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호

권력실세와 정보요원의 공생사슬 비화

박영준 정적들 표적 사찰 사찰주역 요직 주고 비호하고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0-12-21 1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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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실세와 정보요원의 공생사슬 비화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2008년 당시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현 지식경제부 차관) 밑에 있었던 이창화 청와대 행정관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사찰했다고 한다. C·그룹 임병석 회장 누나가 운영하는 강남 모 일식집에서 식사를 한 것이 사찰의 과녁이 됐다”고 최근 밝혔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이 박 전 대표를 왜 그 집에 모시고 갔는지, 거기서 박 전 대표와 임 회장의 회동이 있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이창화 팀은 여주인과 종업원을 내사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성헌 의원은 “2007년 9월10일경 박 전 대표와 한 번 간 적은 있으나 임 회장은 만나지 않았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기자들에게 “(임 회장이) 누구예요”라면서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이석현 의원의 이러한 주장은 사정기관의 민간인-정치인 사찰 논란과 맞물려 정치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이 의원 등 야권과 일부 언론은 국정원 소속 직원인 이창화씨가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김성호 전 국가정보원장, 전옥현 전 국정원 차장의 부인도 사찰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씨는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지만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국회에서 “청와대에 파견된 직원으로 청와대가 지휘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국정원이 뭐라고 하기 힘들다”고 비껴갔다.

    박영준과 함께 근무



    세간에서 우선 주목하는 점은 현 정권 실세인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이 이창화씨를 어떠한 경위로 자기 수하에 둔 것인지, 이창화씨가 ‘박 차관을 위해’ 사찰에 나선 것인지 여부다. 권력의 사유화나 시민권의 침해와 관련된 의혹은 공적인 알 권리가 우선시되므로 추적보도의 필요성이 큰 사안이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이창화씨는 청와대로 파견돼 당시 ‘왕 비서관’으로 불리던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의 수하가 됐다. 서울대를 졸업한 이창화씨는 박 차관과 고향(경북)이 같다. 박 차관은 기획조정비서관 시절 청와대 내 인사, 정무, 감찰 등 핵심 역할을 맡았다. 사정기관 및 여권 관계자는 “박영준 차관과 이창화씨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였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석현 의원이 주장한 ‘이창화씨의 사찰 의혹’ 세 건에 대해 청와대, 사정기관, 여권 관계자들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몇 가지 새로운 증언을 얻을 수 있었다.

    먼저 ‘이창화의 박근혜 뒷조사’ 의혹과 관련, 여권 관계자는 자신이 겪었다는 한 일화를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2007년 대선 과정에서 검찰이 ‘국정원의 박근혜 뒷조사’ 의혹을 수사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창화씨가 어떤 오해를 받고 있었는지 급히 만나자고 했다. 만나보니 그가 어떤 제안을 하더라. 그 제안 내용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창화씨가 당시 왜 검찰수사에 반응했는지, 무엇을 제안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나올 수 있다. 정치권과 언론의 빗발치는 의혹 제기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이창화씨는 박근혜 뒷조사의 진위에 대해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다.

    야당의 주장과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창화씨는 2008년 초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 수하 행정관으로 재임할 때 정두언 의원을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시기는 정 의원이 박 비서관을 겨냥해 ‘권력 사유화’ 발언을 함으로써 박 비서관과 정 의원이 정치생명을 놓고 피 말리는 권력투쟁을 벌이던 때였다.

    이러한 사찰 의혹에 정 의원 측은 반발했다. 이창화씨는 2008년 9월 청와대에서 나와 총리실로 옮겼다. 이씨는 당시 사찰 의혹을 제기한 ‘시사저널’에 “부풀려진 부분이 많다. 박영준 비서관과 가까이 있었다는 것 때문에 추측과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본연의 업무를 했을 뿐 정두언 의원을 뒷조사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 무렵 ‘신동아’와의 통화에서는 정 의원 사찰 건과 관련해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최근 같은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봤으나 사용이 정지된 상태였다.

    “혼자서 알아보면 들키기 쉽다”

    ‘본연의 업무’이든 ‘사찰’이든 이씨가 정 의원 주변을 알아보고 다닌 적이 실제 있는지 여부와 관련해 국정원 관계자는 “정 의원 건은 이씨가 청와대 사정파트에 있었으니까 복무감사를 한 것”이라면서 “국회의원은 그 대상이 된다”고 했다.

    공직자에 대한 사정은 전통적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업무. 정권 초기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실이 별도로 공직자에 대한 조사에 나서면서 민정수석실과 업무가 중복되는 측면이 있었다. 다음은 당시 민정수석실 관계자와의 일문일답이다.

    ▼ 기획조정비서관실과 민정수석실 간 마찰은 없었나?

    “마찰이 없었다. 기획조정 쪽이 워낙 힘이 셌으니까.”

    ▼ 그래서 어떻게 했나?

    “‘저래선 안 되는데’라고 생각만 했다.”

    ▼ 당시 이창화 기획조정비서관실 행정관이 정두언 의원 주변을 알아본 적 있나?

    “알아보다 들킨 것으로 안다. 원래 안 들키게 알아보는 게 NIS(국정원)의 능력인데…”

    ▼ 이 행정관도 국정원 출신인데….

    “혼자서 알아보면 들키기 쉽다.”

    이석현 의원은 이창화씨가 기획조정비서관실 행정관 재임 시절인 2008년 상관인 김성호 당시 국정원장을 조사한 의혹이 있다고 최근 주장했다. 2008년~2009년 1월 ‘신동아’는 김 원장-이 행정관과 관련된 증언을 취재한 바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국정원에서 청와대로 파견된 대구·경북 출신 이창화 행정관이 김성호 원장의 국정원 운영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렸고 이런 사실이 국정원에도 전해진 것으로 안다. 청와대 파견 직원 4명 정도가 교체된 게 이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라고 했다. 이때 나온 직원들 중에 이창화씨도 포함돼 있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국정원 내 노무현 정권의 잔재 청산이 시급함에도 부산·경남 출신 김 원장이 동향 출신의 노 정권 인사들을 중용하는 등 개혁에 미온적이다’는 여론이 대구·경북 출신 여권 핵심인사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었는데 보고서 내용은 이러한 문제와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의 증언에 대해 국정원측은 당시 ‘신동아’에 “조직의 수장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거기에 얼마나 근무한다고. 권력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지 않는가. 거기서 그런 일을 했다가 어떻게 되는지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국정원 파견 직원 여러 명을 비슷한 시기에 교체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국정원 측은 “(김성호 원장이 아니라) 처장급에서 결정한 사안이다. 일하다보면 잘 안 맞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빼고 다른 사람들을 집어넣고 그런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정원 측은 “어느 조직이나 그런 갈등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내부갈등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기사 빼달라며 다른 기사 제시

    국정원 측은 당시 ‘이창화의 김성호 원장 비판 보고서 의혹’이 ‘신동아’에 보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꽤 노력했다. 이 무렵 때마침 사정기관장 교체설이 나돌고 있었다. 국정원의 고위 인사는 이 기사를 대체할 상당한 분량의 다른 기사를 거의 완성품 형태로 작성해와서 제시하기도 했다. 나름대로 뉴스 가치가 높은 북한관련 단독 기사였다. 전례가 없던 언론 대응방식이었다. 보도를 막기 위해 사활을 걸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던 중 김성호 원장은 얼마 뒤인 2009년 1월18일경 물러났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여권에서 김성호 원장은 정두언 의원과 가까운 인사로 알려져 있었다. 정 의원이 대통령직 인수위에 넣어준 김유환 당시 국정원 경기지부장이 김 원장의 국정원장후보 인사청문회 준비팀에서 활동한 것이 그 방증이라고 한다.

    이석현 의원은 이창화씨가 전옥현 전 국정원 차장 부인을 사찰한 의혹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다른 여권 관계자는 “2008년 무렵 국정원 내부에서 전옥현 당시 국정원 차장은 같은 충청 출신인 이재오계의 진수희 의원과 친분이 있는 인사로 알려져 있었다”고 했다. 이재오 특임장관은 당시 정두언 의원과 함께 이상득 의원, 박영준 차관의 정계퇴출을 주장하고 있었다.

    박근혜, 정두언, 김성호, 전옥현 등 이창화씨의 사찰대상으로 야권에 의해 폭로된 인사는 이처럼 사찰 당시 박영준 차관의 정치적 입장과 대척점에 있는 인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야권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다분히 표적 사찰의 소지가 있는 일이다.

    국정원만 놓고 봤을 때 김성호 원장 퇴임 후 국정원장이 된 원세훈 원장은 이명박 정권의 대구·경북-서울시 출신 실세그룹에 속한다. 박영준 차관 역시 대구·경북-서울시 출신으로 원 원장과 박 차관은 우호적 관계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야당의 논리에 입각한 사건들의 배치는 대구·경북-서울시 출신 원세훈-박영준의 우호관계, 정두언-박영준의 권력투쟁, 정두언-김성호 라인에 대한 사찰의혹, 김성호의 퇴임, 원세훈의 부임이 된다.

    그러나 야당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야당이 여권과 국정원 일부 관계자들을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 몰아 음해하고 있는 것이 된다.

    청와대에서 총리실로 이동한 이창화씨는 김성호 원장이 원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국정원으로 복귀했다. 원세훈 원장 체제에서 이씨는 인사과장에 발탁됐다고 한다.(사정기관 관계자 설명). 최근 그는 국정원 산하 국가정보대학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일각에선 이창화씨가 국가정보대학원으로 간 것을 두고 ‘밀려났다’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지금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권력실세와 정보요원의 공생사슬 비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국정원은 책임을 청와대에 떠 넘겼다는 비난을 받았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아”

    이창화씨의 입장을 직접 들어보려 했지만 그와는 접촉 자체가 어려웠다. 국정원에 취재한 내용을 충분히 설명해주면서 이창화씨와 제대로 인터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취재 내용이 공무와 관련된 일인데다 충분한 반론기회를 주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국정원 측은 보안규정을 들어 거부했다. 국정원 측은 이창화씨를 대리해 박근혜 사찰 의혹에 대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일부 여권 관계자들은 “이창화씨 사찰 의혹들의 경우 설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며 나름대로 사정 업무적 가치나 개혁적 가치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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