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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규명위 보고서를 비판한다

‘반민족행위 핵심증거’가 총독부 관제언론 기사?

  • 홍진표│사단법인 시대정신 상근이사 jpho@chol.com│

‘반민족행위 핵심증거’가 총독부 관제언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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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 2010년은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다. 또한 최근에는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되어 노무현 정부에서 본격화된 이른바 ‘과거사 진상규명’의 수확기가 닥쳐 친일 열풍이 휩쓸고 지나가기도 했다. 2009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가 4389명을 수록한 친일인명사전을 펴냈고, 그 직후에는 대통령직속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1005명의 친일반민족행위를 담은 4부 25권, 모두 2만1000여 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대통령직속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반민규명위)는 2006년과 2007년에 301명을 수록한 보고서를 냈고, 이번에 704명을 새로 추가했다. 새로 발표한 704명은 일제강점기 막바지인 이른바 3기(1937~45년)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백낙준 전 연희전문학교 교장, 김활란 전 이화여대 총장, 김성수 보성전문학교 교장, 박영효, 최남선, 유진오, 서정주, 유치진, 김기창, 현제명 등 각계 지도급 인사들이 포함돼 논란이 커졌다.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는 민간단체인 데 반해 반민규명위는 정부기관이기 때문에 그 권위와 영향력을 비교할 수 없어, 마치 사법부의 유죄판결과 같은 강박감을 주게 된다.

반민규명위에 관한 논란은 그 태생 시점에 관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은 건국 직후 1948년 10월부터 약 1년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만들어 친일혐의자를 대상으로 총 570건을 특별재판부에 송치했다. 이처럼 근대적 사법제도하에서도 체제가 전환될 경우 일시적으로 정상적인 사법제도를 초월한 과거사 단죄가 이뤄진다. 혁명적 상황으로 인정되는 이러한 특수 시기에는 소급처벌 같은 초법적 행위가 용인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과거사 캐기는 체제 변화나 혁명적 상황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시기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이 같은 이례적인 과거사 캐기가 현실에서 직면한 난관은 그들이 대상으로 삼은 과거가 너무 오래되어 정상적인 사법체계의 가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친일인사 규명은 그 혐의자 대다수가 이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 심문을 할 수도 없고 또 변명도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위원회가 사료를 찾아 친일인사 여부를 결론내리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몇몇 사람이 국가의 권능을 빌려 당사자의 반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문서만으로 내린 결정의 신뢰성에 관해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친일’이라는 단어는 매우 자명해 보이지만, 엄밀한 잣대를 대려는 순간 그 정의를 놓고 혼란을 피할 수 없다. 흔히 거론되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의 프랑스 점령은 4년에 그치지만, 일제는 무려 34년 11개월에 걸쳐 조선을 지배했다. 그 결과 일제 협력자 외에도 체제 순응자라는 영역이 발생하고, 협력자라는 범주 안에서도 적극성이나 불가피성, 강제성 등 여러 요인이 얽혀 있다. 그동안 역사 연구부터 정치적 비판, 혹은 단순한 욕설을 위해 사용됐던 친일이라는 용어는 국가기관이 개입하는 순간부터 매우 구체적인 정의를 내려야 할 필요가 생겼다. 위원회의 명칭 앞에 ‘친일반민족’이라고 규정했듯 정권 주도하의 친일 규명은 역사 연구의 차원이 아니라 사실상 범죄자를 찾는 사법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반민규명위의 관련법에는 20개 항목에 걸친 친일 규정이 명문화됐다. 예컨대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소위(少尉)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라는 조항은, 일단 소위 이상 계급에 복무한 사람은 친일 혐의자에 오르게 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고등문관 이상’이라는 규정도 마찬가지다. 계급이 높으면 친일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특정계급 이하는 논외로 해도 된다는 가설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복잡다단한 인간세상의 현실이 이처럼 쉽게 재단될 수 없음은 부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위가 높으면 그만큼 조선인의 처지에서 일제의 폭력성을 완화시킬 여지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군과 관료에 대해 지위를 위주로 친일 기준을 세우면 일제치하에서 고위직에 오르려는 시도 자체가 반민족성이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군 장교나 고등문관이 되기 위해 일본인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시험에 합격한 것이 범죄 예비자 관문을 통과한 셈이 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중반 이후 대다수 조선인이 식민지체제에 편입된 조건에서 유독 고위직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 용의자 선상에 올리는 차별화는 지나친 단순화다.

이 법의 친일 기준에는 ‘적극’‘주도’‘현저히’‘중심’ 등의 단어가 도합 10회 이상 사용된다. 이른바 주동자, 방조자, 피동자 등을 구분해 엄격함을 견지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차이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지를 놓고 위원회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폭을 열어준 측면도 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같은 사료를 보고서도 학자마다 각 인물의 역할 정도에 관해 견해 차이가 발생한다. 심지어 최근사인 1987년 6·29선언을 놓고도 그 아이디어를 누가 냈는지, 누가 주도적으로 추진했는지에 대해서 서로 자기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여럿 존재한다. 그러나 정해진 시한 내에 결론을 내려야 하는 반민규명위는 이 어려운 문제를 다수결이라는 간단한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다.

반민규명위가 펴낸 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보면 시기를 놓친 친일인사 찾아내기에 대한 우려가 상당 부분 경청할 가치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증거의 일면성과 빈약함이다. 반민규명위 활동의 대부분은 신문이나 잡지 등의 증거 수집과 104차례에 걸친 회의 두 가지로 집약된다.

일제하 관제언론의 신뢰성

그러나 신문 등 자료의 한계는 오류가능성을 벗어날 수 없고, 특히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가 각종 전쟁지원단체를 조직하면서 대중 영향력을 고려해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실적 위주의 명의 도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보화시대이자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요즘에도 간혹 시민단체의 성명이나 연대기구 참여와 관련해 명의 도용 논란이 벌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심리전을 위한 선전매체로 전락한 전시(戰時) 관제언론이 도덕적 영향력이 높은 사람들의 이름을 빌려 멋대로 작문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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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표│사단법인 시대정신 상근이사 jpho@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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