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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연구 | 김정일의 잇단 방중과 중국의 대외정책

대북전략 목표는 북한 체제붕괴 저지와 ‘동북 4성’(동북 3성+북한) 구축

中, 21세기 동아시아 질서 = 조공체제(朝貢體制) 전략 세워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대북전략 목표는 북한 체제붕괴 저지와 ‘동북 4성’(동북 3성+북한)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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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이 바라는 21세기의 동아시아 질서는 조공체제(朝貢體制)로의 복귀다.
  • 중국이 동양과 서양이라는 표현 대신 중서(中西), 즉 중국과 서양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그동안 삼동심원(三同心圓) 전략을 대외전략으로 추진해왔다.
  • 대만, 홍콩, 마카오 등 아편전쟁으로 빼앗겼던 자국의 영토와 독립을 주장해온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 자치구를 자국의 영토에 완전 통합시킨 뒤 북한, 파키스탄, 미얀마 등 국경을 맞댄 국가들을 자국에 종속시킨다는 정책이다.
  •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중앙아시아 각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미국을 동심원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마지막 단계다.
  • 중국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북한을 전폭 지지한 것,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잇단 방중의 이면에는 모두 이런 전략이 숨어 있다.
대북전략 목표는 북한 체제붕괴 저지와 ‘동북 4성’(동북 3성+북한) 구축

5월3일부터 7일까지 중국을 비공식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중국의 고사성어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준다는 뜻으로, 상대를 제압하되 강압적이기보다는 마음으로 굴복하게 만드는 책략을 말한다. 이 고사성어는 삼국지(三國志)에서 제갈량(諸葛亮)이 남만(南蠻)의 왕 맹획(孟獲)을 사로잡은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남만은 중국의 역대 왕조가 남방 민족을 멸시하여 일컫던 이름이다. 남만은 현재 중국 윈난(雲南)성 서부로, 미얀마 동북부와 맞닿은 국경지대다. 미얀마의 다수종족인 버마족은 중국-티베트계 민족으로, 10세기경 윈난성에서 남하해 에야워디강 중류 유역에 터전을 마련했다. 중국에선 미얀마를 표(驃:당나라), 포감(蒲甘:송), 면(緬:원), 면전(緬甸:명청)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미얀마는 중국의 조공국(朝貢國·tributary state)이었다.

미얀마 군사정부의 최고지도자인 탄 슈웨 장군이 9월7일부터 11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7년 만에 베이징을 찾아갔던 탄 슈웨 장군의 방문 목적은 11월7일 실시 예정인 총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탄 슈웨 장군은 그동안 미얀마 군정을 지원해온 중국에 총선 이후 출범할 미얀마 민간정부와도 밀월 관계를 더욱 강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탄 슈웨 장군이 이끌고 있는 미얀마 군정은 1988년 집권 이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에 대한 가택연금을 비롯해 민주화운동 세력과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는 등 철권통치를 해왔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미얀마에 대해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해왔으나,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미얀마 군정은 지금까지 끄떡없이 버텨왔다. 중국은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얀마 서부 시트웨항에서 중국 윈난성 성도 쿤밍(昆明)을 연결하는 2380㎞ 길이의 송유관과 천연가스관 건설 공사를 따내는 등 각종 경제적 이익을 얻어냈다. 2013년 이 파이프라인이 완공되면 중국은 말라카 해협을 완전히 우회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은 이미 미얀마를 통해 인도양 접근권을 확보했으며, 미얀마 영토인 일부 섬에도 군사기지를 건설, 레이더 등을 배치하고 있다.

대국굴기의 속셈

중국인은 항상 중화(中華·Middle Kingdom)주의를 자랑스럽게 내세워왔다. 중화주의는 화이(華夷)사상에서 출발했다. 중원 대륙의 왕조만 문명화한 중화국(中華國)이고, 주변국은 미개한 이적(夷狄)의 나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상이다. 중국 역대 황제는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라고 했고, 나라가 아닌 천하(天下)를 다스린다고 말해왔다. 중국 역대 왕조는 현대적으로 볼 때 제국이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제1차 아편전쟁(1840~42)에서 패배하기 이전까지는 아시아의 유일한 초강대국이었다.

중국은 현재 공식 국호인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자나 준말이 아니다. 이미 기원전 7세기 주나라 시대 문헌에서부터 중국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중국이 중화제국을 지칭하게 된 것은 춘추전국시대와 진나라 시대를 거쳐 한나라 시대부터 시작됐다.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는 주변국들과 주종관계를 맺고 조공(朝貢)을 받아왔다. 중국의 역사교과서가 중국 역대 왕조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은 아시아 국가들을 지방정권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식민지처럼 기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편전쟁 이전에 조선, 류큐(琉球), 베트남 등이 중국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중국을 종주국이라고 불렀다. 중국은 주변국들을 관리하면서 안전을 보장해주었고, 주변국들은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치면서 중국의 앞선 문물을 수입했다. 아편전쟁에서 서구에 패배한 이후 청나라의 몰락과 함께 중화제국은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됐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내몰린 것이다. 중국인들이 1842년(아편전쟁 패배와 불평등조약 체결)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1949년까지를 굴욕의 세기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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