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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칼럼

한국 여성 정치인은 왜 하이힐을 신지 않을까

패션 탐닉 여기자의 눈으로 본 여의도 풍경

  • 김민경 기자│holden@donga.com

한국 여성 정치인은 왜 하이힐을 신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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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의 패션에 관한 한 지금은 퇴행과 위선의 시대다.
  • 지난 몇 년 동안 디자인, 패션, 아름다움이 사치, 부도덕, 부자들을 위한 장식이란 개념으로 오염되면서, 정치인이란 검은 정장이나 헐렁한 점퍼를 입어야 하는 존재인 듯 여겨지고 있다.
  •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이 여야 양당 대표를 맡았지만, ‘그녀들’의 패션 역시 ‘점잖게 촌스러울’뿐이다.
  • 도덕적으로 결백함을 보여주기 위해 결벽적으로 옷을 못 입고, 아마추어적인 촌티 이미지를 연출해 권력에 욕심 없음을 드러내 보이려 하는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여성성은 ‘저주받은 운명’이 아니고, 대중의 의식은 정치인의 편견보다 훨씬 유연하다. 그러니 제발 거울 앞에서 ‘쫄지’ 마세요.
한국 여성 정치인은 왜 하이힐을 신지 않을까

옷은 말과 행동처럼 인간을 이루는 총합 중 한 부분이다. 왼쪽부터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인 카를라 브루니 여사,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 나경원 전 의원,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전현희 의원,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드디어 ‘그녀들’이 만났다. 지난 1월 당대표로 선출된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상견례를 한 것이다. 헌정 사상 최초로 여성이 여야 모두의 당대표를 맡아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으니, 우리 정치사에서 이만큼 신선한 작품도 별로 없었다. 그녀들의 말 한마디, 시선과 미소가 엇갈리는 한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 플래시들이 그야말로 천 개의 형광등처럼 빛났다.

내가 이 ‘정치적 레드카펫’에서 궁금한 건 하나였다. 이 순간을 위해 그녀들은 어떤 옷을 선택했을까. 이혼을 결심하고 하이힐을 꺼내 신은 다이애나 비처럼 특별히 성장하고 또각또각 걸어가 서로에게 손을 내민다면, 얼마나 볼만할까(다이애나 비는 남편이자 대영제국의 황태자인 찰스보다 키가 커 보일까봐 파경 전까지는 단화를 신었다).

한 대표는 박정희 정권에서 고문을 당하는 등 혹독하게 탄압을 받았다. 그것이 한 대표의 정치적 이력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아버지 박정희를 연상시키는 정적, 아니 박정희의 화신인 박 위원장에게 정치적 선전포고를 한대도 이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 두 여성은 약속이라도 한 듯 브라운 컬러의 슬랙스 정장을 입었다. 브라운 컬러는 압존법(壓尊法)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묻는 색이다. 만약 한 사람은 브라운 컬러를 입고, 다른 한 사람은 블랙이나 레드를 입었다면 어쩔 수 없이 주연과 조연이 결정돼 꽤 도발적인 분위기가 연출됐을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의 패션저널리스트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로빈 기번은 “여성 정치인이 입은 옷은 정치적 성명 발표와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믿자면, 이날 박 위원장과 한 대표는 옷을 통해 상호 존중의 뜻과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발표한 셈이다.

두 사람 모두 바지 정장을 선택했다. 언론에서 박 위원장의 ‘전투복’이라고 부르는 차림이다. 지금은 여야 모두에 전투 상황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들을 여전히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안팎의 적들과 유권자들 앞에 서야 한다.

재킷 안에 입은 이너웨어의 컬러가 시선을 끌었다. 한 대표는 흰색 블라우스 단추를 끝까지 잠가 입었고, 박 위원장은 빨간색을 입었다. 박 위원장이 신중하게 고른 ‘파워 드레싱’이었을 것이다. 옷의 의미와 수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박 위원장이 선택한 색이다. 새누리당의 상징색이 결정되기 전부터 박 위원장은 결단이 요구될 때 빨간색 옷을 입곤 했다. 절대 그냥 예쁘니까 고른 색이 아니다.

무조건 단정하게, 한명숙

이날의 공교로운 일치를 제외한다면, 패션에서 박 위원장과 한 대표는 한 점에서 교차하고 멀어지는 두 개의 직선과 같은 사람들이다. 옷을 입는 방식, 스타일에 대한 생각, 심지어 옷의 가짓수까지 어느 한 점에서도 두 여성은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들이 살아온 삶처럼.

박 위원장의 ‘빨간’색에는 소신에 대한 열정이라는 의미를 부여해도 되지만, 한 대표의 스타일에서 뭔가 읽어내면 오해가 될 수 있다. 이날 한 대표의 재킷 소매엔 일명 ‘호피’ 무늬라고 불리는 얼룩덜룩한 프린트 장식이 있었다. ‘호피’ 무늬는 과하게 여성적이어서 대부분 남성은 싫어한다. 어떤 남성들은 속된 말로‘미친다’고 하는 비일상적인 소재다. 그런데 한 대표는 이 재킷을 즐겨 입는다. 그저 점잖은 갈색 정장으로 입는 것이다. 한 대표의 수많은 사진을 통해 옷장을 정리해보면, 감색과 감색 줄무늬 정장, 밝은 파란색의 재킷, 베이지색 재킷, 보르도 컬러 빌로드 재킷, 검은색 코트 2벌과 점퍼 2벌(열린우리당의 노란색, 민주당의 녹색) 정도다. 한 대표는 매일 아침 옷장을 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늘은 공식 행사가 있구나…. 제일 가까이 걸린 정장을 입어야지.”

한 대표와 이화여대 동문인 패션디자이너 안윤정 씨는 “한 대표가 장관 시절, 동창회에서 만났는데 옷이 ‘좀 신경이 쓰여’라고 해서 -패션 관계자들은 우리나라 여성 정치인들의 옷에 불만이 많다- 물어보니 시장에서 10만 원대 정장을 사 입는다고 하더라. 내가 ‘외교 사절인 장관이 그러면 한국 패션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 균일가 판매하는 옷이 있다’고 하니 (뒤에) 비서가 왔다. 그때 사간 옷을 얼마나 많이 입었는지, 나중에 보니 가슴 부분이 옷핀 자국으로 해져 있었다. 그래서 거기 주머니를 달아주었다”고 말한다.

싸고 튀지 않는 옷을 단정하게 입는 것, 그것이 한 대표의 스타일이다. 아쉽지만 흥미진진한 패셔니스타는 아니다.

반대로 박 위원장은 한 가지 스타일을 지키면서 놀라우리만큼 다양한 패션을 선보여왔다. 많은 패션전문가는 박 위원장이 정확한 TPO(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적절한 차림을 하는 것)를 갖고 있고, 스타일에 대한 철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대 여성 정치인 중 베스트드레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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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기자│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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