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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전반기는 도발 후반기는 평화공세 가능성

2012 북한 대남전략 분석

  •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bsj@mnd.go.kr

2012년 전반기는 도발 후반기는 평화공세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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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최근 6개월마다 대남전략 변화: 도발→평화공세→외곽공세(6자회담)
  • ● 대남정책은 3각 경쟁…김양건의 통일전선부, 김정각의 군부, 김계관의 외무성
  • ● 북한 도발과 대선 함수…KAL기 폭파, 1차 핵위기, 연평해전, 정상회담
  • ● 대남역량 집중해 북한에 우호적인 국회, 대통령 만들 것
  • ●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FTA로 인한 반미감정 활용 유혹
  • ● 대남 ‘컨트롤 타워’ 역할 김양건 주목해야
2012년 전반기는 도발 후반기는 평화공세 가능성

2002년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북한 응원단이 인공기를 앞에 내세운 채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11년 6월15일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은 북한의 대남정책 주도권 경쟁과 관련해 의미 있는 보도를 했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조선노동당 공작기관인 통일전선부 대신 외무성이 향후 한국과 일본을 담당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북한은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2012년을 앞두고 2011년 외교정책을 크게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전선부 대신 외무성이 한국과 일본을 담당한다. 한국이 미국에 종속된 것으로 보고 대남정책을 대미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해 왔지만, 앞으로는 이 방침을 바꾸어 별개로 대응하는 것이다.”

산케이신문 보도 이후 이용호 외무성 부상이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가 돼 북미회담 전면에 나섰고, 북핵 문제에 대해 거침없이 북측 입장을 밝혔다. 남북정상회담 실무 접촉이 폭로된 직후, 한 북측 인사는 “남한 당국이 왜 북측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우회해 국방위원회 사람들과 남북관계를 다루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다. 산케이신문의 보도내용, 남북정상회담 추진과정에 대해 북측 내부의 다른 목소리 등을 감안하면 북측 내부에 대남정책과 관련한 정책 경쟁, 파워 경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내부에서 대남정책과 관련한 경쟁은 세 집단 사이에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김양건이 이끄는 노동당 통일전선부,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겸 국방위원이 이끄는 군부, 김계관 제1부상이 이끄는 외무성이 그 축이다.

이들은 대남정책과 관련해 자신들이 파악한 정세와 정책구상을 가지고 북한지도자(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충성 경쟁, 신임 경쟁을 한다. 경쟁 결과는 지도자의 신뢰변화를 통해 나타난다.

북한지도자는 대남 정책의 주도권을 주었다가 다시 거두어들이는 방식으로 신뢰를 표시한다. 2010년 연속적인 고강도 대남도발은 김정각을 중심으로 한 군부의 대남정책을 북한지도자가 신뢰했고, 군부에 기회를 주었음을 의미한다. 2011년 초반 대남 평화공세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기회를 잡았기에 가능했다. 2011년 대남 평화공세가 일정한 성과가 없자, 북한지도자는 외무성의 김계관-이용호에게 기회를 주어 6자회담 재개를 추진하도록 했다.

물론 이들 각 집단에 대해 왜 신뢰를 주었는지, 실제로 기회를 주었는지는 북한지도자와 직접 인터뷰하지 않고는 확인할 수 없다. 직접 인터뷰하더라도 사실을 왜곡해 대답한다면, 그 진실을 아는 데는 제한적이다. 결국 지금까지의 정보와 진행 상황을 통해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2012년 한반도 정치지형은 큰 변화가 예정돼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남한의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다. 총선 결과와 대선 결과는 대북정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당연히 새로운 지도자의 대북관, 그리고 의회의 태도다. 북한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한국 국회와 대통령이 북한에 얼마나 우호적이냐는 남북관계와 북한체제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2012년 북한은 모든 대남역량을 집중해 북한에 우호적인 한국 국회, 한국 대통령을 만들려 할 것임은 분명하다.

2012년 대남정책 이슈는 대통령선거

이미 북한은 그동안 남한에서 대선이 있는 해에 다양한 대남도발과 대남정책을 수행해왔고, 대남정책 유형별로 남한 대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실제 경험을 통해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7년 대선 직전에 북한은 공작원을 통해 KAL 858기를 폭파했다. 테러는 성공했지만, 신속한 수사로 오히려 노태우 대통령 당선을 도와준 결과를 만들었다. 1992년에는 1차 핵(核)위기를 조성해, 당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대통령후보의 당선에 일조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고통 받던 1997년에는 그동안 해왔던 고강도, 대형 도발을 절제했다. 북한의 태도가 대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검증하기 힘들지만,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해 ‘배려와 협력’을 강조하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2002년에는 도발과 협력의 메시지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6월에는 연평도에서 군사적 도발(제2 연평해전)을 했고, 10월에는 부산아시안게임에 참가하고 미녀응원단을 보내 남북협력의 진전을 과시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1차 핵실험(2006년 10월)을 통해 북한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을 극도로 고조시켰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남북 화해 효과’를 과시하려 했지만, 1차 핵실험의 충격을 상쇄하지 못했다. 한국 국민은 보수정권을 출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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