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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고발

국감은 금배지들의 ‘윽박 콘서트장’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국감은 금배지들의 ‘윽박 콘서트장’

국감은 금배지들의 ‘윽박 콘서트장’

10월1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장.

정기국회야 제때 열리든 말든 올해도 예외 없이 국정감사(국감)가 열렸다. 국감은 국민을 대신한 국회가 한 해 동안 부처와 공공기관의 ‘경작(耕作)’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다. 올해 피감 대상 기관은 630곳으로 지난해보다 13%(73곳) 늘어났다. 16개 상임위 가운데 13개 위원회는 각각 50곳에 가까운 기관을 감사하게 됐다. 15일인 실제 국감 기간을 고려한다면 상임위는 하루 3~4개 기관을 소화해야 한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는 104곳을 감사해야 하니 곱절로 ‘뛰어야’한다.

그런데 일부 의원들은 사전 요구로 확보한 국감자료를 이용해 자신을 알리는 데만 혈안이다. 자신이 원하는 내용으로 자료를 가공해 피감 기관을 꼬집음으로써 언론에 이름을 노출시키려는 구태를 반복했다. 그 자료를 만드느라 고생한 피감 기관 직원들의 노고는 눈곱만큼도 배려하지 않은 처사다. 애써 준비해준 자료가 엉뚱한 데 활용된 것을 안 피감 기관 직원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국감인가”라는 한탄이 쏟아져 나온다.

어느 의원은 한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인용해 “간부가 대낮에 법인카드로 고가의 피부관리센터에서 두 차례나 피부관리를 받았다” “다른 직원은 고급 단란주점에서 세 차례에 걸쳐 법인카드를 썼다”고 목소리를 높여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실제로는 간부가 병원 구내에 있는 식당에서 업무차 카드를 쓴 것이고, 직원들은 고급 단란주점이 아닌 일반음식점에서 카드를 사용했다. 그 회사의 법인카드는 단란주점은 물론 미용실이나 사우나 같은 업소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클린카드’였다. 더욱이 밤 11시 이후엔 아예 결제가 되지 않는다. 다음 날 정정 보도가 나긴 했지만, 공명심에 사로잡힌 국회의원의 잘못된 지적으로 그 회사 임직원들의 인격과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뭘 자꾸 떠들고 있어?”

이번 국감도 어김없이 인력과 물자를 낭비하는 무대가 됐다. 국감철이 다가오면 피감 기관 직원들은 제때 퇴근하지 못한다. 정부 부처에서 국감 준비를 담당하는 직원 한 사람이 맡는 의원들의 질의 수는 평균 10여 건. 그런데 상당수 의원이 하루 말미를 주고 자료를 제출하라고 압박하니 밤을 새워 준비해야 한다. 요구한 자료 중에는 하루 만에는 도저히 마련할 수 없는 것이 적지 않다. 특정 부서의 10년치 물품 구입 영수증을 모두 제출해달라거나, 과거에 실시한 대국민 설문자료를 모두 달라고 한 것이 그런 사례다.

그런 자료들은 양이 워낙 많기에 국감 자료집의 부피가 커진다. 덕분에 국감자료집을 만드는 인쇄소는 불이 난다. 2교대, 3교대로 인쇄기를 돌려 하룻밤 만에 5t 트럭 5대 분량의 자료집을 찍어낸다. 그러나 이 자료들은 대부분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버려진다. 국감이 끝나면 국가 운영에 관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는 국감자료집은 의원실에서 하루바삐 내다버려야 하는 ‘폐지’ 신세가 된다.

국감장의 윽박지르기와 망신 주기도 도를 넘어섰다. “묻는 것만 답변하세요, 장관!” 하는 호통은 일상적이다. 의원이 “당신 내 부관 지냈지?”라고 물어 “예” 하고 답변하자 “그럼 공격준칙 한번 이야기 해봐, 공격준칙!”이라며 인신 공격하듯 다그치는 경우도 과거에 있었다. 좀 길게 답변할라치면 “뭘 자꾸 혼자 떠들고 있어?”라고 핀잔을 주는 의원도 있다.

사람을 불러놓고 무시하는 일은 다반사다. 증인으로 불러놓고 한 마디도 물어보지 않아 바쁜 사람들을 헛걸음하게 한다. 질문해놓고는 답변을 듣지도 않거나 답변할 시간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 그러니 해마다 “왜 국감을 하는가”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 국감에서는 기업인 200여 명이 호출돼 “국정감사가 아니라 기업감사를 하자는 거냐”라는 논란이 일었다. 국회의 권위를 재확인하고자 하는 오만이다. 민생 국감은 까맣게 잊었다는 증거다. 그런 의원들이 즐비한 국회를 과연 국민 대표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쟁으로 얼룩진 소모적 논쟁, 윽박지르기 감사, 루머성 뉴스거리를 제공해 의원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언론 플레이식 국감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이 국회를 감사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선량(選良)들은 국민의 대표임을 자각하고 겸손하고 진지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

신동아 2013년 11월 호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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