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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외환딜러가 본 북한 화폐개혁의 속뜻

“박정희 모델 답습한 개혁·개방 준비작업…실패라 할 수 없다”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nga.com |

탈북 외환딜러가 본 북한 화폐개혁의 속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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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폐개혁은 내각 소관, 당 계획재정부장은 관련 없어
  • ●‘잠든 돈’ 소멸시켜 자금여력 확보하는 게 주목적
  • ●통화·외환정책 주도권 확보는 경제개혁의 출발점
  • ●개발은행 설립과 1988년 통일채권의 경험
  • ●후계체제 발맞춰 경제상황 개선하려는 국가주도형 세팅
  • ●핵문제 해결 통한 미국發 지원금을 종자돈으로 기대
  • ●입맛 맞춰 관점 따라 해석하는 언론, 전문가, 탈북자들
탈북 외환딜러가 본 북한 화폐개혁의 속뜻
북한은 과연 몰락의 길을 가고 있는가. 지난해 11월 단행된 화폐개혁 이후 북한 전문 매체들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은 사뭇 심각하다. 화폐개혁의 총체적인 실패로 인해 후유증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민심이반으로 체제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져 나온다. 평양 지도부의 통치권이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는 전망조차 제기된다.

대표적인 것이 박남기 조선노동당 계획재정부장과 김동운 39호실장이 화폐개혁 실패와 관련해 경질됐다는 2월 초순의 소식이다. 최익규 당 영화부장 역시 화폐개혁 관련 홍보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지고 좌천됐다는 것. 특히 최근 들어 북한 소식의 주요 유통창구로 자리매김한 전문 인터넷 매체들은, 화폐개혁으로 인해 시장 기능이 급속도로 위축됨에 따라 식량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일부 국경지역 주변에서는 소요에 준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2월 중순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화폐개혁의 실패를 인정했고 김영일 내각총리가 인민반장(한국의 동장) 수천 명을 모아놓고 이에 대해 사과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러한 소식은 북한의 화폐개혁과 외환관리 정책 변경이 1990년대 이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시장경제적 요소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그간 후퇴일로를 거듭하던 계획경제를 복원해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국가운영시스템을 회복하겠다는 의도라는 것. 이러한 평양 핵심부의 의지가 이미 자리를 잡은 시장과 그에 적응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한 것이 화폐개혁 실패의 주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북한도 국가다”

‘신동아’가 소개하는 탈북 외환딜러 최세웅(50)씨의 분석은 이러한 기존 시각과 사뭇 관점이 다르다. 화폐개혁을 비롯해 최근 북한이 보여주는 경제정책은 개혁과 개방을 위한 도입부 작업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림은 박정희 정부가 추진했던 국가주도형 경제개발 모델과 흡사하고, 후계체제 구축이나 북핵 문제와 관련한 국제정세의 변화에 발맞춰 이러한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한다는 게 최씨의 분석이다.

1995년 탈북한 최씨는 북한 노동당 재정경리부장(한국의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희벽씨의 차남이다. 1979년 평양외국어학원, 1984년 김일성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후 북한 노동당의 대외결제를 담당하는 조선대성은행에 입행해 외환담당 과장과 국제부 차장을 거쳤다. 이후 수년간 런던 현지법인에서 대표로 일하며 금과 외환선물을 거래하다 조선통일발전은행 부총재보 직을 마지막으로 서울에 온 그는, 이후 금융결제원 자금중개실과 나라종합금융 국제부 과장, 외국계기업 서울법인 대표 등으로 일했다. 북한의 통화정책이나 외환관리 실무를 담당해본 사실상 유일한 고위급 탈북자다.

탈북 외환딜러가 본 북한 화폐개혁의 속뜻

최세웅씨.

▼ 북한의 화폐개혁과 관련해 최근 전해지는 소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언론에서는 북한 화폐개혁이 실패했다고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특히 화폐개혁 때문에 박남기나 김동운이 해임됐다는 보도는 북한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같은 중요조치들은 모두 김 위원장의 방침을 받아 이뤄지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구조가 아니다. 남한이나 일본에서 자기 식으로 해석하는 것뿐이다.

화폐개혁 문제는 기본적으로 내각 소관이다. 화폐개혁을 한다면 중앙은행과 내각 재정성이 먼저 기안을 만든다. 일종의 태스크포스를 조직해서 기안을 심사했을 것이다. 시뮬레이션도 실시한다. 그 결과 필요성이 인정되면 김 위원장이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프로세스다.

북한도 국가다. 지식층, 전문가들이 있다. 그 많은 인구 가운데 쓸 만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 왜 없겠는가. 해외유학을 다녀온 사람도 적잖다. 북한을 수준 이하의 비정상적인 집단으로만 치부하면 그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디로 가려 하는지 파악할 수 없다.

북한에서 통화와 관련된 계획 수립에 직접 관여해본 경험을 갖고 말하자면,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 화폐개혁을 단행한 전례가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화폐개혁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일부의 고통을 수반하는 과정이므로 그로 인해 많은 변화가 생기고 초기 혼란도 만만찮겠지만, 모두 예측 가능한 변수들이다. 정책이 기본목적을 달성했다면 실패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고 화폐개혁의 목적은 달성됐다고 봐야 한다.

화폐개혁의 실패라는 건 사전에 정보가 새서 인민들이 사재기를 하고 난리를 치는 경우다. 그러나 북한은 워낙 통제가 강한 국가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기 쉽지 않다. 이번 화폐개혁을 앞두고 전국적인 사재기가 벌어졌다는 소식이 전혀 없다는 건 북한의 체제 통제력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의미도 된다. 국가기구가 그만큼 관련정보를 제대로 통제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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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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