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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이석기의 혁명 vs ‘부여 간첩’ 김동식의 혁명

같은 목표로 같은 공부(주체사상)한 두 혁명가의 다른 길

  • 이정훈 │편집위원 hoon@donga.com

국회의원 이석기의 혁명 vs ‘부여 간첩’ 김동식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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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0여 년 교육 받았어도 여전히 서툰 北 혁명가
  • ● 체계적 교육 안 받았어도 동원력 뛰어난 南 혁명가
  • ● 정부, 재벌, 시민으로부터 자금 받아내는 좌파
  • ● 남조선노동당은 민혁당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 ● 군기 빠진 운동원, 생계형 혁명가…한국 혁명은 피곤하다
  • ● “탈북자를 북한 혁명의 기수로 만들어달라”
국회의원 이석기의 혁명 vs ‘부여 간첩’ 김동식의 혁명

9월 5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수원지법으로 가는 이석기 의원(왼쪽). 오른쪽은 북한에서 체계적인 혁명가 교육을 받고 남파됐던 ‘부여 간첩’ 김동식 씨. 그는 지금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거부했다.

1995년 충남 부여에서 총격전 끝에 검거된 ‘부여 간첩’ 김동식의 수기 ‘아무도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를 읽으면서 RO(Revolutionary Organization)를 이끈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떠올렸다. 동갑(1962년생)인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과정을 거쳐 주사파 혁명가가 됐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김동식은 고등중학생 시절 특별 선발돼 금성정치군사대학을 다닌 뒤 혁명가가 됐다. 금성정치군사대학은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운영하는 사관학교식 4년제(지금은 5년제) 대학이다. 우리 사관학교는 생도들에게 금연을 요구하지만 여학생은 입교시킨다. 반대로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담배를 제공하나 여학생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대학의 맥은 강동정치학원에 닿아 있다. 조선노동당은 1949년 김일성이 이끄는 북조선노동당(북로당)과 박헌영을 대표로 한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합당해 만들어졌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을 만들어 활동하던 박헌영은 이듬해 미군정에 쫓겨 북한으로 도주했다. 그리고 조선공산당을 북로당으로 개칭하고 남한 혁명을 주도할 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1947년 평북 강동군에 강동정치학원을 만들었다.

남한으로 침투한 이 학원 출신들은 산악지대에서 빨치산 무장투쟁을 벌였다. 이 학원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빨치산 대장이 소설 ‘남부군’(이태 저)과 동명의 영화(정지영 감독)에서 핵심 인물로 나온 이현상이다. 이현상은 6·25전쟁 중 가장 규모가 큰 빨치산 부대 ‘남부군’을 이끌다 사살됐다.

강동학원은 1955년 박헌영이 처형되면서 사라지고, 북로당이 중심이 된 조선노동당이 만든 금강정치학원이 그 뒤를 이었다(1957). 금강정치학원은 금성정치군사대학이 됐다가 지금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개칭됐다(북한에서 금성이나 샛별은 주로 김정일을 가리킨다).

북한의 대남침투는 당(조선노동당)과 군(조선인민군)이 주도하는 것으로 대별된다. 금성정치군사대학은 당에서 운영하는 대남침투 요원 양성소였다. 군에서는 정찰총국이 요원을 양성하고 관리한다. 당은 남조선 혁명이라는 공산혁명을 위해, 군은 정보수집과 침투작전을 위해 요원을 남파시킨다.

침투조 대학의 신세대 공작원

당이 관리하는 대남침투 요원은 장기간 한국에 거주하며 공산혁명에 동조할 사람을 포섭하는 ‘공작원’과 한국군 방어망을 뚫고 공작원을 은밀히 침투시켰다가 복귀시키는 일을 하는 ‘침투조’로 양분된다. 금성정치군사대학은 침투조를 양성한다. 침투조는 한국군이 쫙 깔린 위험지역을 통과해야 하므로 특수부대원 이상의 강인한 체력과 사격술, 반잠수정 조종술 등을 갖춰야 한다. 이 때문에 젊은 남성들만 선발해 교육해왔다.

공작원들은 한국에서 처음 만난 사람을 포섭해야 하니 머리가 좋고 임기응변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그런 일은 젊은 남성보다는 중년 남성이나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다. 공작원들은 유연하고 이념에 투철해야 하기에 규율화한 사관학교식 집체교육을 받지 않는다. 남녀와 연령을 불문하고 자질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뽑아 밀봉교육으로 길러낸다.

밀봉교육은 과외선생을 입주시켜 일대 일로 가르치게 하는 것과 비슷하다. 교육 장소는 펜션과 비슷한 초대소. 우리의 펜션은 풍광 좋은 곳에 여러 채가 몰려 있지만, 초대소는 산속에 1~2km 떨어져 한 채씩 있다. 공작원들은 보통 초대소에서 2주간 기숙하다 주말에 가족을 만나러 외박하는 생활을 한다.

초대소에는 여성 요리사와 도우미 노릇을 하는 여성 접대원이 상주한다. 요리사는 대개 남편과 헤어진 여성들이고 접대원은 미혼 여성이다. 남성 공작원과 접대원 사이에 애정이 싹트는 경우도 있으나 흔하진 않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려준 김동식 씨는 “북한 공작원들은 금욕할 것을 요구받는다”라며 “사망한 공작원을 화장하면 사리가 꽤 많이 나올 것”이라고 농담했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민족해방(NL, 주사파) 계열의 운동권도 처음에는 금욕을 강조했다. ‘존경받을 행동을 해야 혁명가가 될 수 있다’는 ‘품성론’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이것을 무너뜨렸다. 혁명가의 길을 가기로 했다면 단결을 위해 남녀는 하나가 되고, 혁명을 위해선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혁명 지상주의’로 흐른 탓이다.

김 씨가 대학에 들어간 1981년 무렵은 박헌영을 따라 월북한 남한 출신 공작원들이 나이가 많아져 대거 은퇴하던 때였다. 그러자 당은 서울과 비슷한 말을 쓰는 황해도와 강원도의 고등중학 출신을 선발해 공작원으로 키우는 방안을 택했다. 신세대 공작원을 양성해 세대교체에 들어간 것. 김 씨는 황해남도 용연 출신이다. 김정일은 새로 양성할 공작원들도 군사적인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래서 이들도 이 대학에 입학해 침투조 후보생들과 똑같이 집체교육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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