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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특집 | ‘이 후보 이래서 대통령 절대 안 된다’ ①

‘박정희 딸’ 못 벗어난 역사인식의 不在

박근혜 不可論

  • 박동천│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정희 딸’ 못 벗어난 역사인식의 不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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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인혁당 두 개의 판결’ 은 무지의 극치
  • 2. ‘박정희 모델=국민 뜻’ 公私 구분 못해
  • 3. 파악력 떨어져 부처 행정 조율하겠나
‘박정희 딸’ 못 벗어난 역사인식의 不在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9월 24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의 과오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를 한 뒤 고개를 숙인 채 기자회견장을 나오고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의식의 빈곤, 공사(公私) 구분 불능, 그리고 디테일에 대한 무지다.

첫째, 박근혜에게 역사의식이 빈곤하다는 지적은 아주 자주 제기된 바 있다. 5·16, 10월 유신을 여전히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조국을 지켜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했고,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의 피해자들을 “두 개의 판결”이라는 문구로 모독했다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만났다. 우선 이 두 가지 사례부터 좀 따져보자.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박정희 정권의 성격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5·16이나 10월 유신을 잘못된 일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잘된 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현재의 정치구도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하나의 균열점이기도 하다.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새누리당의 재집권 카드로 낙점된 대통령후보라면, 박근혜 아니라 김문수나 이재오였다고 해도, 박정희 시대를 전면적으로 부정만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왜 유독 박근혜의 역사인식이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

문제는 1961년의 5·16이 아니라 1987년의 헌법이다. 1987년에 만들어진 현행 헌법은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천명할 뿐, 5·16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의미가 있고, 그 의미는 1960년 헌법부터 1987년 헌법까지 전문의 변천사를 보면 쉽게 드러난다.

1960년 4·19의 결과로 만들어진 헌법은 4·19를 전문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4·19는 1962년 박정희가 만든 헌법에서부터 들어갔는데, ‘4·19 의거와 5·16혁명’이라는 식으로 5·16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삽입되었다. 1972년 유신헌법까지 이 문구가 지속되다가 1980년 전두환이 만든 헌법에서는 4·19와 5·16이 둘 다 빠졌다. 그랬다가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 ‘4·19 민주이념’만이 재천명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을 살피면, 현행 헌법이 ‘5·16 혁명’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5·16의 헌정사적 공헌을 부정한다는 뜻이 분명하다.

대통령에 취임하려면 헌법을 준수하고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선서해야 한다. 현행 헌법이 어떤 배경에서 채택되었고 헌법의 문구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인식 능력이 반드시 요구된다. 박근혜는 이런 대목에서 지도자의 수준은 고사하고 평균적인 시민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다음으로 인혁당 사건에 관한 박근혜의 인식은 참혹할 정도로 피상적이며 왜곡되어 있다. 그는 사과한다는 자리에서까지 인혁당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민혁당’이라 불렀다. 세칭 인혁당 사건이 10여 년 간격으로 두 차례 있었다는 사실, 그중 두 번째 사건에서 증거도 없이 무고한 사람들이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사형선고가 내리자마자 즉결처분에 가깝게 사형이 집행됐다는 사실에 관해 박근혜가 한 번이라도 살펴봤는지, 이런 일들을 살펴본들 그 의미를 파악할 능력이 있는지,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없다’는 쪽으로 대답할 것이다.

‘두 개의 판결’이라는 발언이야말로 이와 같은 무지와 무능을 증명한다. 1975년에 사형선고가 내려진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은 2007년 서울중앙지법에 의해서 재심에 부쳐져 피해자 전원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 사건에 관해 대한민국은 “무죄”라고 하는 하나의 입장만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판결’이라는 인식은 법률 체계에 관한 원천적인 무지를 반영하고 있다. 이것만 봐도 대통령으로서 심각한 결함인데, 여기에는 내용에 관한 왜곡된 인식이 겹쳐져 있다.

최소한의 법적 소양 없어

박근혜처럼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친다면, 1975년의 판결도 타당하다는 뜻이 함축된다. 하지만 1975년의 법원이 군사정권의 압력 아래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은 오늘날 거의 모든 법률가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정권 안보를 위해 무고한 시민을 잡아다가 고문을 통해 빨갱이로 조작한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자기 뜻과 다른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매카시즘이 횡행한다. 이런 사람들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사회의 강점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보수 세력의 대표라고 해도 증거 재판의 원리에 관해 최소한의 소양은 갖춰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다각도에서 비판과 반대를 감수해야 하는 자리다. 이런 자리에 앉은 사람이 반대파를 불문곡직 ‘빨갱이’로 몰아 압살한다면, 자유사회의 기본질서는 무너지고 북한과 흡사한 전체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1975년의 인혁당 재판이 잘못이라는 인식은 2013년에 취임할 대통령에게 필수적인 요건이다.

둘째, 박근혜는 공적인 관심과 사적인 관심을 구분할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하다. ‘박정희’ 이름 석 자를 내뱉지 못하고 번번이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주는 단서에 해당한다. 사적인 관계에서 딸인 박근혜가 아버지인 박정희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치는 박씨 문중의 사유물이 아니라, 5000만 국민의 삶이 관계되는 공적인 공간이다. 대통령 박정희는 그와 같은 공적 공간에서 공직을 차지하고 앉아 공권력을 행사했던 인물이고, 따라서 박정희 집권기의 공과(功過)에 관한 논란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과거를 음미함으로써 미래를 열어나가고자 하는 공적 관심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민주와 전제 분간 안 돼

새누리당 대변인에 내정되었던 김재원은 박근혜가 박정희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김재원은 이외에도 여러 가지 막말을 기록한 탓에 사퇴해야 했지만, 박근혜의 의중만은 제대로 짚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박근혜에게 박정희는 아버지이자 동시에, “당신의 조국, 대한민국 이외의 사심은 결코 없었”던 인물이며, “아니, 그보다 그분의 마음과 머릿속에서 결코 떠날 줄 모르는 ‘조국의 근대화’라는 일념은 다른 무엇도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현대정치사가 질곡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권력이 공동체의 공적 자산 기능을 하지 못하고 번번이 권력자의 사유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치하의 부정과 비리와 부패는 모두 공권력이 사유화된 탓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박근혜는 이들과도 다르다. 아버지이자 ‘위대한 애국자’였던 박정희를 신원(伸寃)한다는 동기가 권력욕의 원천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판은 언제나 권력을 추구하는 개인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정치판이 온통 개인들 사이의 권력투쟁으로만 점철된다면 공동체의 이익은 사라지고 만다. 전근대적 정치판이 왕실과 귀족들 사이의 권력투쟁으로 일관하다가 근대의 민주주의 혁명을 불러왔다. 근대적 민주주의에서도 정치인들 사이에서 권력투쟁은 피할 수 없다. 단, 권력투쟁이 공동체의 가치와 정책에 관한 노선 차이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근대의 민주정치와 전근대의 전제정치가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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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천│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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