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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요원 살해 지시 받은 적 없다 난 보위부의 ‘보’자도 모른다”

‘간첩’ 원정화 의문의 새 증언

  • 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국정원 요원 살해 지시 받은 적 없다 난 보위부의 ‘보’자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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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보위부 상선(上線) 김교학? … “2005년경 처음 본 사람”(원정화)
  • ● “‘김현희처럼 살게 해준다’고 수사기관이 원정화 회유”(계부 김동순)
  • ● 원정화가 북송시켰다는 40대 탈북 여성… “새빨간 거짓말”
  • ● 원정화 사건 수사기록, 대부분 원정화 진술에만 의존
  • ● 원정화, 검증 시작되자 “난 이미 처벌받았다”며 답변 거부
“국정원 요원 살해 지시 받은 적 없다 난 보위부의 ‘보’자도 모른다”
지난해 ‘신동아’ 11월호에는 탈북 여간첩 원정화(40) 씨 단독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원씨가 간첩혐의로 구속돼 5년간 복역 후 출소한 지 석 달 만의 일이었다. 원씨는 인터뷰에서 북한과 중국에서의 행적과 가족관계는 물론 국내에서의 활동내역, 2008년 7월 구속된 이후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신동아’ 인터뷰 이후 원씨는 여러 방송매체에 출연해 비슷한 내용의 증언을 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주인공이라 그의 증언과 주장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원씨는 2008년 10월 간첩 등의 혐의로 5년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를 포기한 바 있다.

원씨의 주장은 2008년 당시 공소장, 판결문 내용과 비슷했다.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1974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북한공작원이던 부친 원석희는 1974년 남파 도중 국군에 사살됐다. 이후 혁명열사 가족으로 유복하게 살았다. 모친 최OO은 1976년 미술 관련 일을 하던 김동순과 재혼했다.

△학업 성적이 좋아 사회주의청년동맹(사로청)에서 일하고 금성정치대학에서 공부했다.

△특수부대 교육 중 다쳐 감정제대 한 뒤 국가재산탐오죄로 복역 후 1996년 중국으로 탈출했다.

△1998년 보위부에 포섭돼 간첩교육을 받고 중국으로 파견된 뒤 100명이 넘는 탈북자와 한국인을 북송시켰다.

△원정화 본인, 여동생 김희영(가명), 남동생 김민수(가명) 등 가족 대부분이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에 몸담았다.

△북한 보위부의 남파 지령을 받고 2001년 10월 국내에 잠입했다. 미군기지 등의 위치를 파악해 보위부에 보고했다.

△2002년 10월부터 2008년 7월까지 대북무역을 이유로 14차례 중국에 잠입, 보위부 요원인 단동무역대표부 부대표 김교학으로부터 지령을 받아 간첩활동을 수행했다. 정보요원과 황장엽 등에 대한 암살지령을 받았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원정화 인터뷰 내용이 보도된 후 몇몇 탈북 인사가 원씨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모두 북한과 중국에서 원씨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원씨 주장 중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제보자 중에는 중국에서부터 원정화와 가깝게 지냈으며 한국에서 한때 동거했던 여성도 있다.

제보자들의 등장

‘신동아’는 지난해 12월경부터 본격적으로 검증 취재에 나섰다. 제보자들의 증언을 듣는 한편, 2008년 사건 당시 원씨와 함께 간첩 혐의로 기소돼 4년간 재판을 받은 뒤 2012년 7월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원씨의 계부 김동순 씨와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씨는 본인 사건의 수사기록과 재판기록, 원정화와 나눈 대화 내용이 담긴 녹취파일을 ‘신동아’에 제공했다. 김씨가 언론을 통해 원정화 간첩사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 원씨 사건의 수사기록이 언론을 통해 확인된 것 모두 이번이 처음이다. 김씨는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사건이다. 왜 정화가 간첩이 됐는지, 왜 정화가 그토록 많은 거짓말을 했는지 난 알고 싶다”고 말했다.

1. 원정화 친부 원석희 의혹

수사기록과 판결문 등을 보면, 원정화의 주장은 언제나 가족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원씨는 그동안 자신의 친부 원석희 씨를 혁명열사로 소개하면서 “혁명열사의 유가족으로 상당히 풍족한 삶을 살았다”고 주장했다. 아버지 원씨를 포함해 가족 대부분이 보위부 관련 일을 하게 된 배경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이 원정화의 일관된 주장이다. 원정화의 주장은 공소장과 판결문에 그대로 실려 있다.

그러나 기자는 최근 원씨의 친부와 관련해 다른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2008년 4월 탈북해 한국에 들어온 70대의 강OO(인천 거주) 씨를 통해서였다. 강씨는 “1970년대 초 함경북도 부령군 고무산의 한 병원에서 의사로 일할 당시 원석희 씨를 알게 됐다”며 증언을 시작했다.

“부령군 고무산 시멘트공장 내에 있는 병원에서 일할 때다. 당시 원석희 씨가 그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 공장은 일하기 싫어하고 문제 많은 사람을 모아 국가에서 일을 시키는 곳이었다. 당시 20대 중반이던 원씨는 발이 넓고 말주변이 좋은 사람이었으며 거짓말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협심증을 앓아 우리 병원을 자주 찾았다. 원석희 씨와 최OO 씨 사이에 딸이 둘 있었는데, 둘째가 정화였다. 원석희 씨와 최OO 씨가 이혼하는 과정, 최OO과 김동순 씨가 재혼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이들 가족과 냇가로 고기를 잡으러 간 적도 있다.”

강씨에 따르면, 1970년대 초반 원석희 씨는 모르핀(마약)에 중독돼 당으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었다. 당에서 “원석희를 잘 살펴라”는 지시가 내려왔을 정도다. 강씨는 “원씨는 최OO과 이혼한 뒤 함흥 의 어느 요양소로 간 걸로 안다. 협심증 때문에 일찍 죽었다는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2008년 4월 탈북 직전 청진의 한 식당에서 원정화의 모친인 최OO과 원정화의 동생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청진에서 사우나를 운영한다고 들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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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진 기자 │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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