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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사건의 심리적·정치적 함의

‘운동권 수령’ 심리로 여성들 건드렸나

  •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안희정 사건의 심리적·정치적 함의

  • ● “반미청년회 조직국장 시절 ‘대부’로 불려”
    ● ‘중도보수 & 충청’ 붙잡을 여당 구심점 사라져
    ● ‘2인자 없는 문재인 일방독주’ 본격화?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왜 그랬을까?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이가 많다. 정상을 겨우 10m 앞두고 미끄러져 추락한 격이다. 그래서 그 심리에 관심이 간다. 자만한 탓인지 방심한 탓인지 궁금하다. 

첫 번째 피해자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폭로 직후 안희정 전 지사의 비서실은 이렇게 해명했다. ‘성관계는 있었으나,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 불륜이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안 전 지사는 곧바로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며 도지사직을 사퇴했다. 성폭행이었음을 자인한 것이다.


구속 면했지만…

안 전 지사는 3월 19일 검찰에 출석할 때 다시 입장을 바꿨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생각한다.’ 불륜으로 회귀한 것이다. 반면에 검찰의 시각은 피해자와 같다. 피감독자 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이라는 세 가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이 영장을 두 번 연거푸 기각했다. ‘범죄 혐의에 대해 다퉈볼 여지가 있다.’ 이에 따라 재판 과정에서 성폭행이냐 불륜이냐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진실은 무엇일까? 자만한 탓일까 방심한 탓일까? 

필자가 보기에 자만한 탓일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피해자 역시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장을 제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측은 이외에도 추가 피해자가 최소 1명 이상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3명 이상이라는 의미다. 이 정도면 상습적이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다수라면 법원도 구속영장을 발부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검찰은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때도 두 번째 피해자 관련 혐의를 포함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진술의 신뢰성을 들어 증거 부족으로 처리하고 말았다. 자유한국당은 이것이 결국 봐주기 수사가 아니냐고 지적한다. ‘수사하는 시늉이나 하며 사실상 안 전 지사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논란 속에 당장 구속을 면했지만, 그렇다고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다수라면, 개별 피해자와 안 전 지사의 관계를 불륜으로만 포장할 수도 없다.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든다.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본인의 정치 활동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배경이 뭘까? 안 전 지사가 첫 번째 피해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끈 것은 이것이다. 

‘괘념치 말거라.’ 

이 글에 답이 담겨 있다고 본다. 조선시대에 궁녀가 임금과 잠자리를 함께하면 승은을 입었다고 표현한다. 승은을 입은 궁녀가 혹여 임금이나 중전마마의 심경을 어지럽게 한 게 아닐까 우려할 때, 임금이나 중전마마가 했을 법한 말이 바로 이 말이다. 마치 그 시대처럼 본인과 피해자의 관계를 상정한 것이 아닐까 한다. 

안 전 지사는 소년급제(少年及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30대 중반에 이미 권력 실세였다. 노무현 정부 이후 잠시 야인 시절을 거쳤지만, 2010년 40대 중반에 충남지사 자리에 올랐다. 2017년 대선 때는 50대 초반의 나이에 문재인 대통령과 당내 경선을 치를 정도로 급성장했다. 당연히 참모들은 그를 임금, 곧 군주로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선거캠프 구성원 중 일부가 발표한 ‘김지은과 함께하는 사람들’ 명의의 성명이 그런 분위기를 잘 전해준다. 

“‘너네 지금 대통령 만들러 온 거야’라는 말은 당시에는 자부심을 심어주려는 말로 받아들였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안희정이라는 인물에 대한 맹목적 순종을 낳았다. 정작 비판적인 의견을 제기하면 묵살당하는 분위기에서 선배들과의 민주적 소통은 불가능했다.” 

“만연한 성폭력과 물리적 폭력은 ‘어쩌다 나에게만 일어난 사소한 일’이 아니라, ‘구조적인 환경’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저 캠프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수령’이 결심하면 따라야

안 전 지사는 그들로부터 추앙받는 지도자였다. 그는 이런 분위기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고려대 재학 시절 김일성 주체사상을 전파한 반미청년회의 조직국장으로서, 캠퍼스별 교육과 조직 작업을 거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만든 배후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당시 ‘대부’로 불렸다”고 한다. 주체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수령론’이다. 수령이 결심하면 구성원은 이의 없이 따라야 한다. 수령이 하는 일은 어떤 것도 정당하다는 논리다. 대부 안희정은 그때 거의 수령급으로 대우받으며 학생운동을 지도했을지 모른다. ‘괘념치 말거라’는 표현을 보면서, 퍼뜩 안 전 지사의 사고와 행동은 어쩌면 그때 이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안희정 전 지사는 여전히 정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은 것 같다. 대법원에서 증거 부족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나면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 정서상 무리라는 시각이 훨씬 많다. 피해 여성이 여전히 피해를 호소하는 한,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는 사람이 국가를 지도하겠다고 나서는 건 염치없는 일로 여긴다. 

안 전 지사의 탈락으로 더불어민주당은 당장 차기 대선 구도를 다시 짜야 하는 고민이 생겼다. 안 전 지사는 지난 대선 당시 보완재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그가 언급한 ‘대연정’과 ‘선한 의지’가 중도는 물론 보수 지지 세력 사이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라이트 윙’ 자리 비어

안희정 전 지사가 전 비서 김지은 씨를 성폭행한 장소로 지목된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 건물. [김정훈 동아일보 기자

안희정 전 지사가 전 비서 김지은 씨를 성폭행한 장소로 지목된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 건물. [김정훈 동아일보 기자

안 전 지사는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못다 이룬 대연정을 실현해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겠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없는 사람과 국민 위해 좋은 정치하려고 했는데 뜻대로 안 됐던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당내 경선에서는 당연히 불리하게 작용해 결국 2등을 하고 말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중도와 보수 세력 사이에서 안희정 팬이 생겨나게 했다. 

안희정이 사라지고 난 이후 더불어민주당에선 중도보수를 붙잡아둘 구심점도 사라졌다. 또한 지역적으로, 안희정만큼 확고하게 충청을 붙잡아둘 사람도 여권 안엔 없다. 

누군가는 당내 라이트 윙(right wing·보수파)을 맡아줘야 하는데,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차기 대선에서도 중원 쟁탈전은 치열할 것이다. 물론 지난 대선처럼 3자 구도로 치러지면 다시 반사 이익을 보면서, 40%대 득표율로도 당선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개헌으로 결선투표제가 도입되거나 야권 후보 단일화로 양자구도로 갈 가능성도 있다. 이때 이념적으로도 중도 또는 보수를 끌고 올 후보, 지역적으로도 스윙 보트(swing vote·부동표) 지역인 충청권 유권자를 끌고 올 후보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 

최근 민주당은 문재인 따라잡기에 열심이다. 여전히 높은 국정지지율을 유지하는 문 대통령의 위세 때문이다. 당연히 당내에서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초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집권 초반에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라서 놀랍지 않지만 감동도 없다. 진보 정권은 다를 줄 알았는데, 똑같다는 사실에 오히려 실망감이 들기도 한다.


‘진박 마케팅’ 판박이 ‘문재인 마케팅’

문 대통령이 전반적으로 국정을 잘 이끌고 있는 것은 맞지만 모든 국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경고음을 울려야 한다. 민주당의 모습이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나 한나라당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사실 건강하지 않다는 신호다. 이런 식으로 가면 민주당도 결국 청와대 하도급업체 역할만 수행하고 말 것이다. 

당연히 2인자의 성장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차기 구도를 그려나가는 데 애로가 발생할지 모른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런 점에서도 안희정 전 지사의 중도 탈락은 여당에 뼈아프다. 

이런 가운데 지방선거 출마자에 대한 공천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서도 문재인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12년과 2016년 총선과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진박(진짜 친박근혜) 마케팅’이 기승을 부린 것과 비슷하다. 이 또한 건강해 보이진 않는다. 리틀 문재인만 늘어나는 속에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속락하는 상황이 오면, 여권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져 우왕좌왕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대선주자인 안 전 지사가 사라짐으로써 차기 대선주자군에 속한 이들은 다소 유리해졌는지 모른다. 민주당 내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이재명 성남시장 같은 이들이다. 추미애 대표 같은 이도 예외일 수 없다. 그 외에 친노-친문 가운데에서도 일부는 포스트 문재인 자리를 노릴 수 있게 됐다. 

중도보수를 지향하는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대표도 기회요인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공동대표도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 내에서는 당장 홍준표 대표가 수혜자가 됐다. 홍 대표와 달리 중도 지형으로 확장성이 더 있다고 생각하는 보수진영의 다른 잠재적 대선주자들은 더 큰 기회로 여길지 모른다.


‘안희정 퇴장’이 던진 숙제

문제는 누가 안 전 지사를 지지하던 표심을 선점하느냐다. 모든 차기 대선주자에게 작게 또는 크게 세력을 확장할 기회가 생겼지만, 아직은 누구도 유효타를 때리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단 한 발짝도 왼쪽으로 움직이기 싫어하는 홍준표 대표, 오히려 그와 보수 경쟁을 벌이는 데 열중인 유승민 공동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 당내 경선만 통과하면 본선 승리는 떼놓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진보 경쟁에 열중인 박원순 시장과 이재명 시장,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자기 목소리 내기를 자제하는 추미애 대표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중원에 깃발을 꽂지 못하고 있다. 

민주평화당이 일정 부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그 당에서는 주목받는 대선주자급 인물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주식시장으로 치면, 대장주가 하나 빠져나간 뒤 무기력한 장세를 보이고 있다고나 할까? 이런 별로 건전해 보이지 않는 ‘문재인 독주체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안희정의 퇴장이 정치권에 던진 숙제다.


신동아 2018년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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