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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목숨 건 전략싸움 대반전 이제 ‘한국 카드’는 없다!

북-미 20년 핵 억제 게임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목숨 건 전략싸움 대반전 이제 ‘한국 카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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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는 피할 곳이 없다. 반복되는 핵실험으로 북한의 핵무기 능력이 궤도에 오른 지금, 이제 질문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도록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이다. 10기 남짓한 탄두를 가진 북한이 1700기 이상의 전략핵 탄두를 보유한 미국과 맞서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볼모로 잡힌 한국은 이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과연 우리에게 답은 있는가.
‘Deterrence.’ 우리말로는 억제(抑制) 혹은 억지(抑止)로 번역되는 이 국제정치학 용어가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초유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원론적으로는 ‘상대가 마음먹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라는 평범한 뜻이지만, 전쟁과 무력을 다루는 싸움터 에서는 말 그대로 생사를 가르는 일일 수밖에 없는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상대가 나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을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위협해야 상대의 ‘결심’을 주저하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하는 일이 바야흐로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과 함께 우리에게도 코앞의 과제로 자리매김했다.

그간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가장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주면, 혹은 어떤 압력을 가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인가”였다. 북핵이 협상용이냐 아니냐는 지리한 논쟁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평양이 “소형화·경량화 완수”를 소리 높여 외치는 현재 상황은 이제 상황이 전혀 다른 수준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경제적 반대급부나 체제보장 같은 정치적 해결방식으로 비핵화를 달성할 가능성은 사라졌고, 대신 어떻게 하면 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을 것이냐는 질문이 솟아오른 것이다. ‘비핵화·비확산’에서 ‘억제’로 상황이 급격하게 변했다. 냉전 기간 미국과 소련의 엘리트들이 고민했던 핵 억제전략이, 냉전의 소멸과 함께 도서관 서고 속으로 사라졌던 어제의 고민이 이제 우리의 당면한 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북핵 개발의 아이러니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북한의 핵 개발이 수면으로 떠오른 1990년대 초반은 냉전체제 붕괴와 소련의 해체가 줄줄이 이어지던 시점이었다. 그간 보장받았던 소련으로부터의 핵우산이 사라지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핵 개발을 가속화했다는 것이 북핵에 대한 일차적인 해석이다. 이후 20여 년의 세월 동안 평양이 반복적으로 공언해온 ‘핵 억제력 확보’라는 말은 바로 이를 뜻한다. 미국의 핵미사일이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도 어쩔 수 없이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이러한 주장은 곰곰이 따져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에 대한 억제력 확충을 위해 핵을 개발했다는 구소련의 동맹국은 북한 외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 오히려 베트남 등 다른 국가들은 “핵우산이 없는 비핵국가는 핵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소극적안전보장(NSA) 약속과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수용하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길을 택했다.

소련의 핵우산이 사라지면 미국의 핵 선제공격 우려도 함께 제거된다는 판단이 온 세계를 뒤덮는 동안 오로지 평양만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 미국은 한반도에 배치돼 있던 전술핵을 철수하는 등 이전에 비해 한반도에 대한 핵 투사 능력을 축소해나갔고, 남한은 비핵화선언과 그 후속조치를 통해 독자적인 핵개발 능력을 사실상 상실했다. 그러나 이 무렵 ‘로동신문’ 등을 통해 드러나는 북한의 모습은 한반도 전술핵 철수 같은 조치를 오히려 선제공격의 준비조치로 인식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인 것이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북한의 이러한 행보가 오히려 자신들의 안보를 매우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1993년 3월 북한의 NPT 탈퇴로 1차 북핵 위기가 국제사회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이후, 워싱턴은 ‘불량국가(rogue states)’가 핵무기가 아닌 대량살상무기(WMD), 즉 화학무기나 생물무기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경우에도 핵무기로 보복할지 모른다며 모호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미국이 약속한 핵우산은 유사시 남북한 간 전쟁에 참전한 소련이나 중국이 한국에 핵을 사용할 경우 대신 보복해주겠다는 의미가 주를 이뤘지만, 이러한 개념 변경으로 인해 북한이 화학무기나 생물학무기로 남한을 공격하는 경우에도 미국이 핵으로 보복하겠다는 뜻으로 확장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2002년 2차 북핵 위기의 과정에서 한층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우라늄 농축 설비 확보 시도 등 북한의 핵보유 움직임이 가시화하자 부시 행정부는 전략핵 사용을 위한 작전계획 8044를 통해 평양을 그 공격 대상에 포함시키기에 이른다. 이전에는 유사시 북한에 투하될 수 있는 핵전력의 최대치가 전선이나 후방을 타격하기 위한 전술적인 용도에 그쳤다면, 이 시기를 거치면서 평양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으로 변화했다는 뜻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변화한 안보의식과 북한의 핵개발 시도가 합쳐져 만들어낸 상승작용의 결과물이었다.

이 무렵 김정일 위원장이 수개월간 공개석상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공포감에 시달렸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요컨대 자신들의 안보를 위해 개발했다는 핵이 오히려 북한의 안전을 극단적으로 위태롭게 만든 지독한 아이러니였다.

‘조선 없는 지구는 필요 없다’

일련의 과정은 핵 억제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시각이 판이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정교하게 설계된 논리적 흐름에 기초한 미국의 억제전략과 달리, 북한의 사고방식은 철저하게 미국에 대한 불신과 독자적인 무장능력에 대한 집착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해 워싱턴은 “아무도 자신이 멸망할 것을 뻔히 알면서 핵을 사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평양은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상대에게 해를 입히겠다는 자세가 아니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고 믿는다. 미국의 핵 억제 게임이 지극히 이성적인 수학적 모델에 가깝다면 평양의 그것은 원한과 복수의 정서 위에서 만들어진 감정적 태도를 기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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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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