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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비화

냉전 붕괴 막후의 ‘레이건 밀사’ 수전 매시

KGB채널 통해 미소 정상회담 중재한 이류 역사학자의 숨은 활약

  • 최원기 │국제문제 저술가 brent1@naver.com

냉전 붕괴 막후의 ‘레이건 밀사’ 수전 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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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1981~89)이 미소 냉전을 어떻게 종식시켰는지에 관한 논쟁은 여전히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예를 들어 레이건 대통령이 ‘별들의 전쟁(SDI)’계획을 추진하려 하자 이를 진짜로 믿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군비 경쟁을 벌이다가 소련이 붕괴했다는 신화가 있다. 또 다른 견해로는 레이건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소련이 제풀에 무너졌다는 시각도 있다. 쉽게 말해 레이건은 냉전 승리라는 과실을 공짜로 따먹은 ‘운 좋은 대통령’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외교 전문 기자인 제임스 만(James Mann)이 펴낸 책 ‘레이건의 반란(The Rebellion of Ronald Reagan)’은 흥미로운 내용을 전한다. 레이건이 냉전 종식 과정에서 한 여인을 통해 고르바초프와 막후에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이 글은 할리우드 B급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이 반세기에 걸친 미소 냉전을 어떻게 끝냈는지를 꼼꼼히 해부한 ‘레이건의 반란’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냉전 붕괴 막후의 ‘레이건 밀사’ 수전 매시

외교 전문 기자인 제임스 만이 펴낸 책 ‘레이건의 반란(The Rebellion of Ronald Reagan)’.

1984년 1월17일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는 흥미로운 ‘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감색 줄무늬 양복 차림의 레이건 대통령은 전용의자에 앉아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한 중년여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통령과 후일 그의 비공식 밀사가 된 수전 매시(Susanne Massie)의 첫 만남이었다.

레이건과 수전 매시는 이 만남을 통해 ‘뜻이 맞는 사이’로 발전했다. 매시는 러시아 전문가였지만 일류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레이건은 매시가 전해주는 소련에 대한 설명에 큰 관심을 보였다. 배우 출신인 레이건은 중앙정보국(CIA)에서 올리는 소련 정보 보고서의 스타일을 싫어했다. 대학원 논문 쓰듯 소련의 군사·정치·경제·사회 분석을 담은 문서는 이미 일흔 줄에 들어선 레이건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반면 매시가 전하는 모스크바 정세에는 ‘사람 냄새’가 있었다. 소련의 일반 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반세기가 넘은 공산당 지배에 대해 소련 인민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또 외부 세계는 어떻게 보는지 생생한 이야기가 있었다.

수전 매시의 남다른 인생 역정도 레이건의 이목을 끌었다. 스위스 출신 부모를 둔 매시는 1950년대 미 해군장교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문제는 아들 로버트가 혈우병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조그만 상처가 생겨도 피가 멎지 않는 혈우병은 매시로 하여금 혈액 제공자와 병원을 찾아 전전하게 만들었다. 그 후 매시는 성인학교에 등록해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혈우병을 앓는 아들을 둔 엄마로서 뭔가 그 심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출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에 여덟 차례 소련을 방문한 매시는 70년대 ‘불새의 나라(Land of Firebird)’ 등 몇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러나 러시아 역사를 다룬 이 책은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 후 매시는 아홉 번째로 소련에 가고자 했지만 소련대사관은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그전에 매시가 펴낸 소련의 망명 시인을 다룬 책이 당국의 비위를 거스른 것이다.

냉전 붕괴 막후의 ‘레이건 밀사’ 수전 매시

1985년 11월20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왼쪽)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틀간 가진 정상회담을 마치면서 악수하고 있다.

모스크바 방문길이 막힌 매시는 워싱턴 정계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워싱턴 정계는 ‘비자 발급을 도와달라’는 이 이류 러시아 전문가의 요청을 무시했다. 그러던 와중에 매시는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의 타이러스 콥 교수와 끈이 닿았다. 당시만 해도 콥 교수는 그렇고 그런 교수에 불과했지만, 레이건이 당선되고 나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멤버로 발탁됐다.

이후 소련 문제를 담당하게 된 콥은 매시의 친필사인이 들어 있는 책 ‘불새의 나라’를 소련 측 당국자들에게 선사하기 시작했다. 1983년 봄 매시는 뉴욕 주재 소련대표부로부터 ‘만나자’는 전갈을 받게 된다. 뉴욕의 소련대표부에서 매시가 만난 사람은 게오르기 아르바토프였다. 당시 KGB 소속이었던 아르바토프는 안드로포프 서기장의 오른팔이었다. 매시가 비자 문제를 꺼내자 아르바토프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신청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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