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호

손학규 “혼자 밥 먹는 문재인, 박근혜와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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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18-12-19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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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

    • “주변 사람 다 떠나가…개인적 꿈도 없어”

    • “1·2당 야합하니 단식밖에 할 게 없더라”

    • “소득주도성장 폐해는 제왕적 대통령제 탓”

    • “연동형 비례로 국회 활성화해야 민주주의”

    • “2019년 가을에 여당서 이탈자 나올 것”

    • “86세대, 콘텐츠 없고 이미지 정치만”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2018년 12월 11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손학규(72) 바른미래당 대표를 만났다. 손 대표는 당선만큼 낙선 경험이 많다. 대권에서는 세 번 낙마했다. 경선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했다. 정동영, 문재인, 안철수에게 차례로 졌다. 늘 대권 잠룡으로 꼽혔지만, 정작 본선에서 벽보 한번 붙여보질 못했다. 경기도지사는 재수 끝에 당선됐다. 총선에서는 처음 세 번을 내리 이겼다. 이후 세 번 중 두 번을 졌다. 한번은 정치 신인에게 패했다. 전당대회에 세 번 출마해 다 이겼지만 모두 야당 때였다.

    김영삼 정권 때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YS가 정치적 힘이 없어지면서부터 민자당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 당직 하나 갖질 못했고, 3선 국회의원임에도 상임위원장도 못 했다.” 주류보다 비주류에 발을 딛고 설 때가 많았다. 경기지사가 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나, 정작 당내의 반발을 샀다. 햇볕정책을 옹호했다는 이유에서다.

    “파주 임진각에 있는 평화누리, 내가 만든 겁니다. 한나라당에서 ‘손학규, 평양 가서 살아라’ 그래요. 그래도 지사 마치고 대통령 하겠다고 나섰을 때는 주변에 젊은 의원들이 제법 있었어요. 이명박·박근혜가 줄 세우기 시작하니 어느 사이에 다 사라졌어요. 더 이상 한나라당에 설 곳이 없더라고.”

    2012년에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대선에 나섰지만 경선에서 ‘노무현의 친구이자 비서실장’에게 패했다.

    “그때 문재인 지지 유세로 전국을 돌아다녔는데, 한 열두어 명 놓고 연설할 때도 있었어요. 지금 와서 이런 얘기하는 게 그렇지만, 그 사람들(문재인 캠프)은 내 이름만 필요로 했지, 내가 가진 조직이나 능력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유세 다니라고 버스 하나 내줄 듯하더니, 실제로는 전혀 뭐….”




    “바른미래당 대표가 무슨 영광이겠나”

    손 대표는 2014년 7월 경기 수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패해 정계에서 은퇴했다. 그러다 2016년 10월 민주당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입당하는 방식으로 여의도에 돌아왔다. 이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하면서 만들어진 바른미래당에 합류했다. 2018년 9월 2일 당 대표에 당선됐다. 보수에서 진보로 갔다가 재차 거처를 옮긴 셈이니 ‘철새 정치’라는 비판이 다시 뒤따라왔다.

    - 지난 11년간 한나라당에서 대통합민주신당, 다시 국민의당 그리고 바른정당과 통합한 바른미래당으로 옮겨오셨습니다. 대표님이 바뀐 겁니까, 세상이 바뀐 겁니까? 정계 은퇴를 번복하기도 했는데요.


    “은퇴 후에 독일 다녀오면서 우리나라 정치의 새로운 길을 열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때 안철수가 만든 국민의당에 합류했는데, 쉽지 않았죠. 그 와중에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했어요. 하지만 국민의당에서 호남 세력 다 빠지고, 바른정당 영남 세력 다 빠졌습니다. 껍데기 합당이긴 했지만 그래도 ‘제3의 길’을 해볼까 하는 생각에 지방선거를 도왔는데, 완패했죠. 그땐 ‘정말 떠나자’ 생각했습니다.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도 정리하려고 했어요.

    그런 와중에 사람들이 ‘제7공화국, 저녁이 있는 삶의 바탕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아니냐’고 해서 대표 출마했죠. 제가 제1야당 대표를 두 번이나 한 사람이에요. 지금 당이 실질적으로 의석 30석이나 됩니까. 여기 당 대표를 해서 제게 무슨 영광이겠어요. 대표 한 후 그동안 연락하던 사람들 다 떨어져나가고 몇 명 안 남았어요. 호남 쪽에서는 지난번 지방선거 때부터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도 연락이 안 돼요.”

    바른미래당 전당대회에서 그가 내세운 공약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이 제도는 정당득표율과 실제 의석수를 거의 일치시킬 수 있다. 이에 민심이 비교적 정확히 반영되는 제도라는 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 제도를 도입하려면 거대 양당이 동의해야 한다.

    2018년 12월 6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뺀 예산안 처리에 합의했다. 손 대표는 이날부터 국회 로텐더홀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손 대표를 만난 날은 단식 6일째 되던 날이었다. 기력이 쇠한 것이 역력했으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목소리에 더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 단식투쟁이라는 극한 방법까지 써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은 바꿨는데, 제도는 바꾸지 못했습니다.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4·19혁명, 6월항쟁 모두 제도를 바꿨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제왕적 대통령제가 그대로 있어요. 대통령이 모든 걸 다하고 국회가 허수아비, 앵무새가 됐습니다. 내각이 아무 역할을 못 하고 장관들이 일을 못 합니다. 국민의 참뜻이 국회의석에 반영돼야 하는데, 불비례성이 심해요.

    그래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개혁을 해야 하는데,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야합을 했어요. 1당, 2당이 야합해버리면 3당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 아, 정말 이건 국민에게 호소하는 길밖에 없겠다 싶었어요. 제가 그래도 청년 때부터 일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사람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내 한 몸을 바치자, 그런 생각으로 단식에 나섰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 안 된다”

    2018년 12월 11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바른미래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2018년 12월 11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바른미래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 12월 10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찾아왔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방자치 때문에 단식했다”고 하셨잖아요. 연동형 비례대표가 지방자치제만큼 중요한 정치개혁이라고 보십니까?

    “그럼요. 연동형 비례대표 요구하는 게 바른미래당이 몇 석 더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의회주의를 제대로 안착시키기 위한 첫걸음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예요. 지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잖아요. 소득주도성장 보세요. 지금 경제 전체가 추락하고 있어요. 여당 국회의원 130명 중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그 사람들 다 지역구 있잖아요. 가면 상인들, 중소기업가들 만나지 않습니까. 다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왜 그걸 모르겠어요? 청와대 무서워서 누구도 한마디 말을 못 하는 겁니다. 국회가 아무 소리 못 하는 허수아비가 된 거예요.”

    -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면 경제정책을 합리적으로 펼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제대로 경제 발전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려면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국회를 만들어야죠.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 몇 사람과 결정해서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말고요. 지금과 같이 대통령이 위에서 지역구 공천 주고, 비례대표 주는 식은 안 됩니다. 지역별로 영남은 자유한국당, 호남은 더불어민주당 이런 지역구도 타파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민주주의 안 됩니다. 그러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해야 해요.”

    - 예산안과 선거제도를 결부한 게 패착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12월 7일에서 며칠 늦어진다고 우리나라 예산이 거덜 나고 국민생활이 거덜 납니까? 우리 국회는 1월 1일 새벽에 예산을 통과시킨 일이 몇 번 있어요. 국회선진화법 후에도 뒤로 미뤄진 적이 있습니다.

    그간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두 당의 중재자, 조정자 역할하면서 채용비리 국정조사도 만들어내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조정의 기회조차 다 없어진 거잖습니까. 촛불로 탄생한 더불어민주당과 촛불로 망한 자유한국당이 그렇게 야합할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판만 드물었을 뿐,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중심 정부’라는 지적은 집권 초부터 있어왔다. 규모와 영향력이 공히 커서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인원은 443명이다. 박근혜 정부 때와 같다. 하지만 국가안보실 인원을 더하면 490명이다.

    청와대가 ‘국가재정법’ 제9조 제4항 규정에 따라 공개한 ‘대통령비서실 및 국가안보실 소관 2018년 예산 사업별 설명자료’에 따르면 2018년 청와대 인건비는 376억 원으로 직전해(347억 원)보다 8.4% 늘었다.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국회를 존중해 견제 기능을 충분히 살려줘야 한다”고 말한 바도 있다.

    - 제왕적 대통령제를 꼬집으려면 비대한 청와대 조직도 문제 삼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국가정책 실행은 내각이 하는 겁니다. 지금은 내각 바깥에 정책실장에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에 일자리수석에 경제수석에 경제보좌관까지 있어요.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일자리수석이 성과를 내야 하니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 각 부처에 일자리 만들라고 하는 겁니다. 경제만 생각해도 청와대 줄여야 해요. 자영업 어렵다고 자영업비서관 만드는 게, 아니 말이 됩니까?”

    - 경제부총리는 김동연에서 홍남기로, 정책실장은 장하성에서 김수현으로 바뀌었습니다.

    “둘 다 갈기는 했는데, 더 안 좋아졌어요. 경제부총리는 윗사람 말 잘 듣는 사람, 정책실장은 그 동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인 사람.”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신동아’ 2018년 9월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야당을 국정에 참여시키려 했다. 문 대통령도 당 대표나 후보 시절까지는 유럽식 의회정치를 강조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가까운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의회와 야당을 무시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탄핵 사태 때는 국회에 총리추천권을 주자고도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집권 후 실제 드러나는 정치행위를 보면 정당과 의회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야당에 날 선 말을 쏟아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의회주의자였다면, 문 대통령은 이와 비교해 의회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문 대통령은 아주 신념에 찬 ‘반(反)정치주의자’”라고 평하기도 했는데요.

    “‘반정치주의자’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불통은 틀림없는 것 같아요. 며칠 전 함세웅 신부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막 열을 올리면서 ‘아니, 왜 대통령이 혼자 밥을 먹어요. 사람들하고 얘기를 좀 하고 원로들 얘기도 들어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런데 안 만나요’라고 하더라고. 문 대통령은 이미지 정치는 잘하죠. 그런데 실질적인 대화를 해야 할 것 아니겠어요?

    청와대 안에 대통령에게 제대로 진언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혼자 밥 먹고 소통 못 한다는 게 가장 큰 결점이었어요. 그러니 소위 ‘3인방’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다 난리가 났잖아요. 정작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을 갈았는데 똑같은 일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로는 이제 안 되는 겁니다.”


    “文, 겸손한지는 모르겠으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2018년 11월 1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귀빈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듣고 있다. [뉴스1]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2018년 11월 1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귀빈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듣고 있다. [뉴스1]

    - 문 대통령은 해외 순방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경제 질문을 아예 받지 않았습니다. 문 대통령 개인은 겸손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많았는데, 이 모습만 보면 문 대통령도 이미 ‘제왕’이 돼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글쎄…뭐 얼마나 겸손한지는 모르겠네요. 개인적인 친분이 없으니까. 다만 (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실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요.”

    - 실상이라면?

    “의회가 중요하죠. 그리고 국민의 실제 삶을 정치가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 지 고민해야 합니다.”

    - 실제 삶은 경제를 뜻하겠군요.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소위 좌파이념적인 경제로 볼 수 있어요. 소득수준 낮은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 올려줘야죠. 그런데 실제 그 최저임금을 줘야 할 사람은 삼성, 현대, SK가 아니라 밥집, 술집, 이용원, 커피숍, 편의점 아니겠어요? 그들이 이걸 줄 능력이 없는 겁니다. 줄 사람의 지불 능력을 생각해야죠. 당 대표 취임하고 편의점연합회 찾아가서 놀랐어요. 2017년에 편의점 점당 평균 고용인이 4.5명이었는데, 2018년에 3.5명으로 줄었어요. 어떻게 1년 동안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말이 안 되는 겁니다.”

    - 문재인 정부가 이념적 도그마에 빠져 경제를 대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그렇죠. 실제 서민의 삶을 제대로 보고 있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죠. 여당 안에서 다른 생각도 있겠지만 대통령 한마디면 여당이 꼼짝 못하니까. 그러면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에서 최저임금이 얼마나 낮은지 아느냐’는 식의 현실과 괴리된 생각만 하는 겁니다.”

    - 경제가 구조적 위기에 처했는데,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폐기한다고 당장 한국 경제가 나아지겠습니까?

    “소득주도성장을 폐기해야 하는 이유는 시장 논리를 무시하고 외면하기 때문에 그런 거지, 소득주도성장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통령이 경제철학을 바꿔야 해요. 경제활동은 시장에서 이뤄지고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는 철학을 가져야 해요. 일자리를 기업이 만든다는 걸 알면 일자리수석, 일자리위원회부터 없애야죠. 그런 자리들은 정부 예산으로 일자리를 만든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것 아닙니까.”

    - 정부는 혁신성장도 추구한다고 하는데요.

    “말로만 했지, 실제 행동을 뭘 했느냐는 거죠. 실리콘밸리 가서 우리나라 경제 큰일 났다고 생각했어요. 현대자동차가 수소차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상용화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도요타 수소차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졌어요. 1차 책임이야 현대차에 있겠죠. 하지만 현대차에서 수소차를 개발했으면 정부가 인프라를 깔아줬어야죠. 그게 안 되니까 저렇게 처진 겁니다.

    문 대통령이 탈원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도 과거에 독일 다녀와서 탈원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원자력 기술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걸 그렇게 쉽게 버려서야 되겠어요? 탈원전하면 수출을 못 할 거 아닙니까. 문 대통령이 원전 세일즈 외교한다는 데 가서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홍영표, 생각이 짧아”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 사람 이야기를 해보죠.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페이스북에 ‘선거법 개정=국회의원 밥그릇’, ‘내년 예산안=국민 밥그릇’이라고 적은 게시물을 올렸습니다. 2009년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원외이던 홍 대표가 인천 부평을 재선거에 출마했고, 손 대표께서 춘천에 칩거하던 당시에 직접 부평에 가서 본인 선거처럼 뛰었습니다. 그런 홍 대표가 손 대표님이 단식하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게시물을 올린 게 참 얄궂은 운명의 장난 같은데요.

    “그걸 또 기억하시네…. 뭐 홍 대표…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그렇고. 원내대표 입장에서 그렇게 비난하고 그랬겠죠. 그래도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 민주당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연동형 비례대표를 주장했어요?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는 왜 연동형 비례대표를 얘기했어요? 어디 무슨 의석 한두 개를 갖고 그런 얘기를 한다고…. 내가 홍 대표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생각이 짧은 겁니다.”

    -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지지율 정체와 정체성 갈등으로 많은 당원이 불안해하고 있다. 아직도 분열의 씨앗이 남아 있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막상 기자회견에 구 바른정당 출신은 오신환 사무총장 한 사람만 참석했는데요. 당이 위기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않아요. 올만한 사람은 많이 있었어요. 여기 단식하는 데 유승민 대표도 두 번이나 왔고 지상욱 의원, 이학재 의원 다 왔습니다. 정병국 의원이나 이혜훈 의원은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어요. 다만 기자회견 때 (의원들에게) 특별히 와달라거나 당내에 공표하지 않았습니다. 박주선 의원이나 김동철 의원은 마침 그 시간에 여기 지나가다가 앉아 있었던 거고. (일부러 안 왔다는 말은) 전혀 사실과 맞지 않아요. 어제 사진 하나 갖고 언론이 만들어 쓰는 말이에요.”

    - 그럼에도 ‘위기론’이 자꾸 불거지는 이유는 이른바 ‘보수대통합’ 때문인데요. 한국 정치에서는 잊을 만하면 ‘빅텐트’론이 나오지 않습니까? 여러 야당이 정부·여당에 맞선 이른바 단일대오를 이뤄야 한다는 주장인데요.

    “보수대통합 얘기는 줄어들었어요. 요즘 누가 얘기합니까? 반문(反文)연대 얘기도 줄어들었고. 우리가 불안해하는 건 뭐 사실인데…. 그래도 새로 임명한 지구당 위원장 중 절반 이상이 바른정당 출신입니다. 그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어요. 물론 보수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이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쳐진 정당이니 정체성 문제에서 혼란과 갈등이 있는 건 당연하죠.”

    - 바른미래당의 좌표는 중도입니까?

    “촛불혁명을 계기로 우리 정치의 축이 상당히 왼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래서 정의당 지지율이 이만큼 오른 겁니다. 지금 보수라고 해서 모든 것을 시장과 대기업 위주로만 하자고 주장합니까? 자유한국당도 복지에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잖아요.

    수구보수야 오른쪽 끝에 남아 있겠죠. 하지만 가운데서 중도개혁정당이 생겨 개혁보수를 품을 수 있어요. 또 2019년 가을쯤 되면 더불어민주당에서 ‘여기 계속 있어야 하나’ 하는 사람이 분명 나타납니다. 지금이야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해서 꼼짝 못하고 있지만, 내부에 불만 세력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정치 세력을 구성하는 과정이 올 텐데, 그 중심축을 바른미래당이 잡아놓겠다는 거예요.”

    - 총선을 앞두고 그런 개편이 일어날 수 있다?

    “언제부터 이동이나 모임이 시작될지는 아직은 모르죠.”

    손 대표는 경기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에 유학해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권 문턱에서 그의 화려한 학력은 장점이자 단점이 됐다. 그가 지닌 실제 성장담과는 별개로 엘리트 코스만 달려왔다는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다. 이에 그가 13년 전 택한 방식이 ‘100일 민심대장정’이다.

    - 2006년에 수염 가득한 얼굴로 민심대장정을 하셨어요. 요새는 현장에 뛰어드는 정치인은 잘 보이지 않고, 말로 일도양단을 내고 세력 만드는 사람만 가득해 보입니다. 후배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고언은 없습니까?


    “지금 86세대가 정치의 중심을 잡고 있긴 한데, 뭐 이미지 정치, 말 정치죠. 제가 대선을 위해 (그들과) 몇 번 같이 움직여봤지만 콘텐츠보다는 이미지나 말이 아무래도 앞서고…. 그들도 어쩔 수 없겠죠.

    나는 정말로 정치인들이 애국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어릴 때는 나라가 어려워서 쥐를 잡고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냈습니다. 선생님이 외제 연필 갖고 있는지 보려고 필통 조사도 했어요. 그런 모습 보면서 우리나라가 잘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젊은 세대들은 잘살게 된 후에 정치를 했는데…. 글쎄요, 더 이상 내가 거기에 대해 대답할 길이 없네요.”


    “내가 가는 길이 외로운 길이니까”

    - 늘 ‘대통령 하면 가장 잘할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오셨는데요. 아쉽진 않으세요? 여전히 국가 경영의 꿈을 품고 계십니까?

    “에이, 나는 뭐 개인적인 꿈은 다 지나갔고…. 저녁이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제7공화국을 만들어야겠다는 게 목표입니다. 제7공화국은 다른 게 아니에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패권정치를 없애고 내각이 민생을 직접 관장하는 정치입니다. 국민의 뜻이 정치에 그대로 반영되고, 국회가 서로 대화하고 타협하는 합의제 민주주의죠. 독일이 잘사는 이유가 뭐겠어요. 결국 정치 안정입니다. 그 독일의 선거제도가 연동형 비례대표예요. 노무현 전 대통령도 독일 사례를 본 거죠.

    그런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일조하면 내 역할은 다 했다는 생각입니다. 바른미래당이 중도개혁세력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그렇게 마당을 만들면 젊은 사람들이 막 들어와서 놀아라. 그 얘깁니다.”

    - 중도개혁세력 구축이 정치인생의 남은 목표인가요?

    “내가 뭐 다시 정치를 할 것도 아니고…. 뭐 내가 가는 길이 외로운 길이니까. 늘 불쏘시개 하고 독배를 마시고 그러는 거죠. 이번 단식이 내게 남은 마지막 열정이 아닌가 싶어요.”

    손 대표의 마지막 말에는 크고 깊은 한숨이 배어 있었다.

    한편 손 대표는 2018년 12월 15일 단식농성을 중단했다. 5당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합의한 후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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