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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측근들, 수정안 관철 의지 있었나”

세종시 수정안 주도, 정운찬 前 총리 토로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MB 측근들, 수정안 관철 의지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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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도, 능력도, 수단도 없다’

“MB 측근들, 수정안 관철 의지 있었나”

2010년 8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마친 뒤 이튿날 퇴임식을 하는 정운찬 당시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2010년 1월 11일 정부는 4조5000억 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유치, 세종시를 기업도시로 만들겠다는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약속을 지켜라”는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요지부동이었다. 2월에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사이에 ‘강도’ 배틀이 붙었다. 이 대통령이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고 하자, 박 전 대표는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서 갑자기 강도로 돌변하면 그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맞받아쳤다. 발끈한 청와대는 “박근혜 의원은 대통령에 대한 기본 예의를 지켜야 한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 분위기가 격해진 그때 대통령을 찾아가 ‘세종시 수정안을 도와주면 (박근혜 전 대표의) 차기 대선을 도와주겠다고 하라’고 말씀하셨다면서요.

“맞아요. 세종시는 국가의 중차대한 문제니 박 전 대표에게 꼭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되, 대신 차기 대선에서 최대한 돕겠다고 말씀하시라고 했어요.”

▼ 그 말에 이 전 대통령이 ‘꽤 심각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동아일보에 나왔습니다.



“그건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밝히는 것이 적절치 않아요.”

▼ 2012년 대선에 나올 생각이 없었습니까.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넥스트 스텝, 그러니까 ‘총리 잘해서 대통령 돼야지’ 같은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지금도 정치할 거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동반성장사회를 만드는 것이 제가 할 일이에요. 이 일에 주력할 겁니다.”

그는 “총리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정말 별거 다 해요”라며 웃었다. 총리 시절, 그가 용산 참사 유족과 부산 화재 일본인 희생자 유족을 찾아가 무릎 꿇은 일은 당시 큰 화제가 됐다. 그는 “휠체어 탄 분들에게 훈장을 달아드리면서도 무릎 꿇었다”며 “나라를 위해 무릎 꿇는 게 대수냐”고 했다.

▼ ‘대통령의 시간’에 언급된 정운찬 대선 후보설(說)에 대해 청와대가 발끈했습니다.

“신문에 발췌된 그 부분을 봤는데, 두 가지가 좀…. 확실하게 입장을 밝힐 것이지, 왜 ‘근거 없는 추론’이라고 애매모호하게 얘기했는지…. 그리고 ‘결정타’죠? ‘대선 후보에 버금가는 행보를 한 전력이 결정타’라는 표현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2007년 초반 ‘정운찬이 전국을 돌며 특강 정치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당시 일에 대해 그는 “많은 분이 대선에 나오라고 하도 진지하게 권해서 ‘고민해보겠습니다’라고 하고, 전국 대학에 강의를 다니며 정치 상황을 둘러봤다”며 “두어 달 다니다보니 ‘나는 준비가 안 됐다, 능력도 없고 수단도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4월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게 끝”이라고 했다.

▼ 회고록 집필 팀으로부터 자문 요청은 없었나요.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 쓴다고 말씀한 적은 있지만, 읽어보고 고쳐달라고 한 적은 전혀 없어요.”

▼ 두 분은 자주 만납니까.

“작년과 금년에 신년 인사를 갔어요. (이명박 정부) 장·차관 모임에도 두어 번 나갔고요. 퇴임 이후에 개인적으로 서너 번 뵌 것 같아요.”

“李·朴 협조 가능성 안 보여”

정 전 총리는 충청도에 열댓 번 내려가고 친박 인사들과 수차례 접촉하며 세종시 수정안 설득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옛 연기군에서는 한밤중에 계란을 맞을 뻔도 했고, 친박 의원들로부터는 냉대와 수모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그는 “좀 유치하긴 한데…”라며 일화 한 토막을 공개했다.

“63빌딩에서 한 친박 의원을 기다렸어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자리가 상석인 것 같아 그 반대편에 앉았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출입문이 한강 보이는 자리 옆에 있는 거야. 우리 스태프가 ‘문과 먼 자리가 상석 아닐까요?’ 해서, 내가 한강 보이는 자리로 옮겨 앉았죠. 친박 의원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대뜸 ‘손님 초대해놓고 주인이 상석에 앉습니까?’라고 쏘아붙이더군요. 속으로 ‘잘났다’ 했죠, 허허.”

▼ 친박 쪽 찬성을 이끌어내기가 요원했습니까.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협조할 가능성이 별로 안 보였어요. 제가 박 전 대표 댁 앞으로 찾아가 기다렸다가, 귀가하실 때 담판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라며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회창 씨 선례를 들어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친박 의원 몇 분에게 전화 걸어 만나게 좀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다들 ‘안 만나 줄걸요?’ 하더라고요.”

2007년 대선 캠페인 막바지에 이회창 당시 무소속 대선 후보는 박 전 대표의 지지 성명을 끌어내기 위해 세 차례나 박 전 대표의 자택을 찾아갔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수정안에 왜 결사반대했다고 봅니까.

“거기에 대해선 대답할 수가 없어요.”

정 전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여러 번 제안했다. 그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고 밝혔다.

“사람 눈빛을 보면 대강 짐작이 가잖아요. 수정안 발표 후 국회 대정부 질의에 출석했을 때 의원들 눈빛을 보고 국회에 의지해서는 별 승산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투표를 주장한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국가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므로 국민 전체에게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또 하나는 17대 국회에서 확정된 원안을 18대 국회에다 바꿔달라고 하는 것이 무리라고 봤어요. 인적 구성이 달라지긴 했지만 국회는 국회잖아요.”

▼ 국민투표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수정안이) 이겼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세종시를 서울과 수도권이 좋아하겠어요, 아니면 부산이 좋아하겠어요? 물론 국민투표에 부치면 제 고향인 충청이 이겨도 고립, 져도 고립될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죠. 6월 청와대에서 열린 세종시 수정안 관련 마지막 회의에서도 저는 ‘국민투표가 옳은 선택’이라고 말씀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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