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호

“핵 문제 해결은 통일로 가는 마지막 관문”

보수와 진보의 대화와 상생 토론회 ② 통일문제

  • 정리·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0-01-11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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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시 : 2009년 11월28일

    ■ 장 소 : 한반도선진화재단 회의실

    ■ 사 회 : 서재진 통일연구원 원장

    ■ 패 널 :

    [보 수]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김호섭 중앙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남창희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진 보]이일영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권만학 경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정경영 가톨릭대 국제정치학과 교수

    1부 상생의 길 : 통일정책에서 보수는 뭐고, 진보는 뭔가.

    “핵 문제 해결은 통일로 가는 마지막 관문”
    서재진: 오늘의 주제는 ‘통일’입니다. 진보, 보수를 대표하는 논객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대화와 상생’이란 취지에 걸맞게 역사적 토론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인류는 보수, 진보의 상호작용과 경쟁을 통해서 진보했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한 저로서는 콩트로부터 보수란 말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무질서, 혼란의 세대를 경험한 콩트는 ‘사회질서가 가능한지’를 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수는 질서와 안정을 중시하는 가치입니다. 부르주아 질서가 등장하고 자본주의가 전개될 때 카를 마르크스가 나타납니다. 마르크스는 인류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서 벗어나려면 변화, 변혁이 필요하다고 설파합니다. 그런데 토론을 시작하면서 한 가지 의구심이 듭니다. 한국사회에서 보수, 진보가 이념적 가치에 따라서 분리된 것인지, 아니면 당파성에 의해서 나눠진 것인지가 그것입니다. 진보와 보수로 불리는 이들이 실제로는 당파성을 기준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을 들여다보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본격적 토론에 앞서 진보,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가 뭔지, 통일문제에선 그러한 가치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좌파 우파로 부르는 게 옳은지, 진보 보수로 부르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주십시오. 상생을 도모하려면 개념부터 올바르게 규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권만학: 보수는 한마디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인류 역사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소수에서 다수로 늘어나는 과정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인류는 진보적 성격을 띠면서 발전했다고 하겠습니다. 역사 발전 단계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분배를 둘러싸고 대립이 발생했는데, 기득권을 가진 쪽은 ‘보수’가 됐고, 자유와 평등을 함께 나눠 갖자는 쪽은 ‘진보’가 됐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각축이 인류의 역사였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역사적 상황에 따라 보수,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는 달라집니다. 부르주아가 등장할 때의 보수 세력은 봉건집단이었습니다. 당시엔 부르주아가 진보의 대표주자였죠. 자본주의가 심화하면서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시대가 옵니다. 그러자 프롤레타리아가 대응 세력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극단적 보수, 극단적 진보가 있는가 하면 온건한 보수, 그리고 진보도 있습니다. 사회문제를 하나둘씩 해결하면 온건한 세력이 늘게 마련입니다. 한국도 민주화가 진전하면서 보수, 진보의 상생이 가능한 시대로 접어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서재진: 권만학 교수가 진보, 보수의 개념을 교과서적으로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역사의 큰 흐름에서 인류가 진보했다는 점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보수, 진보는 교과서의 개념과 어떻게 다를까요?

    김호섭: 좌파와 우파는 외교정책에서 차이를 드러냅니다. 기존 질서를 지키는 게 보수라고 말했는데, 외교정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수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질서를 지키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좌파는 국제질서를 지키는 게 국익에 보탬이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지금의 국제질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국제질서를 지키면서 사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보수입니다. 반면 국제질서가 남북 분단을 가져왔으며, 미국에 의존하게 했기 때문에 현재의 국제질서를 깨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진보가 아닌가 싶습니다. 진보라는 표현보다는 좌파라는 용어를 쓰는 게 옳습니다. 노무현, 김대중 정권이 진보입니까? 좌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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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진

    서재진: 한국의 보수, 진보가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전통적 카테고리에 부합한다는 말씀입니까?

    김호섭: 제가 보수, 진보의 카테고리를 잘 몰라서 그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보수와 진보의 순수한 의미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외교정책에선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구별이 나타납니다.

    서재진: 남창희 교수님은 어떻게 보나요?

    남창희: 한국사회에선 보수, 진보를 나눌 때 북한 변수가 영향을 끼칩니다. 북한 처지에 동정적인, 다시 말해 포용정책,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을 진보로 분류하고, 북한 인권을 거론하거나 세습체제를 비판하는 이들을 보수로 분류하곤 합니다. 권만학 교수가 ‘기존 질서 옹호 세력’과 ‘기존 질서 타파 세력’을 각각 보수와 진보로 분류했습니다. 그 분류대로라면 북한을 동정하는 이들을 ‘진보’로 부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을 ‘보수’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혼란스럽습니다. 어떤 분들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이 자본주의 국가보다 한 단계 진보했으니 ‘북한이 진보다’라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은 북한은 오히려 봉건 왕조에 가깝다고 비판합니다. 북한보다는 남한이 개방된 진보적 사회 아닌가요? 과연 어느 쪽이 ‘진보’이고, 어느 쪽이 ‘보수’일까요? 인권, 기회의 균등, 자유는 모두가 인정하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북한 정권의 본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남남갈등, 보수·진보 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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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창희

    서재진: 남창희 교수가 개념 혼란을 지적했습니다. 앞서 권만학 교수는 진보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더욱 진전하는 변화를 지향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점에서 북한에 접근하는 태도를 잣대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게 혼란스럽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북한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달라서 그런 혼란이 나타난 걸까요? 아니면 대북정책에 대한 당파적 균열이 영향을 끼친 걸까요? 보수이건, 진보이건 ‘북한 체제는 정당하다, 따라서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대북정책을 논의하는 토론은 학술적 형태가 아닌 당파적 양상으로 흘러가곤 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갖고는 이해 안 되는 측면이 있는 거죠. 그래서….

    남창희: 제가 그전에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글을 하나 썼습니다. 북한의 가치중심은 정권 핵심부, 좁게 보면 1000명, 넓게 보면 1만명에 위치한 반면 한국의 가치 중심은 국민, 즉 대중한테 있다는 게 골자입니다. 이 같은 주장에 다른 패널들도 동의합니까? 권만학 교수는 소수의 자유와 대다수의 비(非)자유를 개선하는 게 역사의 방향이자, 진보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한국과 북한 가운데 어느 쪽이 자유가 더 많습니까? 이 부분에서부터 공감대를 이뤄야겠습니다. 그래야만 남남갈등을 풀 수 있어요.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해봅시다.

    권만학: 기왕에 제가 말한 주제로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좀 더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서재진: 그렇게 하세요.

    권만학: 제가 말한 보수와 진보의 개념은 특정 국가 한 곳의 정치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켜 설명한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선 상위계급, 하위계급의 정치적 위치가 진보, 보수라는 범주로 갈립니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을 다른 사회로 옮겨서 적용할 때는 상당히 조심해야 해요. 자유는 참 좋은 거죠. 그런데 ‘자유와 빵 중 어떤 게 더 중요하다고 보느냐’고 개발도상국 국민들에게 물어봅시다. 가난해서 굶는 사람에겐 빵이 더 소중할 수 있습니다. 자유는 빵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을 때 나오는 거예요. 우리도 참혹한 권위주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유가 부족해서 불만을 느낀 사람은 당시에도 처음엔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국민 처지에선 빵을 더 원했던 거거든요. 사실 자유보다는 빵입니다. 빵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동조합이 등장했고, 노조를 결성하려니까 탄압이 들어왔습니다. 그 결과 자유가 필요하다고 자각했으며, 그것이 민주화 요구로 폭발했다고 봅니다. 북한 주민이 100%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핵심은 북한도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루아침에 100%의 자유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미국은 지금 1인당 소득이 1000달러도 안 되는 국가를 향해 인권을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실제로 인권을 증진하려고 그런 주장을 하는 건지, 아니면 인권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건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말로써 북한 인권을 강조한다고 해서 인권이 얼마나 증진될까요? 실효성이 있을까요?

    이일영: 사회자가 당파성에 따라 보수·진보가 갈리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진보 쪽에 앉아 있는 게 옳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남창희 교수 말대로 사회주의가 우월성을 가졌다고 생각해 북한을 동정하는 사람이 이른바 ‘진보’라면 저는 절대로 진보가 아닙니다. 역사적 사회주의와 인류 경제 발전의 진보로서 사회주의는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면 김호섭 교수가 외교정책에 대해선 정확하게 지적한 것 같아요. ‘미국 헤게모니에 계속 편승하느냐, 아니면 다른 길을 생각해 보느냐’는 중요한 쟁점입니다. 진보·보수가 이 같은 쟁점을 주제로 토론하면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보수·진보로 나누지 말고 ‘중도인 것’과 ‘중도가 아닌 것’으로 나눠 부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중도란 뭘까요? 중도를 ‘현실적인 것’이라고 정의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이 주도한 어떤 국제질서가 외교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작용했습니다. 저는 한국의 산업화, 민주화가 굉장히 위대한 성취라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만 잘해서 산업화, 민주화를 이룬 게 아닙니다. 미국 헤게모니 안의 좁은 오솔길을 우리가 개척한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헤게모니가 변화할 조짐입니다.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과거처럼 편승하는 게 앞으로도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심각하게 논의해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논의를 안 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앞서 중도를 현실적인 것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주도의 헤게모니도 현실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부정한다고 해서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 그런데 새롭게 태동하는 질서도 그것과 함께 들여다봐야 합니다. 우리가 나아갈 현실적인 길이 무엇인지 토론하고, 합의하려는 세력이 너무나 없습니다.

    김호섭: 우리 쪽에 앉아야 되겠는데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바로 보수예요.

    이일영: 그렇습니까? 그게 보수입니까?

    김호섭: 조금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권만학: 김호섭 교수가 상당히 좋아하네요.

    김호섭: 딱 한 가지 생각이 다른 게 있는데, 이일영 교수는 그것만 바꾸면 저보다 더 보수예요.

    서재진: 이일영 교수의 발언은 대단히 현실적입니다. 현실은 끝없이 변하는데 과거에 안주하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한다는 얘기로 이해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리가 미국이 만들어놓은 국제질서에 잘 편승해서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주화를 달성했지만 그러한 구도가 영원할 것이냐, 중국이 부상하는 상황에서 미국 헤게모니에 편승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이냐는 지적이었습니다.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적응 방안을 모색하자는 말씀인데, 이 교수의 이런 견해는 김호섭 교수의 평가와는 다르게 아주 진보적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변화를 파악하지 못하고 과거의 관념, 가치에 안주하는 게 보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창희: 사회자가 북한 정권을 말하고 있군요. 북한이 과거에 안주한다는 것 아닙니까?

    서재진: 북한이 과거의 관념과 가치에 안주해서 저 모양, 저 꼴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변화하는 국제 질서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입니다. 이일영 교수의 지적이 오늘 토론의 중요한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가 좋고, 진보가 나쁘다’ ‘진보가 좋고, 보수가 나쁘다’를 논할 게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 보수정책을 선택하고, 어느 상황에서 진보정책을 선택할지를 논의하는 게 올바른 방향 아닐까요. ‘지금 이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밝히는 게 사회과학의 역할입니다.

    2부 진보, 보수가 말하는 ‘통일로 가는 길’

    서재진: 2부에선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통일을 위한 정책방향을 토론하겠습니다. 먼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대북정책의 득실과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햇볕정책의 득과 실에 대해서는 그간 연구가 많았습니다. 이 자리에선 과거의 논의를 되풀이하기보다는 간략하게 평가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고, 앞으로 남북관계를 어떻게 견인해야 하는지를 논의하겠습니다.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권만학 교수가 먼저 말씀해주십시오.

    권만학: 1부에서 말한 대로 보수, 진보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기득권을 공유하려는 세력을 가리킵니다. 통일과 관련해 보수의 시각은 3,4,5공화국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엔 승공, 반공이 통일의 키워드였습니다. 북한에 자유민주주의를 전파해 통일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흡수통일을 의미하죠. 반면 진보는 남북한의 평화 공존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평화공존을 이루고자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이 나왔다고 봅니다. 햇볕정책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탈냉전 상황에서 한반도만 냉전을 고수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서독이 동독에 했던 것처럼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 역량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열정은 좋았는데 정책의 효율성이 낮았어요. 대북정책과 관련해 국민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지지세력을 확보하는 일에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나치게 강경합니다. 비핵·개방3000은 비핵화를 남북관계 발전의 전제로 삼고 있는데, 이는 일방적 시각으로 북한을 들여다본 겁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북한은 이라크의 사례를 보면서 실제로 위기감을 느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부분을 고려 하지 않고 ‘네가 핵무기를 개발하느냐, 그건 말이 안 된다’고만 밀어붙입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핵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봅니다.

    서재진: 김호섭 교수는 어떻게 보나요?

    김호섭: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굉장히 잘못된 것입니다. 햇볕을 쪼이면 외투를 벗는다는 주장인데, 북한은 햇볕을 쪼여도 외투를 벗지 않았습니다. 결과물이 아무것도 없었죠. 우리는 햇볕이라고 했는데 북한은 그것을 방사능으로 봤습니다. 외교정책은 결과가 중요합니다. 결과가 엉망이기 때문에 좋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결과가 실망스러웠을까요? 김정일 체제와 북한 주민을 분리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햇볕정책은 김정일 체제가 강해지면 대한민국에 플러스가 된다는 생각을 전제로 삼았어요. ‘북한이 지금 붕괴하면 큰일 난다, 한국 경제가 망한다’고 국민들에게 말하면서 김정일을 원조했습니다. 김정일 체제가 강해지면 대한민국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통일정책,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한국도 외국으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금으로 받은 적이 별로 없어요. 현금을 주면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주는 사람이 알 도리가 없습니다. 햇볕정책은 전제와 방법이 모두 틀렸습니다. 햇볕정책을 다시 도입하는 건 절대로 안 됩니다.

    “핵 문제 해결은 통일로 가는 마지막 관문”

    정경영

    정경영: 남북한 신뢰 구축 측면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의 대북정책은 성공했다고 봅니다. 다만 한반도의 특수성을 간파하지 못한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의 역학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만 잘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한·미 관계를 비롯한 주변의 역학관계가 흐트러졌습니다. 상대적으로 김대중 정부는 국제관계를 매끄럽게 처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한미 관계가 심화·발전하는 모습은 성과로 봐야겠습니다만, 북한을 무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급변 상황 때 북한이 중국과 가까이 지내는 쪽으로 마음을 먹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도주의적 북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주민들의 마음을 우리 쪽으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서재진: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사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조영기: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단순 지원 중심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은 개발지원 정책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상생공영정책도 제가 파악하기로는 개발지원에 무게를 뒀습니다. 이 부분에선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 서로 비슷하다는 생각입니다. 평화가 상생이고, 번영이 공영 아닙니까? 두 정책은 동일한 패러다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빠뜨린 게 있습니다. 무역이 이뤄지면서 상호의존이 호의적 관계로 발전하면 평화가 오지만 종속적 관계가 구축되면 갈등이 발생합니다. 역대 정부는 햇볕정책을 구사하면서 국민에게 평화만 부각했습니다. 갈등이 일어날 소지에 대해선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죠. 노무현 정부는 ‘비핵’과 ‘평화’를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2006년 실시된 북한의 1차 핵실험은 개발 지원이라는 호의를 북한이 송두리째 무너뜨린 것입니다. 따라서 햇볕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라고 봐야 합니다.

    서재진: 논점을 좁히겠습니다. 권만학 교수가 지적한 대로 김대중 정부도 흡수통일을 목표로 햇볕정책을 펼쳤습니다. 결국 북한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바꾸는 게….

    권만학: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보수세력과 흡수통일을 연결지어 말했습니다.

    서재진: 예. 알겠습니다. 제가 잘못 알아들었네요. 어쨌거나 김대중 정부도 대북정책의 목표는 북한 체제의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햇볕을 쪼여서 스탈린 체제의 옷을 벗긴다는 거였죠. 이명박 정부도 북한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북한이 비핵, 개방에 나서면 1인당 소득을 3000달러로 높여주겠다는 게 핵심인데, 목표에선 햇볕정책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수단과 방법에서 두 정책이 서로 다릅니다. ‘햇볕을 쪼이느냐’ ‘압박하느냐’에서 차이점을 드러낸 것이죠. 김정일 정권은 경제 발전보다는 권력 유지를 바랍니다. 핵 무장은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수단·방법을 중심으로 앞선 두 정권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교해주십시오.

    “핵 문제 해결은 통일로 가는 마지막 관문”

    토론에 참여한 보수 진영 학자들. 왼쪽부터 조영기, 남창희, 김호섭 교수

    남창희: 어떤 처방이 핵 위협을 막는 데 약발이 잘 먹힐지를 물은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은 우리가 목도한 것처럼 객관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역사의 진보는 평화 쪽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핵 확산은 평화에 역행하는 일이죠. 북한은 역사의 방향과는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정책이 실패한 것은 김정일 정권의 위협을 잘못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불가피한 자위 수단으로써 핵무장에 나섰다고 선전합니다. 객관적으로 봅시다. 지금 대한민국이 북한을 무력으로 침공하려고 하나요? 민중봉기를 부추겨 북한의 붕괴를 유도하면 우리가 뒷감당을 할 수 있나요? 미국이 과연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일 수 있을까요? 북한 정권도 한국, 미국을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일은 다릅니다. 북한 정권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주민들이 아는 걸 두려워합니다. 북한 경제를 잠식하는 중국도 북한에는 위협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북한 정권이 당면한 위협구조를 잘못 파악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을 지원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빠뜨린 게 있습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보상만으로는 안 됩니다. 약속을 어길 때는 상응하는 처벌이 가해진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원해야 합니다. 보상과 압박을 결합한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해야 합니다. 그것이 북한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서재진: 중요한 포인트를 말씀했다고 생각합니다. 북중 관계와 관련해 미국사회와 한국사회가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과 그 측근들은 중국을 위협으로 인식합니다. 내부적으로는 적대시하고 있고요. 김정일은 중국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는데 노무현 정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일영: 햇볕정책의 평가와 관련해서 현실적인 대북정책 수단이 뭐냐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토론해보자고 사회자가 말했습니다. 물론 당근이 필요하면 채찍도 있어야겠죠. 유화정책, 포용정책, 봉쇄정책, 무시정책을 국면마다 잘 결합해야 합니다. 남북 관계는 상당히 혼합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적으로 생각해봅시다. 포용은 모든 걸 다 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게임이론을 빌려오면 협조-협조가 최적균형이 될 수 있고, 비협조-비협조가 또 다른 균형이 될 수 있어요. 저쪽은 비협조적인데 우리만 협조하면 우리가 손해를 보는 것이죠. 반대로 우리만 이득을 보는 경우도 생기겠고요. 어쨌거나 대북정책의 목표는 협조-협조를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진보, 보수로 나뉘어서 싸울 일은 아니라고 봐요.

    남창희: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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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일영

    이일영: 비협조-비협조로 고착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분단체제, 냉전질서입니다. 비협조-비협조 구도는 비용도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사회자가 햇볕정책의 취지는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취지가 좋았다는 부분에 대해서 보수, 진보가 합의했으면 좋겠습니다. 분단 비용을 안고서 계속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과거엔 길이 잘 안 뚫리니 현금을 줬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강조하건대, 지금 필요한 것은 여러 가지 정책의 배열, 혼합입니다.

    김호섭: 햇볕정책의 이점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그게 뭐냐면 ‘햇볕정책은 소용이 없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려준 겁니다. 김정일 체제의 실상을 대한민국 국민에게 알려준 게 교훈이라고 하겠습니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북한을 유격대 국가라고 규정합니다. 참 좋은 말이에요. 유격대의 성격이 뭐냐면? 저는 약탈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협조하고 싶은데 그쪽에서 비협조로 나오는 겁니다.

    이일영: 그렇게 말하면…. 지금 북한에 시장도 많이 생겼거든요.

    김호섭: 김정일 체제가 시장을 원하지는 않았겠지요.

    이일영: 원하지 않은 결과인 것은 맞습니다.

    김호섭: 우리가 싫든 좋든 역사의 흐름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갈 수밖에 없어요. 공산주의, 사회주의보다 자유민주주의가 더 강력합니다. 운 좋게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였습니다. 북한은 운이 좀 나빴다고 할 수 있겠지요. 운이 나빠서 공산주의를 지금껏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정권이 무너져야 합니다.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이일영: 그러면 통일이 안 될 것 같은데요.

    김호섭: 그래서 분단 상황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현재로선 적대적 평화 상태를 관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우호적 평화로 가고 싶지만 김정일이 협조를 안 해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적대적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란 반론이 있겠으나 허위의 평화든 거짓말의 평화든 평화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권만학: 지난 대선 때 저는 이명박 캠프의 반대편에서 정책을 총괄하면서 비핵·개방3000 구상을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핵 폐기가 전제처럼 돼 있었습니다. 결국 핵 문제가 해결돼야 다른 일을 한다는 겁니다. 진보라고 해서 어떻게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겠습니까? 그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죠. 다만 비핵화를 전제로 삼은 정책이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서 우리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책입니다. 남북관계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얘기죠. 북한은 실제로 위협을 느꼈을 겁니다. 핵 개발은 그런 부분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또 다른 문제점은 뭣 하나 주는 것 없이 북한을 자극한다는 겁니다. 이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로 통일하겠다고 말했는데 북한 처지에선 ‘그런 쪽으로 압박해오겠구나’라고 느꼈을 거예요. 햇볕정책이 어떤 결과를 얻어냈느냐고 비판하는데, 돈 몇 푼 줬다고 북한이 외투를 벗지 않습니다. 최대한 잡아서 연 2억~3억달러가 북한으로 갔습니다. 아니, 북한의 경제규모가 얼마인데, 그만큼 받고서 외투 벗고 몸까지 주겠습니까? 금강산 다녀오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데 햇볕정책 이전에 어땠습니까? 냉전시절 남북관계가 어땠나요? 특히 개성공단은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모델입니다.

    “핵 문제 해결은 통일로 가는 마지막 관문”

    김호섭

    서재진: 토론이 몹시 뜨겁습니다. 잠시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새로운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권만학 교수가 조금 줘놓고 외투를 안 벗었다고 비판하느냐면서 더 줘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또한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미래 모델이라고도 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려는 게 이해가 된다는 취지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이 세 개의 논점을 중심으로 얘기하십시오.

    조영기: 권만학 교수가 북한 핵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말했는데 그것은…. 북한에 지금 무기급 플루토늄이 50~60kg가량 있다고 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을 때 위협을 받는 게 과연 누구인지 진보 쪽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핵무기가 전쟁 억지를 위한 것인지, 남한을 위협하려는 공격용인지, 공격용이라면 타깃이 미국인지, 일본인지, 한국인지를 진보세력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해요. 보수 쪽에서 그런 얘기를 하면 ‘꼴통’이란 비판을 듣습니다. 오히려 진보진영에서 그런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서재진: 참고로 말씀 드리면 통일연구원이 조선중앙방송, 노동신문 등을 면밀하게 분석하는데, 북한이 핵을 남한에 사용하겠다고 언급했어요. 그것도 직접적으로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북한의 핵은 대남용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일영: 잘 모르겠습니다만 핵은 남한에 위협이 되겠지요. 권만학 교수도 핵 개발이 좋다는 취지로 말한 건 아닐 테고….

    권만학: 그렇습니다. 10초만 발언하겠습니다. 그때그때 말하고 싶은데, 기다려야 해서 답답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일영: 어느 누가 북한 핵이 우리한테 위협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체할 것인지가 중요하죠. ‘채찍을 휘두를 것인지, 당근을 줄 것인지’로 의견이 갈리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궁극적으로 평화, 그러니까 협조-협조 게임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을 무너뜨린다? 그런 구도는 어려워요. 우리가 무너뜨린다는 쪽으로 마음을 먹으면 북한은 가장 낮은 비용으로 체제를 지킬 수 있는 핵을 보유하려고 할 겁니다. 미국과 옛 소련 간에도 합의가 이뤄진 예가 있습니다.

    김호섭: 소련은 체제 성격이 바뀌었잖아요.

    이일영: 그것도 미·소 간의 일종의 타협이었죠.

    김호섭: 타협이 아니고 체제가 무너져서 핵 문제가 풀린 거죠.

    권만학: 1980년대에도 미소 간 합의에 의해서 핵을 줄였습니다.

    김호섭: 압박을 해야 해요. 타협은 안 됩니다.

    서재진: 이쯤에서 정리하고 주제를 바꾸겠습니다. 지금부터 통일을 위한 정책방향을 논의하겠습니다. 이상론을 말하지 말고 현실에 발을 디디고 얘기해주세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오바마 브랜드’로 내놓았습니다. 그 덕분에 노벨평화상도 받았고요. 오바마 행정부의 핵정책은 테러와의 전쟁 연장선에 있습니다. 핵무기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면 9·11보다 더 큰 재앙이 오리라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제재를 풀고 북한과 경협에 나서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남북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만의 어젠다가 필요하다면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무시하고 대북지원, 남북경협에 나서야 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중국이 동북지역 개발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압록강을 건너서 북한으로 침투하고 있으니까 우리도 대북제재 풀고 하루 빨리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경제를 선점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도 있고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스탠스가 적절한지, 아니면 주어진 상황을 무시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토론해주십시오.

    김호섭: 김정일 체제에서 비핵화를 결단해야 합니다. 김정일이 결단하지 않는 한 협정을 맺었건, 뭘 했건,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그 사람은 수시로 협정 같은 건 지킬 생각이 없는 듯 행동합니다. 김정일 체제는 문서로 약속한 것은 별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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