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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광복 직후 일제 학살로 1000여 명 희생

중국 하이난도 천인坑의 조선 원혼

  • 권영해 | 前 국방부 장관, 대한민국건국회장 kwonyounghae@gmail.com

광복 직후 일제 학살로 1000여 명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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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장정 모자라자 죄수 차출해 남방보국대 보내
  • ● 강제노역자 2000여 명 모두 불귀의 객
광복 직후 일제 학살로 1000여 명 희생
1945년 8월 15일은 내 나이 여덟 살이던 여름날이었다. 개울에서 친구들과 물장난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면사무소(경북 문경군 동로면) 쪽에서 커다란 함성과 함께 꽹과리와 징소리가 들려왔다.

“해뱅이다!” “만세!” 라고 외치는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이었다. 나는 해뱅(해방의 경상도 사투리)이 무엇인지 몰랐다. 왜 만세를 외치는지도 몰랐다.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더니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몇몇 동네 사람이 “야야~, 일본이 전쟁에 져서 망하고 이제 우리 조선은 해방이 되었단다!”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방학하기 며칠 전까지도 나는 학교에서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에서 우리 일본은 베이고쿠(米國)를 무찌르고 승리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일본이 졌다니…. 나는 ‘이제 큰일이 나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이것이 8·15에 대한 내 기억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일제가 어린 우리에게 황국신민(皇國臣民)임을 세뇌한 결과였다.

그 후 며칠 동안 곳곳에서 만세소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면사무소를 비롯한 관공서에서 일장기를 내려 불태우는 것을 보았다. 일본인들이 집이나 사무실에서 신을 모셔놓은 ‘가미다나’를 꺼내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사람들이 발로 뭉개는 것도 보았다. 주재소(지금의 경찰 파출소)의 일본 순사들이 성난 군중에게 쫓기어 이리저리 도망하는 광경도 목격했다.

그렇게 해방을 축하하는 농악대의 풍악소리가 울릴 때 중국 땅 하이난도(海南島)에서는 일제에 의해 강제 노역에 끌려갔던 ‘조선인 남방보국대(南方報國隊)’ 생존자 1000여 명이 해방 소식을 듣지 못한 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일각에서는 전염병이 돌아 많은 이가 쓰러지자, 패전으로 하이난도에서 퇴각해야 하는 일본인들이 살아 있는 조선인까지 칼과 곡괭이, 몽둥이로 살육해 매장했다고 한다.

‘해방의 날’에 시작된 살육

해방을 기뻐하며 조국에서 울려 퍼진 징소리와 북소리가 그들에게는 살육의 신호소리가 됐단 말인가? 왜 일본군인들은 칼과 곡괭이 몽둥이를 쓴 것일까. 총으로 조선인을 쏘면, 총소리 때문에 학살 사실이 하이난도에 사는 중국인들에게 알려질 것을 염려했음이 분명하다. 항복과 동시에 일본군의 무기 사용이 금지됐으니 총을 사용하면 훗날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간교한 계산도 했을 것으로 본다. 전염병이 돌았으면 사람을 살려내려 노력해야지 살아 있는 사람까지 죽여서 매장한 것은 잔혹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조국 광복의 순간 하이난도에서 피살된 조선인 남방보국대는 무엇인가.

태평양전쟁이 중후반으로 접어들며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은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이 해전을 계기로 미국은 강력히 반격했다. 전세가 밀리는 일본은 1943년경부터 최악의 사태에 대비했다. 일본의 오키나와, 한반도의 제주도와 부산, 중국의 관문인 하이난도에 동굴 요새진지를 대대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한 것.

이를 위해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장정들은 징병으로, 징용으로 모두 끌려갔기에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일제는 한반도 전역에 수감된 죄수들 가운데 노역을 감당할 만한 이들을 감언이설로 속여 억지로 남방보국대에 지원하게 했다.

일제가 제시한 조건은 6개월만 노역에 참여해도 잔여 형기를 모두 면제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노역에 대한 보수도 일본인 순사(순경)만큼 주겠다고 했다. 차출된 죄수들은 대부분 일본의 식민 통치에 저항한 이른바 ‘불령선인(不逞鮮人)’이었다. 반(反)일제 성향의 인사들이었던 것. 그러하니 일제는 이들을 일제 청소(?)하려고 작정했다고 볼 수도 있다.

추모제를 위해 8월 9일 하이난도에 갔을 때 현지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이러한 추측을 확신케 하는 증언을 해주었다. 처음부터 일본 군인들은 조선인 죄수들을 죽일 구실을 찾는 데 몰두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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