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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정상회담 대차대조표

문 대통령은 지금…

“협상가에서 대변인으로 전락 중”

  • | 이종훈 정치평론가 rheehoon@naver.com

문 대통령은 지금…

  • ● 김정은에 유리한 ‘종전선언’ 집착
    ● 주권국 굴욕 자초
미국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는 문재인 대통령. 그는 종전선언에 대해 “정치적 선언을 하자는 것이고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폭스뉴스와 인터뷰하는 문재인 대통령. 그는 종전선언에 대해 “정치적 선언을 하자는 것이고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고 했다.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은 분주한 한 달을 보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무산된 직후인 4일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석협상가(chief negotiator)’ 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수석협상가 노릇을 충실히 이행한 것처럼 비친다. 5일 방북한 대북특사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김정은에게 전달했고,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다시 받아와 백악관에 전달했다. 그러나 메시지 내용은 당사자들이 말을 안 해주므로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단장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방북 결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이를 위해 남북 간에는 물론 미국과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습니다.”


‘플러스알파’는 비핵화 시간표

말 그대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언론엔 공개하지 않은 ‘플러스알파’가 있을 것이란 추정이 나왔다. 그것은 대북특사단 파견 직후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확인됐다. 비핵화 시간표다. 

이 편지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호평했다. “트럼프 행정부 재임 기간에 비핵화를 하길 원한다고 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발언이다.” 김정은은 2021년 1월까지 비핵화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의제로 올렸다. 이전까지 ‘비핵화’에서 한국은 배제된 상태였다. “용의” 수준이긴 하지만 평양공동선언 5항에 비핵화 관련 내용을 포함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이 공동선언 어디에도 비핵화 시간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논의는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정의용 안보실장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공동선언 내용 이외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이 내용도 백악관에 신속하게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평양공동선언이 나온 직후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 나온 것이 그 방증이다. 불과 1시간 만에 트위터에 “김정은 위원장이 핵사찰 허용과 국제 전문가 참관 하의 엔진시험장-미사일 발사대 영구 폐기에 합의했다”라고 썼다. 

다음 날 폼페이오 장관은 다시 비핵화 시간표를 강조했다. 그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북한 간 비핵화 협상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릴 것이라 했다. 

문 대통령의 수석협상가 노릇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평양에 다녀온 직후 곧바로 유엔 총회에 참석해 9월 24일 한미 정상회담을 했고 9월 27일 유엔 총회 연설을 마쳤다. 이제 공은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종전선언 올인했지만…

그렇다면 앞으로도 문 대통령은 수석협상가 역할을 계속 수행할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 카드로 이어가려는 듯하다. 9월 20일 3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 진행한 대국민 보고에서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새롭게 규정한다. “전쟁을 종식한다는 정치적 선언을 먼저 하고 그것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평화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때 평화협정을 체결함과 동시에 북·미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이 우리가 종전선언을 생각하는 개념이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니 북한을 위해 비핵화 전에 먼저 해주자는 인식이다. 그래서 주한미군 철수나 유엔사 해체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법률가다운 해석이다. 어찌 되었건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때 이 부분을 다시 논의하겠다고 했고 실제 의제로 던진 것으로 알려진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청와대는 종전선언과 관련해 깊이 있는 대화를 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유엔 총회 연설에서도 이렇게 강조했다. “앞으로 비핵화를 위한 과감한 조치들이 관련국 사이에서 실행되고 종전선언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합니다.” 문 대통령은 9월 25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도 “정치적 선언을 하자는 것이고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생각하는 개념의 종전선언은 성사될 수 있을까? 이 무렵부터 미국 일각의 언론은 문재인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the top spokesman)”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미국 일각의 여론에서 문재인의 수석협상가 지위는 박탈된 셈이다. 미국 측은 ‘김정은이 비핵화와 관련해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가운데 동맹국 대통령인 문재인이 먼저 나서서 김정은에게 종전선언이라는 엄청난 선물부터 주자고 부추긴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 조야에선 종전선언에 대해 “문재인의 말과 달리, 단지 선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지는 모멘텀(계기)을 제공하는 문제”로 인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무런 언급이 없다. 대신 10월 5일 4차 방북길에 나선 폼페이오 장관은 “일이 잘돼 우리가 목표에 다다를 때 우리는 정전협정을 끝내는 평화협정에 서명하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중국이 그 일원이 될 것”이라 말했다. 중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이 언급은 중국을 종전선언엔 포함하지 않겠지만 평화협정엔 넣어주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문재인-김정은은 판문점 선언에서는 종전선언에 대해 이렇게 합의한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하였다.” 이 합의에 따른다면, 중국은 종전선언 당사자로 포함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폼페이오의 발언은 배제 쪽에 힘이 실린다. 이 언급은 또한 미국 정부가 종전선언을 상응 조치로 적극 고려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종전선언을 북한과 협상 과정에서 아예 논의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면, 이런 언급을 할 이유가 없다. 

폼페이오는 10월 6일 평양에서 김정은과 담판을 벌였다. 종전선언 문제도 당연히 논의했을 것이다. 이번 방북 최대 관전 포인트가 바로 비핵화 초기 조치와 종전선언의 빅딜 여부였다. 협상 결과는 어땠을까? 방북 직후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폼페이오는 “아직 우리가 할 일이 상당히 많지만 오늘 또 한 걸음 내디뎠다고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애매한 말이다.


文의 손 떠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동아D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동아DB]

일본 ‘아사히신문’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조기 개최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를 봤지만, 합의할 의제로서 종전선언과 비핵화 리스트를 둘러싸고는 의견 대립이 있었고 진전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도 폼페이오 장관과 통화한 후 “종전선언이 시기상조라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고 했다. 

폼페이오의 방북 뒤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 이후에 개최될 것”이라고 말한 점에 비춰본다면, 미국은 문재인의 바람과 달리 ‘선(先)종전선언’을 걷어찼을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의 수석협상가 노릇은 벽에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의 방북길에 동행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협상 파트너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지 못했다. 비건-북한 간의 실무 협상도 성사되지 않았다. 최선희는 이즈음 오히려 미국을 자극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연달아 방문한 데 이어 북-중-러 3국 차관급 회담까지 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반도 정세의 현 긍정적인 추이가 지속되도록 그에 상응한 조치들이 취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대해 견해 일치를 보았다”고 보도했다. 미국을 겨냥해 종전선언을 재차 압박하고 나선 격이다. 


9월 20일 북한 삼지연초대소 오찬에서 잔을 부딪치는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동아DB]

9월 20일 북한 삼지연초대소 오찬에서 잔을 부딪치는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동아DB]

이 정도면 문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종전선언도 이미 문 대통령의 손을 떠난 느낌이다. 더 나아가 문재인은 자신의 추가적 중재 노력으로 인해 다시 패싱론에 휩싸이는 것으로 비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이 이를 촉발했다. 강경화는 “처음부터 핵무기 목록을 요구하면 이후 검증을 놓고 이어질 논쟁에서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북한에 핵물질 신고조차 요구하지 말자는 뜻으로 읽힌다. 선의로 해석해도, ‘김정은이 내놓은 비핵화 시간표를 일단 수용한 가운데, 비핵화 리스트 확정은 뒤로 미루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인 것이다. 미국은 이런 제안을 수용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미국은 본격적으로 리스트 확정에 나서고 있다. 

강경화는 심지어 5·24 조치 해제 검토를 언급해 국내외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10월 11일 국회의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24 조치를 해제할 용의가 있느냐고 질문하자 강경화는 “관계 부처와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후 외교부는 곧바로 미국에 해명까지 해야 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한국 정부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한국 정부는 우리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승인(approval)’은 한국을 주권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굴욕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따지고 보면 ‘수석협상가’라는 표현도 듣기에 따라 아랫사람 대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나아가 트럼프는 속으로는 문재인을 수석협상가로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결정적으로 트럼프는 문재인을 거치지 않고 김정은과 직접 대화해 해결하려는 태도를 고수 중이기 때문이다. 외교가의 몇몇 전문가는 미국 언론 일각의 지적처럼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선(先)종전선언’에 집착하면서 ‘협상가’에서 ‘김정은의 대변인’으로 전락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한반도의 대리 운전자?

김정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김정은은 한국 대북특사단에 트럼프에게 보낼 메시지를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트럼프에게 친서를 보냈다. 대북특사단을 전적으로 신뢰했다면 굳이 친서를 보낼 필요는 없다. 

트럼프는 김정은의 친서에 대해 “한 편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었다”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서 문재인은 어떤 존재로 대접받고 있을까. 한반도의 운전자는 대리 운전자로 대접받는 것은 아닐까. 양쪽의 메시지나 전달해주는 수석대변인, 툭하면 패싱당하는 보조적 존재로 머물러 있는 것으로 비친다.


신동아 2018년 11월 호

| 이종훈 정치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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