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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가지’ 김정은의 콤플렉스

제주 출신 외조부-‘째포’ 어머니 고영희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곁가지’ 김정은의 콤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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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외조부 고경택은 4·3사건 주무대 제주 조천면 출신
  • ● 좌익 아니지만 日로 이주해 밀항선 사업하다 들통
  • ● 여자문제로 고민하다 강제 퇴거 명령 떨어지자 북한행
  • ● 다카다 히메→고영자→고영희로 개명한 후 김정일의 여자로
  • ● 곁가지에다 탈북자 가족 있고 日교포 출신이라 우상화 부담
‘곁가지’ 김정은의 콤플렉스

함북 명간군에 정착한 고경택 가족을 보도한 ‘조선화보’1973년 3월호와 같은 내용을 적어놓은 북한의 화보잡지 ‘조선’1973년 4월호. 그는 북한에서 새 여자를 만나 또 여러 아이를 낳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고전적 미인인 부인 이설주를 대동함으로써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 언론의 관심을 잡아끄는 데 성공했다. 이영호 총참모장의 제거로 북한 군부에 대한 지배력을 과시했다면, 이설주의 동행은 그가 ‘북한 통치자’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공산권에서는 퍼스트레이디를 잘 공개하지 않는데 김정은이 이설주를 내세워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여기에는 김정은의 어머니 콤플렉스가 숨어 있다. 김정은의 어머니 고영희는 김정일과 정식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다. 서자(庶子)인 김정은은 정통을 이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하니, ‘부인 공개’라는 파격으로 주목을 끄는 것이다. 그는 또 다른 파격을 해야 한다. 모친을 정실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다.

김정일이 정식으로 결혼한 여자는 홍일천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아들을 낳지 못하고 별거했다. 이후 김정일은 남한 출신인 성혜림을 만나 장남 김정남을 낳았다. 김정일은 성혜림-김정남 모자를 처형인 성혜랑의 식구들과 함께 유럽에 보내놓고, 김영숙과 사실혼에 들어가 설송-춘송 등으로 알려진 딸을 얻었다. 이어 고영희와 사실혼 관계에 들어가 정철-정은-여정 남매를 얻었다. 그들도 유학을 보냈다. 그 외에도 김정일은 여러 여자와 관계를 맺어 자녀를 얻었는데 그들은 권력의 핵심부로 진입하지 못했다. 고영희가 죽은 뒤로는 김옥과 살았으나 자녀는 얻지 못하고 지난해 사망했다.

김정일은 배다른 동생 김평일 등을 ‘곁가지’라며 밀어냈었다. 자신은 김일성의 정실인 김정숙의 아들이고 김평일은 후처인 김성애의 자식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어머니를 우상화했다. 1981년 양강도 신파군을 김정숙군으로, 양강도 혜산시의 제2사범대학을 김정숙사범대학으로 개칭했다. 1993년에는 함흥의 해군군관학교를 김정숙해군대학으로 바꾸었다. 김정숙의 동상을 세우며.

‘백두+한라’ 혈통 조작 가능성

‘곁가지’ 김정은도 정통성 세우기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할아버지인 김일성 닮기로 백두산 혈통을 강조한다. 백두산 줄기는 김일성 가계(家系)를 상징하지만 김일성은 백두산에서 활동한 적이 없다. 젊은 시절 김일성은 창춘(長春)을 중심으로 한 중국 지린(吉林)성 일대에서 중국인 주바오중(朱保中)이 이끈 중국 공산당군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에 속해, 소대~중대 정도의 병력을 이끈 사장(師長)을 했다.

일본군(관동군)의 토벌이 강화되자 주바오중은 동북항일연군을 이끌고 일소(日蘇)중립조약 체결로 연합국이면서도 일본과 싸우지 않고 있던 소련의 연해주로 넘어갔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대륙의 공산당군이 일본군의 공격을 피해 옌안(延安)으로 도망가는 장정(長征)을 할 무렵이었다. 소련은 동북항일연군을 만주지역의 일본군 동태를 살피는 88정찰여단으로 만들었다.

88여단은 하바로프스크 근교에 본부를 뒀는데, 그곳에서 김일성-김정숙 부부는 김정일을 낳았다. 북한은 이 사실을 숨긴다. 하바로프스크 근교로 도망가 있던 시절 김일성이 백두산에서 빨치산 투쟁을 했고, 그곳의 밀영(密營·아지트)에서 김정일을 낳았다며 사실 왜곡을 했다. 그리고 만들어낸 상징 조작이 ‘백두 혈통’이다.

지난 8월 17일 김정은은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전 때 해병 연평부대가 북한이 포격을 해온 곳으로 잘못 알고 K-9 포격을 퍼부어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무도를 전격 방문했다. 작은 섬인 무도에는 우리 군의 기습상륙을 막기 위해 중대 규모의 북한군이 상주해 있는데, 당시 K-9 포격으로 상당한 인명 피해를 봤다고 한다.

지난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을 때 우리 군과 경호처는 독도함과 이지스함, 그리고 피스아이 조기경보기까지 띄워 철통 경호를 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호위총국의 경호 없이 목선 한 척을 타고 무도에 들어갔다. 목선은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기에 우리 측은 그 사실을 몰랐다. 이 목선 뒤에 호위총국 요원이 탄 다른 목선이 따라갔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국정원과 우리 군은 북한 언론이 김정은의 무도 방문을 보도한 후 비로소 그 사실을 알았다.

김정은의 행적을 놓친 것은 큰 과오이기에,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정보원 등에 주의를 주었다. 김정은이, 해병 연평부대가 수동으로도 K-9을 쏠 수 있도록 좌표를 입력해놓은 무도를 경호 없이 전격 방문한 것은 젊은이다운 객기와 호전성을 보여주는 행동이다. 김정은은 북한 군부에 대한 장악이 중요하기에 적당한 때 도발을 지시해, 군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려고 할 것이다. 그때가 그의 모친을 영웅화하는 적기가 될 수 있다.

‘째포’의 아들

김정은의 모친인 고영희는 일본에서 태어나 북송선을 타고 온 재일교포 출신이다. 북한은 항일(抗日)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기 때문에 재일교포 출신을 “째포” “쪽발이”로 부르며 백안시해왔다. ‘째포의 아들’인 김정은은 이것부터 극복해야 한다. 그 해법은 제주 출신인 외할아버지(고영희의 아버지) 고경택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제주도민을 초청했다. 말은 초청이지만 1인당 100만 원 이상을 내야 하는 방북이었다. 그때 고영희는 퍼스트레이디였는데, 북한 사람들이 고영희의 아버지가 제주도 출신이라고 알려줬다. 재일교포인 고경택이 북한에 온 후 딸 덕분에 잘 살았다는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2006년 1월 국정원은 “1913년에 태어나 1999년에 사망한 고경택이 고영희의 아버지다. 제주에서 태어난 고경택은 대일항쟁기 때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히로타(廣田)재봉소 등에서 일하다 북한에 들어가 함경북도 명간군에 정착했다. 북한에 들어간 후 고영희는 ‘영자(英子)’란 이름으로 불리다, 여자 이름에 ‘자’자가 들어가는 것은 일본식이라고 해서 ‘영희(英姬)’로 개명했다”는 요지의 자료를 돌렸다.

김정은이 모계 정통성을 확보하려면 ‘한라산 줄기’를 내세워야 한다. 외할아버지인 고경택이, 우리에게는 아픔이고 저들에게는 무산된 혁명이었을 수 있는 4·3사건의 무대인 제주도 출신임을 강조해, 모계도 혁명가 집안임을 내세우는 것이다. ‘백두와 한라가 하나가 된 인물’은 김정은 우상화를 위한 최고의 선전문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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