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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측근들, 수정안 관철 의지 있었나”

세종시 수정안 주도, 정운찬 前 총리 토로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MB 측근들, 수정안 관철 의지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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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세종시 때문에 나를 총리로 불렀다면 유감
  • ● 대선후보에 버금가는 행보?…이해 못할 말
  • ● ‘친박’에게 수모 많이 당했다
  • ● 세종시, 지금이라도 원점으로 돌려야
“MB 측근들, 수정안 관철 의지 있었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근 펴낸 786쪽짜리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중 세종시는 9장 30절 ‘안타까운 세종시’에서 34쪽 분량으로 다뤄졌다. 이 전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 추진과 좌절에 대해 ‘정운찬발(發) 섣부른 이슈화→차기 대선을 의식한 박근혜의 강력 반대→국회 표결에서 끝내 부결’로 정리했다. 주요 대목은 아래와 같다.

나는 정운찬 전 총장이 총리로 취임한 후 여당과 교감을 갖고 세종시 수정안을 만들어 발표하는 것이 순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2009년 9월 3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정 전 총장은 서울대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다가 세종시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여과없이 밝혀 버렸다.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이른바 ‘한나라당 비주류’의 반응은 싸늘했다. 2007년 대선 초기 정운찬 전 총장이 대선 후보에 버금가는 행보를 한 전력이 결정타였다. 전혀 근거 없는 추론이었지만, 내가 세종시 수정을 고리로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2012년 여당의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다.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정국에서 야당이 극력 반대하는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도 대통령의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세종시 수정안은 재석 275명, 찬성 105명, 반대 164명, 기권 6명으로 끝내 부결됐다. (…) 못내 허탈했다. 나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우리 정치권과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러웠다.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 프로젝트 중심에는 정운찬(69) 전 국무총리가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는 총리 내정자 시절부터 ‘세종시 원안 반대’의 총대를 어깨에 멨고,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책임지고 사퇴했다.

정 전 총리는 ‘대통령의 시간’ 집필에 참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세종시 총리’가 보고 겪은 수정안 추진 과정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드문 수도 분할 과정을 보다 다각도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때 모셨던 분의 저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며 한사코 손사래치는 그를 2월 6일 서울 관악구 (사)동반성장연구소에서 어렵사리 만났다.

‘수정안 더 잘 만들어야겠다’

▼ ‘대통령의 시간’은 읽어보셨나요.

“책이 어제 도착해서 아직…. 신문에 발췌된 부분들은 읽었습니다.”

▼ 책에 ‘세종시 수정안을 총괄해 추진할 적임자가 새 총리가 되기를 바랐다’며 먼저 충남도지사를 지낸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가 물망에 올랐다가, 같은 충청권 출신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내정했다고 기술됐습니다.

“총리 내정 전과 후에 이 전 대통령을 만났지만, 세종시의 ‘세’ 자도 안 나왔습니다. 당시 정부가 여러모로 수세였어요. 대통령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총리로 데려가면 국민 지지가 높아지지 않을까 해서 제가 발탁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더욱이 총리에 앞서 여러 자리를 제안했었기에 또 거절하기가 어려웠고요.”

2013년 6월 1일자 동아일보 ‘비밀해제 MB 5년 : 원 포인트 국무총리’에 따르면, 2009년 9월 1일 밤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은 이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정정길 대통령실장 관저로 안내한다. 정 실장은 정 전 총장에게 세종시와 4대강 사업에 대한 생각을 물었고, 정 전 총장은 ‘세종시 계획은 효율적이지 않다’는 취지로 대답한다. 곧 정 실장은 대통령의 뜻이라며 총리 직을 제안한다.

이에 대해 정 전 총리는 “그날 밤 정 실장을 만난 것은 사실이고, 그 후에도 낮에 한 번 더 만났다”며 “하지만 세종시 얘기를 나눈 적이 없는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 당시 이미 청와대는 세종시 수정안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충청권 인사가 총리가 돼 이 일을 맡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고요.

“세종시 사업을 하라고 저를 불러간 것이라면, 만약 그랬다고 지금 언급했다면 저로서는 유감입니다.”

▼ 2009년 9월 3일 총리 내정자 신분으로 ‘세종시 수정’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파급력이 매우 컸습니다. 이렇게 세종시 수정 추진이 너무 일찍 공개돼 이후 일이 꼬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청와대에 있는 가까운 사람이 저한테 전해주기를, 그날 저녁 정운찬이 세종시 원안은 안 된다고 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청와대 스태프들이 TV를 보며 환호했대요. 비록 조율을 거치지 않은 속내였지만, 준비를 다 한 다음에 발표했다면 일이 순조롭게 풀렸을까요? 모르겠네요, 허허.”

정 전 총리는 총리 취임 한 달 후 언론인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수정안이 완성되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보여드리고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며칠 뒤 국회 대정부 질문에 출석한 그는 한 친박계 의원으로부터 “감히 누가 누구를 설득하겠다는 거냐”며 심하게 질책당했다.

▼ 국회 특유의 권위주의를 처음 겪으신 셈인가요.

“어휴, 권위주의를 뛰어넘었죠. ‘누가 누구를!’ 하며 호통을 치는데…. 두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하나는 친박은 수정안에 절대 반대하겠구나. 또 하나는, 그러니 더욱 더 수정안을 잘 만들어야겠다. (한숨을 쉬며) 정말 잘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에 원안을 강력하게 고수하는 분을 모셨고, 회의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소수의견이 있었다는 것도 꼭 밝히라고 지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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