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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수 없는 전투 도발하고 질 수 없는 도발에 당했다, 왜?

서해에 수장된 남북교전의 진실

  • 김종대 | 군사평론가, ‘시크릿파일 서해전쟁’ 저자

이길 수 없는 전투 도발하고 질 수 없는 도발에 당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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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2 연평해전은 합참의 육군식 전술이 빚은 참화
  • ● 천안함 사건 나기 전 수중도발 경고 있었건만…
  • ● 연평도 사건 당시 F-15K로 응징 못한 속사정
이길 수 없는 전투 도발하고 질 수 없는 도발에 당했다, 왜?

1999년 6월 15일 벌어진 제1연평해전. 우리 고속정이 북한 경비정을 들이받은 직후 교전이 시작됐다.

1999년 제1 연평해전부터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까지 남과 북은 서해에서 5차례 충돌했다. 지난 14년간 벌어진 서해교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불편한 진실과 만나게 되고 의문이 꼬리를 문다.

제1 연평해전의 경우 우리는 이제껏 북한 어선과 경비정들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는 도발을 해왔기 때문에 해군이 이를 차단하다가 벌어진 교전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해 6월 6일 시작한 무력시위 기간에 남과 북의 해군은 똑같이 “발포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서로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포를 하늘로 쳐들었다. 교전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6월 15일 북한군 사상자가 100여 명에 달한 대규모 교전이 벌어진 이유가 뭘까. 9일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2002년 제2 연평해전의 경우는 더 황당하다. 3년 전의 충격적인 패배로 피에 굶주린 북한의 기습공격이 예상돼 우리 2함대사령관이 “적 함정과 3km 거리를 유지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정상적인 지휘계통이 무력화하고 작전에 간섭하는 세력이 2함대 지휘계통에 개입했다. 마치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우리 고속정 2척이 최저 속도로 북한 경비정에 150m라는 ‘섬뜩한 거리’로 접근했다가 공격을 받았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보직해임을 당한 2함대사령관이 얼마 후 화병으로 숨진다. 그가 사망하기 직전 해군 선배에게 털어놓은 교전의 진실은 뭘까.

2009년 대청해전은 우리의 단호한 대응으로 북 함정을 격파하고 6명을 사상케 한 교전이다. 이전의 두 번의 교전에 비해 매우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북한 함정을 제압했음에도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북한과 비밀접촉을 하던 이명박 정부는 우리 해군의 과잉대응 여부를 조사했다. 당시 군에 대한 청와대의 불편한 심기를 엿볼 수 있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을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또 드러난다. 사건 일주일 전 한 예비역 해군 제독은 북한의 보복공격이 임박했음을 예견하고 군 최고위층에 북의 수중도발을 경고했다. 한미연합사도 대청해전 직후부터 북의 비대칭 도발 가능성을 우리 합동참모본부(합참)에 경고했다. 따라서 긴박한 경고와 대비의 필요성이 강조됐는데도 전혀 대비하지 못한 이유가 뭘까.

그해 10월의 연평도 포격사건 때도 도발 징후가 있었다. 사건 전날 북의 경고 메시지가 날아들었고, 사건 당일 오전에도 합참 정보본부는 “적의 화력도발에 대비 필요”를 강조하는 첩보를 작전본부로 전달했다. 그런데도 연평도의 우리 해병대는 이에 대비하지 못한 채 북으로부터 대규모 지상포 공격을 받았다.

북한에 비해 압도적인 성능의 수상함과 우세한 정보력, 후방 지원전력을 갖춘 우리 군은 서해에서 분쟁을 관리하면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 그런데도 서해의 분쟁상황을 과연 우리가 제대로 통제했는지, 군사력 운용이 과연 합리적이었는지, 이 다섯 번의 교전을 보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아무도 그 원인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가장 충격적인 천안함 폭침사건의 경우 벌써 3년도 더 지났지만 그동안 이에 대한 세미나, 학술대회도 없고 제대로 된 논문 하나 발표된 적이 없다. 그러니 앞에서 필자가 제기한 의문에 대해 우리 정부는 “비정상적이고 호전적인 북한이 계획적으로 도발한 사건” 외에 아무런 추가 설명을 하지 않는다.

합참과 해군의 반목

우리는 서해 안보 문제의 핵심 원인에 대해 제대로 질문한 적이 없다. 당연히 합리적인 설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질문이 없으니 더 연구할 필요도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미국은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 몇 년이고 검증, 또 검증한다. 1960년대 피그스 만 사건과 쿠바 미사일 위기, 1970년대 베트남전 패배, 1980년대 이란 인질구출작전 등 비록 실패한 작전이라고 해도 재검증하고 재분석한다.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교훈을 얻을 수 없는 군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앞으로 서해에서 우리 군인들이 또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것, 우리의 무능과 게으름이 어쩌면 미래에 또 다른 희생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5차례 교전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점은 서해에서 안보위기가 고조될 때조차 유니폼이 다른 육·해·공군 조직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것이다. 각 조직은 ‘우리가 가장 스마트하다’고 여기며 다른 조직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로 인해 자기 조직이 상황을 통제하려고 다른 조직을 억누르며, 더 많은 권력과 명성에 집착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러니 위기가 끝나도 조직 간에는 감정적 갈등과 앙금이 남는다.

서해 사건들을 보면 바다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육군 위주의 합참과 해군 2함대사령부 간에 권한과 책임에 대한 분쟁이 벌어지고 극도로 불신하며 대립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 결과 국가 차원에서 군사적 대응의 합리성이 붕괴되고 위기는 더 심화된다.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작전의 최고단위인 합참, 즉 최고사령부의 무능이다. 주로 육군 출신들이다보니 해양에서의 국지전에 대해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는 조직이 합참이다. 이 때문에 위기를 진정하고 관리해야 할 순간에 거꾸로 위기를 더 고조시키는 잘못된 지시를 내리고 예하부대는 이에 반발한다. 한편 전투 현장에서는 남과 북의 군대라는 조직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국면이 전개되며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 초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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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 군사평론가, ‘시크릿파일 서해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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