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호

박근혜 청와대 이상기류 비서실장도 대통령과 불통?

  •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4-01-20 1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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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민봉 국정·박준우 정무 존재감 상실
    • 토론 안 되고 직언 못하는 분위기
    • “빡세게 일 안 해…무사안일 만연”
    박근혜 청와대 이상기류 비서실장도 대통령과 불통?

    박근혜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광경.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를 둘러싸고 이상기류가 흐르는 것 같다. ‘국정 컨트롤타워로서 제대로 일을 못한다’ ‘열정이 식었다’ ‘내각·공기업 인사를 둘러싸고 설이 난무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청와대는 인적 구성에서 과거 정부의 청와대와 차별화했다. 정치인 발탁이 별로 없었다. 대신 관료와 학자에게 여러 자리를 내줬다. 박 대통령이 실무능력, 전문성, 안전성을 중시했던 까닭이다. 정부 출범 1년(2월 25일)을 맞는 지금도 참모진의 출신 분야별 비율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대통령 비서실 개편이 한 차례 있었지만 여전히 정치권보다는 관료, 학자 출신이 많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이런 양적인 비율이 질적인 힘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2013년 8월 출범한 2기 청와대의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9명 가운데 정치인은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정현 홍보수석비서관 두 명이다. 하지만 이 두 명만이 맥을 잡아 일 한다는 평이다.

    ‘김행 사표’ 진짜 이유는?

    1기 청와대 참모진이 출범할 때 박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비(非)정치인 출신 참모가 청와대의 새로운 실세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성균관대 교수로 대통령직인수위 국정기획분과 간사를 맡은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유 수석은 여당으로부터 “국정철학이 없다”(유승민 의원)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후에도 존재감이 없는 듯했다. 여권 관계자는 “2기 청와대 참모진에 합류한 외교관 출신 박준우 정무수석도 제 구실을 찾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관료와 학자 출신 수석의 능력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는 형국이다.



    비서관급도 마찬가지다. 관가에선 그리 주목받는 일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평이 나온다. 박 대통령의 의원 시절 보좌진인 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1부속실 비서관, 안봉근 2부속실 비서관(민원담당)이 부각되는 양상이다.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이 2012년 12월 전격 사표를 낸 배경을 두고도 말이 많다. 김 전 대변인은 “재충전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지만 내부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김 전 대변인이 언론 브리핑 능력을 불신받아 수개월 동안 현안다운 현안에 대해 마이크를 잡지 못했고, 이를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정치권 한 인사는 “김 전 대변인이 2012년 대선 때 종편에 자주 나와 논평한 것을 보면 정치적 식견을 갖춘 것 같던데…”라고 말했다.

    “임무도 없고 항의도 못해”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인사에 따르면 김 전 대변인에 앞서 사표를 제출한 몇몇 비서관이나 행정관도 ‘직위에 걸맞은 임무가 주어지지 않은 데다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는 비서실 풍토’에 실망해 떠났다고 한다.

    여권 관계자는 “중요한 국정 사안에 대해 청와대 내 수석들 간은 물론 각 수석실 내부에서도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 근무했던 여권 인사는 “이명박 청와대엔 ‘토론문화’ ‘횡적문화’가 분명히 있었다. 박근혜 청와대에는 ‘지시문화’ ‘종적문화’가 만연한 것 같다”고 했다.

    박 대통령 주재 대통령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의 지시와 발언을 참모들이 열심히 받아 적는 모습이 TV 화면에 자주 나와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이와 관련해, 이명박 청와대의 이동관 전 홍보수석은 기자에게 “내부 소통이 외부와의 소통으로 이어지는데, 청와대 내부에서 뭔가 일방적으로 지시를 하고 받아쓰기만 해선 건강한 소통이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자연히 박 대통령에 대한 직언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가뜩이나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여기에 눌려 웬만한 중진 국회의원도 면전에서 쓴소리를 할 엄두를 못 낸다. 상당수 청와대 참모는 박 대통령에게 직언할 통로마저 마땅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하들과 토론하기를 즐겼고 현장 건설인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도 현안이 생기면 행정관급 참모도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이동관 전 수석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혼자 가기 어려울 때 몇 명이 한꺼번에 몰려가 ‘이건 아닙니다’ 하고 직언해 여러 번 정책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현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인물은 김기춘 실장 정도라고 한다. 2013년 12월 여의도 정가에 ‘대대적인 개각과 청와대 참모진 개편설’이 퍼졌다. 이 설의 진원지가 김 실장이라는 말이 많았다.

    그런데 김 실장은 1월 2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내각은 흔들림 없이 힘을 모아 국정을 수행해야 할 때”라며 “박 대통령은 전혀 개각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설이 사실이라면 모순된 일이 벌어진 것으로 비친다.

    이날 김 실장은 굳은 표정으로 단 세 문장의 회견문을 45초 동안 읽었다.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은 채 황급히 자리를 떴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정치권 인사의 설명이다.

    “김 실장은 박근혜 정부 집권 2년차를 맞아 대대적인 인적 개편을 구상한 것으로 안다. 남재준 국정원장과도 이 문제를 상의한 뒤 박 대통령에게 개각 및 청와대 개편의 필요성을 건의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개각설로 공직사회가 동요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김 실장의 표정이 굳었던 것은 자신의 건의가 수용되지 않았기 때문 아니겠느냐.”

    박 대통령은 1월 6일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각 가능성을 일축했다. 내부 소통이 부족하고 직언이 어려운 청와대 분위기가 참모들의 일하고자 하는 열정을 떨어뜨린다는 말도 나온다.

    매일 오후 6시 10분만 되면 청와대 연풍문 앞은 퇴근 첫 셔틀버스를 타려는 직원으로 만원을 이룬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이 내용이 정관계의 화제가 됐다. 정권 초반에는 저녁에 비서실 어느 자리에 전화해도 전화를 받았지만 요즘에는 저녁 8시만 돼도 전화를 받는 자리가 드물다는 지적도 있다. 한 여권 인사는 “‘청와대 직원들과 정부 부처 내 직업 관료들 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하다. 청와대를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돈다”고 전했다.

    허태열 전 실장이 한 말?

    과거 정권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이전 청와대 참모들은 대부분 새벽 6시쯤 출근해 밤늦게 퇴근했다. 집이 먼 직원 중 상당수는 청와대 인근에 숙소를 구해 가족과 떨어져 기러기 생활을 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과거와 달리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쉬자’는, 업무 효율을 꾀한다는 측면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열정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한 전직 행정관의 말이다.

    “우리 때는 정말 ‘빡세게’ 일을 시켰다. 그렇지만 피곤할 줄 몰랐다. 불평 없이 일했다. 고생한 대신 상응하는 포상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내부 승진 인사도 자주 있었고 청와대를 떠난 뒤엔 좋은 자리를 찾아줬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열심히 일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다. 안타깝다.”

    청와대 측은 소통, 직언, 열정이 부족하다는 시각에 대해 “편향적인 해석일 뿐 실제론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과거 대통령과는 다른 박 대통령만의 리더십에 맞춰 새로운 형태의 청와대 시스템이 구축되는 단계로 봐줄 수도 있다.

    내각과 공기업 인사를 둘러싸고도 말이 많다. 가장 많이 떠도는 소문은 정부 요직 인사와 관련한 부분이다. ‘김진태 전 대검차장이 검찰총장이 되는 데에 청와대 특정 실세가 힘을 실어주었다’와 같은 이야기가 돈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검찰 내부에서 A 총장 후보는 청와대의 B 실세가 밀고 있다느니, C 총장후보는 청와대의 D 실세와 친분이 두텁다느니 하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대적인 공기업 인사가 진행되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공기업에 들어가려는 쪽에선 어디에 선을 대야 유리할지 눈치를 살핀다고도 한다. 또 박 대통령의 일정을 짜는 일에서부터 보고서 작성의 주체 등을 놓고도 미묘한 갈등이 빚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현상은 허태열 전 실장이 이끌던 1기 청와대 참모 시절에도 있었다고 한다. 허 전 실장은 2013년 8월 청와대를 떠났는데 정권 출범 초창기인 그해 4, 5월부터 가까운 지인들에게 “청와대의 아랫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아 통제가 잘 되지 않는다. 내가 물러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은 허 전 실장이 있을 때보다 청와대 내부의 헤게모니 다툼이 많이 줄었다”며 “강성 이미지의 김 실장이 취임하면서 청와대 기강이 잡히는 양상”이라고 전했다. 올해엔 ‘청와대가 청와대답게 일한다’는 말이 나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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