스가 ‘전략적’이라는 말에 담겨 있는 셈이다. 한국이 일본과는 특정한 수사를 쓰지 않는 것이나, 중국이 북한이나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국가와 전략 관계를 맺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다.

통상적으로 전략 관계는 동맹의 바로 아래 단계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렇듯 꼼꼼히 따져보면 전략이라는 용어가 그러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단정할 어떤 근거도 없다. 단지 수사학적인 입장에서 쌍방 간의 특수한 관계를 설정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즉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그냥 동반자 관계보다 상위개념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다만 관계에 대한 수사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분류해보면, 쌍방 간의 기본적 인식이나 친소관계는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략’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일단 군사 안보적 측면의 고려가 강하게 들어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전면적’이라는 말과 함께 ‘협력’이 추가되면 고도의 정치적 신뢰나 지도자 간의 돈독한 관계가 반영되는 최고 수준의 쌍방관계를 암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 ‘전면적 협력 동반자’나 ‘협력 동반자’ 관계는 경제 분야 등 일정한 영역에서 상호 협력하는 관계가 됐다는 강조의 뜻이 담겨 있다.‘전면적’이라는 말이 붙으면 상호간의 관심 영역에 대해 한층 집중적인 협력이 가능함을 천명하는 식이다. 지구상에서 전략 관계나 동반자 관계 등의 용어를 엄밀하게 구분해 가장 철저히 운용한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1996년부터 양자 외교관계를 단순 수교, 선린 우호, 동반자, 전통 우호, 혈맹의 다섯 단계로 나누어 사용해왔다. 냉전 종식 이후 다극화 시대의 도래를 강조하며 강대국 외교에 초점을 맞춰온 중국은 초기에는 ‘전략’이라는 말을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이 무렵만 해도,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북한이나 캄보디아, 옛 알바니아 등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가 중국과 맺을 수 있는 최상위 단계가 바로 동반자 관계, 그 중에서도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중국이 이렇듯 양자 관계를 다양하게 규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의 국력이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핵심과제인 경제발전을 위해 많은 국가가 중국과의 협력을 원했고, 중국 역시 외자 도입과 경제 국제화를 위해 이들과의 규범적 연계가 필요했다. 그러나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특수성을 안고 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특수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을뿐더러 이념적으로도 일반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는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상황이 다양한 수사를 구사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중국은 외교 원칙상 어느 국가와도 동맹을 맺지 않는다. 대신 군사 동맹은 아니지만 상호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장기적인 협력을 통해 발전을 추구하는 관계라는 뜻에서 ‘전략 관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제3자를 겨냥하지 않고, 양자관계를 넘어 지역적 혹은 전 지구적 사안을 함께 논의하며, 단기적 사안뿐 아니라 중장기적 사안들도 논의하는 것을 기초로 하는 관계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에 ‘전략’이라는 용어를 매우 신중하게 사용했던 중국은, 지금은 이미 20여 개 나라와 전략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전략 관계’보다는 ‘동반자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특히 주변국들과의 선린 관계 설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자가 갖고 있는 뜻글자의 특성상 똑같이 전략이라는 말을 쓴다 해도 그 수식어나 부속어에 따라 중요도는 분명 구분된다.

중국이 가장 먼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나라는 1996년 브라질이었다. 중국에 브라질이 제일 중요한 국가여서는 당연히 아닐 것이다. 중국 경제의 국제화나 시장경제 지위 인정을 위해 남미 지역의 최대국가인 브라질과 새로운 관계 설정을 시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중국에 있어 실질적인 전략 관계는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로 압축할 수 있을 테지만, 미국의 경우는 현재까지 ‘21세기 적극 협력 전면적 관계’에 불과하다.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고 기존의 교류를 유지, 확대하는 협력을 계속하길 원하는 중국의 속내가 깔려 있다. 그야말로 전략적이고 방어적인 선택인 것이다. 러시아와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지만 협력이라는 표현을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 사용한 것처럼 합작(合作)이라고 쓰지 않고 협작(協作)이라고 쓴다. 중국식 의미로 협작은 합작보다 더욱 양자적 의미를 강조하는 협력이다.

‘전략’이 들어갔는지 여부보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일본, 영국 등과는 전략이라는 용어를 쓰되 러시아와는 개념적으로 조금 수준이 다르다. 특히 일본과는 ‘전략적 호혜관계’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동반자 관계’를 내세우지 않고 있다. 일부 사안에서 갈등이 전제돼 있음을 인정하고 다만 호혜적 입장에서 협력을 우선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중국이 국력 상승과 더불어 최근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과의 관계다. 인도나 파키스탄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구축, ‘평화 번영을 위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명명된 아세안과의 관계,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설정, 중앙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위해 마련된 상하이 협력조직 등은 선린 우호 관계의 범주로 볼 수 있다. 북한과의 관계는 ‘중국-조선 우호조약’을 기초로 수준을 높인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안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주변지역과 선린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내부적인 안정을 도모하는 중국의 고민이 묻어있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대외관계에서 주목을 받는 것이 아프리카 지역이나 중동, 라틴아메리카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설정이다. 중국은 2000년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을 통해 아프리카연합(AU)과 ‘21세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바 있다.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베네수엘라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결국 전략이라는 말이 포함되느냐 안 되느냐보다는 협력의 내용이 무엇인지가 요즈음의 중국에는 더 중요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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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jykang@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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