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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득, MB 대선자금 전담 다들 부의장실로 돈 받으러 갔다”

이명박 정권 ‘개국공신’ 정두언 전격 증언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이상득, MB 대선자금 전담 다들 부의장실로 돈 받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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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선자금 빚진 MB, 이상득 제어 못했다”
  • ● “‘형님’이 자원외교 총지휘, 국정농단”
  • ● 이상득 측 “대선자금과 무관·자원외교 제한적 역할”
  • ● 이명박 회고록 vs 정두언 증언…진실은?
“이상득, MB 대선자금 전담 다들 부의장실로 돈 받으러 갔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내자 정치권에선 찬장이 와장창 쓰러지는 듯한 파열음이 나왔다.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명박 정권 개국공신’ 정두언(58) 새누리당 의원을 만나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국회의원 잘할 것 같아서…”

▼ 서울대 재학 시절 록밴드 활동을 했고,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장교로 군 복무할 수 있었는데도 육군 병장으로 입대했고, 공직 생활 중에 탤런트 공채에 응시했다 막판에 관뒀습니다. 참 ‘에지(edge)’ 있는 인생 같네요.

“몇 년 전 사석에서 모 중앙일간지 주필이 ‘정 의원은 드라마 PD 하는 게 좋을 뻔했어요. 무슨 정치를 드라마 쓰듯 해요?’라고 하더군요. 사실 정치인이 되기 전에도 조마조마하게 살았어요. 팔자 같기도 하고. 제겐 풍운아라는 말이 붙어 다녀요.”

▼ 탤런트 시험은 왜 봤나요.

“친구들은 학생운동 하는데 저는 고시 보고 공무원이 돼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그러던 차에 전두환 정부가 호헌(護憲)으로 돌아섰죠. 쪽팔려서 공무원 더 못하겠더라고요. 뭘 할까 고민했죠. 그러고 있는데 KBS에서 드라마 탤런트를 특채하더라고요. 나이 제한이 서른이었는데 제가 딱 서른이어서 응시했죠. 서류전형, 사진전형 등 5단계 전형 중 4단계까진 갔어요.”

▼ 최종까지 안 가고 그만둔 이유는.

“친구가 제 아내에게 고자질했나봐요. 어느 날 귀가했더니 장인 장모도 와 계셨고, 온 식구가 모여 있더라고요. 아내는 울고 있고. 요즘은 탤런트 서로 하려고 난리인데 말이죠. 결국 마지막 시험을 못 봤죠.”

▼ 2000년 2월 공직(이사관)을 그만두고 한나라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해 낙선했습니다. 공직 생활 1~2년만 더 해서 20년을 채웠으면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공직 생활은 평탄했지만 재미가 없었어요, 저는 익사이팅한 걸 좋아하는데. 여기 더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었죠. 간신히 잘되면 1급, 차관까진 되겠지만 그다음은 정치니까. 총리실은 춥고 배고픈 곳이라 ‘관피아’로도 못 가요. ‘나오면 제과점이나 하겠지? 그러다 망하고 북한산이나 다니겠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사느니 이쯤에서 변신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총리실에서 국회 답변자료 쓰고 국회 왔다갔다 하다보니 ‘내가 국회의원 하면 정말 잘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정두언 의원은 2001년 그의 인생을 바꾼 인물인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난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하던 MB는 교통사고로 입원 중인 정두언 원외 당협위원장을 병문안 왔고 이후 부부동반 식사에 초대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에게 “공직생활 20년 채워 연금 타게 해주겠다”며 영입을 제의했다. ‘MB다운 표현’이었다. 그는 MB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 후 홍사덕(서울시장후보 경선), 김민석(서울시장 본선), 박근혜(대선후보 경선), 정동영(대선 본선) 네 사람을 넘어서자 MB는 대통령이, 정두언은 대통령을 만든 최측근 실세 의원이 돼 있었다.

그러나 정 의원은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공천을 반대한 이른바 ‘55인 반란’을 주도했다. 또 이 전 부의장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권력 사유화’를 비판했다. 이후 그는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지속적으로 사찰을 받았다. 결국 이명박 정부 말기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지난해 11월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는 최근 의정 활동을 본격 재개했다.

‘대선자금-이상득-자원외교’ 의혹

이명박 전 대통령은 2월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회고록을 냈다. 이 책의 출간으로 이명박 정부 5년은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의 사건이 됐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자원외교를 적극 옹호한 반면 야당은 자원외교로 막대한 국고가 탕진됐다고 본다. 야당은 이 전 대통령과 형인 이상득 전 부의장을 자원외교 국정조사의 증언대에 세우고 싶어 한다. 정 의원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회고록이 자화자찬으로 일관했다. 진실을 숨겼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MB 대선자금, 이상득, 자원외교의 3각 관계 의혹에 대해 증언했다.

▼ 이명박 정부 초기 상황에 대해 들려주시죠. 정 의원도 그때 사찰 세게 받았잖아요.

“자, 집권하자마자 두 달 뒤 총선이 있었어요. 공천 작업이 있었겠죠. 우리는 SD(이상득 전 부의장)는 빠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동생이 대통령이 됐으니 형이 정계에서 은퇴하는 게 상식이라고 봤죠. 그런데 SD가 또 출마한다는 거예요. 저는 ‘안 된다’고 비공개적으로 말했어요. 그래도 공천 신청을 할 것 같아서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와 함께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만났어요. ‘저도 출마를 안 하겠으니 이 전 부의장도 출마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했죠. 그러자 MB는 ‘한 석이라도 아껴야지. 내게 다 생각이 있다’고 했어요.

당시 한나라당은 ‘65세 이상 공천 배제’ 기준을 내세워 박희태 전 의원을 비롯해 다 탈락시켰는데, 놀랍게도 이 전 부의장에겐 공천을 줬어요. 너무 불공정하잖아요. 특히 대통령 형에 대해. 이래서 국민이 정부를 믿겠나, 이런 상황에서 55인 반란 사건이 일어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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