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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차떼기’ 막으려면 차량등록제 시행해야

공정선거 사각지대 농어촌 ‘유권자 수송’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유권자 차떼기’ 막으려면 차량등록제 시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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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동이 불편한 농촌 노인이 멀리 떨어진 투표소로 가는 건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농촌에서는 승용차나 승합차로 노인들을 투표장으로 실어 나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여기에 부정이 개입된다.
‘유권자 차떼기’ 막으려면 차량등록제 시행해야

길게 줄지어 선 농촌 유권자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만 65세에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한 인사가 퇴임 몇 해 뒤 농촌 마을로 이주했다. 그는 마을 어른들께 인사도 드리고 마을 노인회에 가입할 요량으로 노인정을 찾았다. 노인정에 모인 노인들이 새로 이사 온 전직 교장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자네 올해 나이가 몇인가?”

“우리 나이로 68세입니다.”

“아직 한창이네, 자네가 마을 청년회장 맡으면 되겠구먼.”

전직 군수에게 전해 들은 얘기다. 80세 이상 고령 인구가 대부분인 시골 마을에서 60대 후반이면 ‘청년’축에 속하는 게 작금의 농촌 현실이다.

투표장 가는 길

대한민국이 산업화로 고도성장을 누리는 동안 인구가 도시로 대거 이동해 농촌은 ‘노인촌’으로 전락했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난 시골에는 70대 이상 80대 노인 인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고령의 인구가 많아지면서 농촌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모내기철에 두 사람이 논 양쪽 끝에 줄을 잡고 여러 사람이 나란히 줄지어 모내기를 하던 정겨운 풍경이 사라졌고, 가을 추수 때 여러 사람이 한 줄로 늘어서서 낫으로 벼를 베던 모습도 아스라한 옛 추억거리가 됐다. 젊은이들이 떠난 농촌에는 트랙터와 이앙기, 탈곡기 등 농기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농사일을 전담한다.

농번기 풍경만 달라진 게 아니다. 고령의 노인이 모여 사는 시골마을에는 유모차처럼 생긴 보행 보조기구를 앞세워 마을을 거니는 노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보행 보조기구의 도움으로도 걷기 힘든 노인은 전동보행기를 타고 다닌다. 시골에 거주하는 고령의 노인이 집에서 100여m 남짓 떨어진 노인정에 가려 해도 보행 보조기구 없이 거동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전남 무안군의 한 이장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노인은 건강이 양호한 편”이라며 “우리 마을 노인정 앞에는 전동보행기 8대, 보행 보조기구 10대 정도가 세워져 있다”고 말했다.

유동인구가 적은 농촌은 대중교통 수단도 턱없이 부족하다. 노인들이 읍내에 있는 병원에 다녀오려면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읍내를 순회하는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타야 한다. 버스와 지하철이 수시로 도심을 오가는 분주한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차분하고 고요한 농촌 풍경을 두고 ‘한가롭다’고 부러워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시골에 사는 고령의 노인들은 불편한 다리와 부족한 대중교통 수단으로 ‘이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다.

거동이 불편한 농촌 노인들이 한 해 건너 한 번꼴로 찾아오는 선거 때마다 짧게는 수백 m에서 길게는 수 km 이상 떨어져 있는 투표소로 가서 투표를 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는 노인이라면 마을버스라도 타고 다녀올 수 있지만 보행 보조기구 없이는 걷기조차 힘든 노인과 전동보행기를 타고 다녀야 하는 노인은 투표장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투표 당일 농촌에서는 승용차 또는 승합차로 노인들을 투표장으로 실어 나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참정권 보장’을 명분으로 투표 날 승용차로 노인들을 투표소로 실어 나르는 게 연례행사처럼 굳어졌다. 문제는 노인들을 투표장에 실어 나르는 과정에 해괴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전남에서 20여 년간 정치권에 몸담아 온 박호원(53·가명) 씨 얘기다.

▼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투표장에 모셔가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특정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조직적으로 실어 나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 투표장에 데려다줬다고 꼭 특정 후보를 찍는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시골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어르신 가운데는 순박한 분이 많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으면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다. 승용차로 투표소까지 이동하는 편의를 제공하고 ‘할매, OO 후보가 우리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고 합디다’라면서 투표를 유도한다. 심한 경우에는 투표용지를 크게 확대해서 특정 후보 이름 옆 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 노인마다 지지하는 후보가 다를 수 있는데, 그게 가능한가.

“투표소에 태워 갈 때는 지지 성향을 봐가면서 차에 태운다. 투표 며칠 전부터 ‘할매, 내 차에 타쇼’라고 미리 약속하고 태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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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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