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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부록 | 차기 대통령에게 바란다

부디 직업윤리에 충실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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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직업윤리에 충실해주시길
요즘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은 연예인, 축구선수가 대세라는 모양이다. 이들은 현란한 아름다움과 매력 내지는 어떤 실력으로 놀라운 주목도를 이끌어내며 선망의 대상 자리에 안착한 직업군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어린이였을 때는 그다지 인기 있는 장래 희망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일은 ‘꿈’ 축에도 못 끼었다. 그 시절 인기 1위 직업은 단연코 대통령이었다. 많은 남자아이의 꿈은 한결같이 대통령이었고 여자어린이도 간혹 대통령을 장래 희망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반 친구들은 우와~ 하는 함성을 터뜨렸고, 선생님은 여자아이도 충분히 그런 꿈을 갖고 펼쳐나갈 수 있다며 직업 선택에서의 남녀차별이 갖는 부당함(?)을 가르치는 추임새를 넣었던 기억이 있다.

4~5년, 경우에 따라서는 몇 십 년에 한 명밖에 될 수 없는 대통령은 아주 특별하다 못해 희귀한 직업에 해당하지만, 뭔가 크고 훌륭하고 당당한 장래 희망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꿈을 크게 가져야 큰사람이 될 수 있다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이 있던 시절이었으니(이건 그 시절에만 해당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장래 희망으로 ‘대통령’ 정도는 언급해줘야 싹수 있는 어린이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위 폼이 났단 말인데, 그 분위기에 휩쓸려 나도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할 뻔했다. 그런데 그 대통령이 꿈 순위 1위를 빼앗기다니. 세상이 변했다!

다양한 꿈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했고, 대통령이 최고의 꿈이라고 믿었던 어린 시절을 갖고 있는 게 뭔가 억울한 심정마저 들 지경이다. 그 시절 그 많던 미래의 대통령. 지금 다들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꿈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그리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대통령을 장래 희망 1순위로 꼽게 될까.

꿈을 꾸었든 아니든 내가 대통령 되기는 틀렸다. 다만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뿐이다. 곧 이 힘을 발휘할 순간이 다가온다. 선택은 순간인데 여파는 오래 간다. 예전엔 정말 잘 몰랐는데, 요 몇 년간 대통령이 정말 힘센 자리구나 절감하는 중이다. 그래서 선거판을 유심히 지켜본다. 최고의 선택지를 받을 수 없을까봐 걱정스럽긴 한데, 그럴수록 최악의 선택은 피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진다. 한때 대통령을 꿈꿨던 이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심정에 놓여 있을 터. 내가 될 수는 없으니, 어떤 이를 대통령 자리에 앉혀주고 싶은지, 지인들에게 물어보았다.

“잘생겼으면 좋겠어.” 모 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한 친구는 말했다. 이게 소위 ‘지식인’의 입에서 나올법한 말인가? 이 친구와의 인연을 끊어버려야 하나. “잘생긴 정치인들에게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또 외모를 따진단 말이야?” 나의 거친 반응에도 친구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국제행사에서 보면 미남에 키도 훤칠하고, 태도도 매력적인 사람에게 눈이 가더라. 우리나라 대통령도 시각적으로 좀 매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의 외모가 매력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정말 속돼 보이지만, 사실은 어쩌면 많은 사람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장동건이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대통령 역할을 맡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당신. 일단 외모를 가꿔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외모가 부족하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외모를 뛰어넘을 정도의 인간적인 매력이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사람, 특히 나이 든 사람을 볼 때마다 신기한 것은, 단순하게 외모만 잘생겼다고 해서 멋있거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새어나오기 때문일 것이라고 믿어본다. 삶의 여정과 인품을 얇은 피부는 절대 감출 수 없다고. 그러니 피부 마사지도 받긴 해야겠지만, 그보다 더 내면의 향기를 가꾸는 데도 신경을 쓰면 될 일이다.

또 한 사람은 말했다. “욕심꾸러기는 아니었으면 좋겠어.” 사리사욕을 끔찍하게 챙기는 대통령에 지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말이다. “주변을 잘 살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독불장군처럼 혼자서 나아가는 사람이 싫어진 이라면 할 법한 말이다. “사람들의 말에 귀는 기울이되, 팔랑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믿을 만한 사람이면 좋겠다.” “참모를 잘 선택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등등, 지인들은 이 질문에 다 한두 마디씩 했다.

한 지인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진단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말하자면 졸부 국가예요. 그래서 세계 부자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통하지 않는 나라라고요.” 맞는 말이다. 부유한 사람들, ‘상류층’이라는 사람들이 결코 자신의 부를 나누려 하지 않는 나라. 나누기는커녕, 더 쌓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나라. 심지어 자기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봐 두려워 장벽을 더 높이 쌓는 나라. 그래서 품위, 품격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나라.

부디 직업윤리에 충실해주시길

김지연
1973년생 학고재갤러리 기획실장

“지금 한국은 아주 중요한 전환점에 놓여 있다고 해요. 다음 5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빈부차이를 떠나, 국민이 기본권을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느냐 아니면, 지금 같은 상황이 더 악화되느냐가 결정되는 거죠. 그러니 다음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극복하려는 의지와 힘을 가진 사람이어야 해요.” 또 한 지인은 말했다. “대통령은 상황에 맞게 목소리를 달리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그게 이리저리 말을 바꾸라는 뜻은 아니에요. 음률의 차이를 활용하라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인토네이션이 없어요. 정치인은 상황에 맞추어 톤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한 어른은 내 질문에 “맹자는 질문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라를 다스리는 도를 일러주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대통령의 목표는 단 하나. 국민이 행복하게 잘사는 것이어야 한다.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풀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내가 바라는 대통령은, 자신의 직업윤리에 충실한 사람, 정도 되겠다.

신동아 2012년 7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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