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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전략싸움 대반전 이제 ‘한국 카드’는 없다!

북-미 20년 핵 억제 게임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목숨 건 전략싸움 대반전 이제 ‘한국 카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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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전략싸움 대반전 이제 ‘한국 카드’는 없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진행된 가운데 2월 12일 오후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냉전 시기 각각 수천 기의 전략핵 탄두를 쌓아두고 벌인 소련과의 핵 군비경쟁 과정에서 미국은 당대 최고의 두뇌들이 뛰어든 전략연구를 통해 자신들의 핵 억제 개념을 쌓아 올렸다. 상대가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 가장 효과적인 전략과 핵무기 수량을 도출하기 위해 수십 년간 해온 고민의 산물이었다.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나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유연반응전략(Flexible Response Strategy)’ 등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전략용어들이 모두 이 과정에서 나왔다. 단순히 핵을 많이 가질수록 유리하다는 일차원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엄청난 횟수의 시뮬레이션과 워 게임(war game)을 통해 자신의 결정과 상대의 결정이 갖는 상승작용의 메커니즘을 정밀하게 추적해낸 결과물이다. 케네디 행정부의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 레이건 행정부의 안보특보를 지낸 콜린 그레이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핵 억제전략가들이다.

반면 억제에 대한 북한의 사고방식은 김일성의 항일유격대 시기부터 북한군의 군사전략에 깊이 자리 잡아온 DNA로부터 출발한다. 비이성적인 태도를 과시함으로써 ‘예측이 불가능한 존재’라는 악명을 쌓아 올릴수록 더욱 안전해질 수 있다는 게 주된 골격이다. 전쟁의 와중에도 상대 역시 공멸을 원치 않을 것이므로 ‘핵전쟁도 제한적일 수 있다’는 미국식 억제개념과 달리 북한은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나의 죽음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자세를 취한다. 외부에서 압박을 가하면 한층 더 강경한 도발을 감행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평양 3대 혁명 전시관에 걸려 있다는 “조선이 없는 지구는 필요없습니다”라는 김정일의 말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슬로건이다.

北核, 對美 핵 억제력 없다

핵 억제를 둘러싼 양측의 이러한 인식 차이는 이후에도 북한의 핵 개발과 그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2월 12일의 3차 핵실험 역시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읽을 때 그 정확한 의미가 드러난다. 핵실험 직후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보도문의 “이전과 달리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 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했다는 대목과 “다종화된 우리 핵 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이라는 문장이다. 자신들의 핵무기가 이미 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수준까지 작아졌고, 이를 지난해 12월 광명성 3호 발사를 통해 입증해보인 장거리 로켓 기술과 결합해 미 본토까지 핵으로 타격할 수 있게 됐다고 만방에 과시하고자 하는 시도다.

이러한 북한의 위협을 미국의 잣대로 보면 어떨까. 억제전략 연구의 중심 기능을 담당해온 미국 랜드연구소는 북한 핵개발이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른 직후인 1995년 미 육군과 공군의 의뢰를 받아 100페이지가 넘는 장문의 보고서 두 편을 작성한 바 있다. 소련 같은 핵 강국이 아닌 소규모 지역 국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핵전략을 구축해야 하는지를 정교하게 들여다본 결과물이다. 보고서에는 당연히 북한도 핵심 대상에 포함돼 있고, 그 주요 골자는 최근까지 미국 대량살상무기 정책의 준거 텍스트 역할을 해 왔다.



목숨 건 전략싸움 대반전 이제 ‘한국 카드’는 없다!

지난해 12월 12일 북한은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기지에서 장거리 로켓(은하3호)을 발사했다. 맨 윗부분 탄두에 핵폭탄을 장착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된다.

눈여겨볼 점은, 이 보고서가 상정한 개념의 틀로 볼 때, 불과 십수 기의 핵무기로 전술핵을 포함해 3000기가 넘는 핵무기를 가진 미국을 억제한다는 것은 논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 발이라도 사용하면 북한 전체가 초토화할 것이 당연한 상태에서 감히 핵을 쓸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렇듯 궁극적인 핵 사용 가능성이 근본적으로 제한돼 있다면 이전 단계에 해당하는 재래식 전력을 이용해 도발을 감행하는 일도 쉽지 않게 된다. 최종적으로 압도적인 전력 우위에 있는 국가가 무력 사용을 둘러싼 상대와의 기 싸움에서 항상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돼 있다는 것은 기본 공식에 해당한다.

따라서 ‘미국에 대한 핵 억제력’이라는 평양의 공언은 워싱턴의 시각에서 볼 때는 의미 없는 공갈에 불과하다. 북한이 자살특공대가 아닌 다음에야, 전쟁을 시작할지 말지, 핵을 쓸지 말지를 결정하는 위기상승의 지배권(dominance)은 결국 자신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미국 특유의 자신감이다. 그간의 핵 개발 과정에서 미국이 확산(proliferation) 문제, 즉 북한이 중동 국가 등으로 핵 기술을 이전하는지 여부만을 중점적으로 따져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한국과 일본이 직접적인 위협을 체감하는 것과 달리 워싱턴의 판단이 한결 느긋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양이 아무리 핵 기술을 강화한다 해도 자신들과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계산을 이미 한 것이다.

이러한 셈법 뒤에는 역사적인 경험도 한몫을 한다. 그간 그 어떤 나라도 이러한 기본 공식에 어긋나는 억제전략을 구사한 적도, 상상한 적도 없다. 냉전 시기 프랑스와 영국 등이 소련의 압도적인 핵전력에 맞서는 이른바 ‘최소억제(minimal deterrence)’ 전략을 채택한 바 있지만 이는 결국 최종적으로 미국의 핵전력이 소련을 응징할 것이라는 사실을 최후의 보루로 삼은 개념이었다.

파키스탄과 인도 등이 ‘단 하나의 핵무기로도 억제가 가능하다’며 활용했던 ‘실존적 억제(existential deterrence)’ 전략은 모두 자신들처럼 소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적국을 상대로 삼은 것이었을 따름이다. 요컨대 북한 대(對) 미국처럼 압도적인 핵전력 차이를 가진 나라들 사이에서도 핵 억제가 성립할 수 있다는 평양의 주장은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이단적이고 불합리한 억지라는 게 미국 측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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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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