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호

논공행상·의견대립에 멍들고 국정운영 때리기로 힐링

박근혜를 떠난 사람들

  • 송국건 |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3-09-23 1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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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 공신’ 김종인·이상돈, 정부 정책에 연일 쓴소리
    • ‘올드 참모’ 윤여준 “국정수행 후하게 주면 70점”
    • ‘친박’ 복귀 김무성은 ‘포스트 박근혜’ 부상
    논공행상·의견대립에 멍들고 국정운영 때리기로 힐링
    박근혜 대통령의 옛 측근들이 박근혜 정부를 겨냥해 잇달아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주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힘을 보탰으나 이후 뚜렷한 역할을 맡지 못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박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다. 정부 출범 직후에는 사석에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수준이었으나, 임기 6개월을 넘긴 시점에선 공석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노골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이상돈 전 정치쇄신특위 위원이다. 김 전 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화두를 선점한 ‘경제민주화’의 입안자다. 경제민주화 추진 수위에 따른 견해 차이로 박 대통령과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선거 막판에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박 대통령은 원로급인 그에게 어떤 자리를 주기보다는 막후에서 경제분야 국정자문을 기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로부터 마음이 떠난 것 같다. 그는 사석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았을 때 자신을 제대로 예우하지 않았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자신이 중도성향 유권자들을 끌어오는 데 큰 기여를 했는데도 공로를 평가받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잃어버린 30, 40대’ 탓?

    김 전 위원장은 9월 10일 한 포럼에 참석해 “요즘처럼 해서 뭐가 되겠느냐. (박근혜 정부의) 이 사람들이 과연 나라가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자꾸 우려된다”고 말했다. 최근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입법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경제민주화는 마무리되는 게 아니다. 변하는 시장경제에 맞춰 경제민주화도 변하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는 12월 19일이 박 대통령의 당선일인데 그때가 되면 코멘트를 좀 하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전 정치쇄신특위 위원은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중도보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야권이 제기한 정수장학회 문제에 논리적으로 대응하며 ‘박근혜 후보 지키기’에 주력했다. 그도 새 정부가 출범하면 청와대나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맡게 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지금은 중앙대 교수 자리도 내놓고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전 위원은 사석에서 인사 문제 등을 거론하며 ‘대통령 박근혜의 한계론’을 피력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청와대를 나온 뒤 은둔생활을 오래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30, 40대’를 보냈다. 대학(서강대 전자공학과)도 메이저를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폐쇄적인 사고를 하고 인사도 그런 방식으로 한다. 앞으로도 국정운영을 잘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많은 무리수를 두지 않겠느냐.”

    이 전 위원은 9월 11일 ‘레이건, 대처 그리고 박근혜 정부’를 주제로 열린 한 초청강연회에서 박 대통령 대선공약의 핵심인 복지 분야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지난해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재정을 감당하기 어려운 복지공약을 냈다. 전반적인 경제 침체로 세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복지 정책을 펴면 국가재정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박 대통령이 임기 내 공공부문을 개혁하지 못하면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에 정권을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때리기’에는 과거 캠프에 참여했다가 지난 대선 때 이탈한 ‘올드 참모’들도 가세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로 당을 이끌 때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책사(策士) 노릇을 했던 그는 이후 안철수, 문재인의 책사로 전향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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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견 대립으로 등 돌려

    윤 전 장관은 8월 26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박근혜 정부 출범 6개월을 평가하면서 “국정수행에서 제대로 된 능력을 별로 보여주지 못해 자질과 함량이 많이 떨어진 정부”라고 깎아내렸다. 또 “점수를 후하게 주면 70점 정도”라고 혹평했다.

    박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대변인을 맡아 호흡을 맞췄던 전여옥 전 의원은 지난해 대선 기간에 출간한 자서전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를 가리켜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또 돼서도 안 되는 후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1998년 4월 대구 달성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이후 연을 맺은 사람이 등을 돌린 사례는 적지 않다. 특히 2004년 당 대표를 맡았을 때 주요 당직에 임명했던 사람들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많이 떠났다.

    당시 박세일 전 의원은 박 대통령이 직접 영입해 여의도연구소장과 정책위의장을 맡겼지만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놓고 입장이 엇갈리면서 대립각을 세우다가 당직과 의원직 사퇴를 천명하고 탈당했다.

    ‘박근혜 대표’ 체제에서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지낸 박형준 전 의원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이명박(MB) 후보 캠프의 대변인을 맡은 뒤 MB 정부에서 대통령실 홍보기획관, 정무수석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남경필 의원은 당시 최병렬 대표체제를 무너뜨리고 박근혜 대표를 옹립해 당내에서 원내 수석부대표까지 올랐다. 심재철 의원은 전략기획위원장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친이계로 돌아섰다. MB 정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전 의원도 박근혜 대표체제에서 전여옥 전 의원과 공동대변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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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

    김덕룡 전 의원은 당시 원내대표로 박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지만 주요 법안 처리를 놓고 갈등을 빚다가 행정도시법 처리를 둘러싸고 충돌이 일어나자 원내대표직을 던졌다. 김 전 의원은 2007년 이명박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호남 표를 끌어 모으면서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시는 데 일조했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다가 친박계에서 이탈한 뒤 복귀한 인물들도 있다. 박 대통령의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내다가 다른 친박계 참모들과 갈등을 빚어 ‘탈박(脫朴)’을 감행했던 진영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다시 돌아와 대선 때 공약 수립을 주도했고, 박 정부 출범 후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됐다.

    미래권력으로 떠오른 親朴들

    주목되는 인물은 김무성 의원이다. ‘친박계의 좌장’으로 불리다 세종시 수정안 처리과정에서 박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등을 돌렸다가 지난 대선 때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으면서 복귀했다. 김 의원은 현재 여의도 정가의 최대 블루칩이다. 그는 새누리당 안에서 이미 독자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김 의원이 9월 4일 발족한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 모임에는 당 전체 의원(153명)의 3분의 2가 넘는 100여 명이 참여했다. 그는 복지와 통일 문제 공부모임까지 만들 채비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내년 부산시장선거에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해 지원을 약속했다는 ‘밀약설’이 제기됐고, 핵심 측근인 권오을 전 의원은 경북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이 때문에 김 의원이 내년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은 뒤 ‘포스트 박근혜’ 자리를 노릴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이 경우 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필수적이다. 그의 한 측근은 “김 의원이 ‘MB 정부 시절의 박근혜’를 지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미래권력’으로 자리 잡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가 이런 행보를 보인다면 박 대통령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자신에게서 떠나는 데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거느리고 정면으로 도전해오는 첫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 청와대 정무라인에서 김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서청원 전 대표를 차기 지도부 경선에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조 친박’으로 불리는 유승민 의원도 잠재적 당권주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몇 차례 쓴소리를 하다가 지금은 자제하고 있지만 여전히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회의적이라고 한다. 황우여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8월 28일 대구에서 열린 대구·경북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는 대선 공약에 대한 타당성 검증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역류와 외풍

    유 의원은 “많은 지역 공약을 얘기했는데 재원에 대해 정부는 당장 건드릴 의지가 없어 보이니 중앙당이 국민한테 새누리당이 지역공약을 지킨다는 신뢰를 주려면 지금부터 검토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상누각이고 거짓말인 게 곧 드러나게 된다”고 일갈했다.

    박 대통령 취임 전후, 그리고 집권 초반 인사과정에서도 많은 참모가 자의, 타의로 곁을 떠났다. 지난 2월 25일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비서실장직을 맡아 8월 5일 김기춘 신임 실장에게 물려줄 때까지 162일밖에 청와대에 머물지 못한 허태열 전 실장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난 경우다.

    그는 대통령비서실을 이끌면서 정부조직법 개편이 지연돼 새 정부 출범에 진통을 겪었고, 박근혜 대통령 방미기간 중 발생한 ‘윤창중 스캔들’ 등으로 큰 어려움을 맞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청와대 조직은 안정을 찾았고, 박 대통령 지지도 역시 60%가 넘는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따라서 ‘허태열 체제’도 공고화하는 듯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를 전격 경질했다.

    허 전 실장은 청와대에 입성한 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지난 4월에 이미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심경을 주변에 토로했다고 한다. 그와 가까운 한 정치인은 “4월에 만났을 때 허 실장이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아랫사람들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아랫사람이 누구라고 말은 안 했지만 이정현 홍보수석을 비롯한 박 대통령의 가신그룹을 일컫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고 했다.

    만일 수석이나 비서관급 핵심 참모들이 허 전 실장 흔들기를 시도했고, 이에 따라 그가 박 대통령에게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실제로 밝혔다면 청와대 안에서 심각한 하극상이 벌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박 대통령 임기 내내 논란을 일으킬 만한 요인이다. 양건 전 감사원장이 전격 사퇴하면서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언급한 것도 감사원 내부의 원장 흔들기나 하극상이 있었음을 암시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인사가 만사’

    논공행상·의견대립에 멍들고 국정운영 때리기로 힐링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새 정부의 골격을 짜는 과정에서도 박 대통령이 발탁한 많은 사람이 미처 자리에도 앉지 못하고 떠났다. 특히 결정적인 하자가 드러나 낙마한 공직후보자들은 박 대통령의 초기 국정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인사검증의 실패가 가장 큰 문제이지만 어쨌든 그들도 ‘박근혜를 떠난 사람들’의 범주에 포함된다.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이 해당한다.

    ‘인사 참극’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박종길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자신이 운영하던 서울 목동사격장의 법인 명의를 바꾸면서 공문서를 위조했다는 의혹을 받자 9월 10일 자진사퇴했다. 장승필 4대강사업 조사평가위원회 위원장도 2007년 3월부터 3년간 4대강 사업 설계업체 사외이사를 맡았던 사실이 드러나 취임 후 불과 엿새 만인 9월 12일 사퇴했다.

    결국 박 대통령을 떠난 사람들의 유형은 두 갈래다. 하나는 비리에 연루됐거나 자기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밀려난 인물이고, 다른 하나는 박 대통령에게 실망하거나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스스로 떠난 인물이다.

    앞의 경우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에 결정적 허점이 있음을 방증한다. 뒤의 경우는 박 대통령의 포용력과 용인술을 문제 삼을 수도 있지만 떠나간 이들 개개인의 정치적 욕망이 작용한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반대급부를 노리고 박 대통령에게 다가섰다가 여의치 않자 다른 이유를 들어 빠져나갔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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