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호

[단독] 보훈처 산하기관장 '찍어내기 의혹’

보훈처 국·과장들 3개 기관장 찾아가 일제히 "나가라"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9-03-19 15: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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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7월 독립기념관, 보훈공단, 88CC 5번 찾아

    • “국·과장들이 기관장 사퇴 요구”

    • 후임 기관장은 文 고교 동문, 캠프 관계자

    • 사퇴 종용 의혹 B과장, 부이사관 특별승진

    • “‘文 캠프’ 인사 7~8명 보훈처 ‘낙하산’”

    • 보훈처 “정책기조 설명 위한 관행적 방문”

    • 보훈처 “B과장 승진 관계법령 따라 심사 절차 거친 것”

    [국가보훈처 제공]

    [국가보훈처 제공]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가 청와대 ‘윗선’을 향하고 있는 가운데, 국가보훈처도 전임 정부 시절 임명된 산하기관장들을 조직적으로 ‘찍어내려’ 한 의혹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2월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의 ‘사퇴 종용’ 보도(신동아 3월호)로 촉발된 보훈처 산하기관장 사퇴 종용 의혹은 ‘신동아’ 취재 결과, 나머지 산하기관(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88CC)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보훈처 국장이 일주일 간격으로 기관장들을 찾아가거나, 사퇴를 거부한 기관장에게는 다른 부서의 과장이 다시 찾아가 사퇴를 압박한 정황도 확인됐다. 이후 사퇴 종용에 ‘기여’한 국장들은 지방청장급으로, 과장은 ‘초고속 부이사관 특별승진’ 후 지청장급으로 영전하면서 보훈처 안팎에선 내부 비판과 자성(自省)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회와 보훈처, 산하기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7년 7월 초 보훈처 국장 C씨는 독립기념관을, A국장은 보훈공단과 88CC(88관광개발)를 동시다발적으로 찾아가 기관장 사퇴를 요구했다.

    최초 확인된 ‘보훈처 국·과장 출장내역’

    ‘신동아’가 입수한 국가보훈처 특별승진 계획 및 국·과장 출장내역서. [박해윤기자]

    ‘신동아’가 입수한 국가보훈처 특별승진 계획 및 국·과장 출장내역서. [박해윤기자]

    ‘신동아’가 국회 김종석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17년 보훈처 국·과장 출장내역’에 따르면, C국장은 2017년 7월 4일 ‘독립기념관 현안업무 협의’를 위해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찾았고, A국장은 그해 7월 5일 88CC에 이어 7일과 13일 두 차례 강원 원주시 보훈공단을 찾았다. 출장 목적은 ‘88CC 업무협의’ ‘보훈공단 2분기 경영효율화 추진실적 점검 등 업무협의’ ‘보훈공단 성과연봉제 후속조치방안 등 검토 업무협의’였다. 산하기관장 사퇴 종용 의혹에 대해 함구하던 보훈처 국·과장들의 산하기관 방문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이다. 

    국·과장들이 3차례에 걸쳐 방문한 보훈공단은 당시 여군(女軍) 단장 출신으로 예편(육군 대령) 후 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비례대표)을 지낸 김옥이 이사장이 재임 중이었다. 2013년 11월 이사장에 취임한 뒤 2016년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장 평가에서 A등급을 받아 임기가 1년 연장된 상황. 보훈공단은 애국지사와 국가유공자의 의료·복지 증진을 위해 보훈병원과 보훈요양원을 운영하는 국가보훈처 산하 준정부기관이다. 



    김 전 이사장에 따르면, 보훈공단을 찾아 사퇴를 요구한 A국장에게 “기재부 기관장 평가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아 임기가 1년 연장됐고, 임기가 아직 5개월 넘게 남았는데 왜 나가야 하나. 정권 바뀌었다고 일을 잘했다는 기관장 평가 결과도 바뀌느냐”며 ‘저항’했고, A국장은 일주일 뒤 다시 김 전 이사장을 찾았지만 ‘빈손’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자 평소 보훈공단 일과 관련이 없던 인사부서의 40대 여성 B과장이 A국장이 방문한 일주일 후인 7월 20일 약속도 없이 보훈공단을 찾아 이사장 면담을 요구했다. 

    김 전 이사장은 3월 5일 ‘신동아’ 인터뷰(218쪽 참조)에서 “사전약속 없이 찾아왔기에 실장 등 간부 5명에게 ‘B과장을 만날 이유가 없다. 설득해서 보훈처로 돌려보내라’고 했는데, B과장은 1급 남자 직원들의 만류를 다 뿌리치고 2층에서 5층 이사장실로 올라왔다”며 “무작정 ‘오늘 사퇴서를 받아가겠다. 내놔라’고 했다. 내가 ‘저항’을 하니 망신을 주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의도, 절차도 없었다”고 부연했다. 현장을 목격한 보훈공단의 한 직원은 “B과장의 소란으로 직원들 업무에 지장을 받을 것 같아 이사장실로 모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종석 의원실에 제출한 보훈처의 ‘출장내역’에 나타난 이날 B과장의 출장 목적은 ‘보훈업무협의’였다.

    “기관장 사퇴 요구, 치졸했다”

    그러나 B과장의 ‘보훈업무협의’는 고성이 오가는 속에 파열음을 낳았고, 김 이사장이 피 처장에게 ‘사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통화를 한 뒤에야 B과장은 이사장실을 나섰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법 제8조 5항은 ‘이사장 임기는 3년으로 하고, 이사 및 감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각각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고 규정하지만, 김 전 이사장은 B과장이 다녀간 이후 사표를 냈다. “관련법에 임기가 보장됐지만 내가 계속 ‘저항’하면 직원들을 들쑤셔놓을까 걱정되더라”는 게 사퇴의 변(辯)이다. 

    이와 관련 보훈처는 B과장의 보훈공단 방문에 대해 “새 정부 출범 후 보훈처 정책 기조를 설명하기 위한 일반적, 관행적 방문”이라는 공식 답변을 ‘신동아’에 보내왔다. 그러나 보훈처 내부 관계자의 설명은 다르다. 

    “A국장이 해결(사표수리)을 못하니 B과장이 가서 ‘빚쟁이 빚 받아내듯’ 사표를 요구한 거다. 이를 두고 보훈처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따뜻한 보훈’을 표방한 보훈처 직원이 할 행동은 아니었다. 김 전 이사장도 국가유공자다. 너무 치졸했다.” 

    앞서 독립기념관을 찾은 C국장도 ‘사표 낼지 안 낼지 지금 결정하고, 사표는 일주일 안에 내달라. BH(청와대를 지칭) 뜻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사퇴를 종용했다는 게 윤 전 관장의 증언이다(‘신동아’ 3월호 128쪽 참조).

    “‘따뜻한 보훈’ 한다더니 유공자를…”

    2018년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답변하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뉴스1]

    2018년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답변하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뉴스1]

    매헌 윤봉길 의사의 직계 장손녀인 윤 전 관장은 2014년 9월 취임해 임기가 두 달여 남은 때였고, 국가공무원법 33조가 규정한 임원 결격사유도 없었다. 윤 전 관장은 “(후임 관장 임명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후임 관장 인선 작업을 해도 내 임기(2017년 9월)는 다 끝나는데 왜 사표를 내라고 하느냐’고 되물었지만 ‘빨리 (윤 관장이 거취를) 결정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가 후손이 임명되는 상징성 때문에 역대 관장 모두 임기를 채웠는데, 잘못된 선례를 남길 거 같아 고민했다”는 게 윤 전 관장의 설명.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퇴 종용은 없던 일이 됐다. 피 처장으로부터 ‘(윤 관장의 임기 보장을 요구하는) 전화가 많이 온다. 사표를 내지 말라’는 전화를 받았던 것. 윤 전 관장은 “독립운동가 후손을 예우해야 할 보훈처가 자신들이 뭘 해야 하는 곳인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거 같다”고 당시 불편한 심경을 밝혔다. 

    눈에 띄는 것은 2017년 8월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한 피 처장이 ‘담당 국장을 보내 사퇴를 종용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인정했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 직권남용죄가 될 수도 있는데 순순히 인정했다는 데에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임기가 남은 기관장에게 사퇴를 종용한 피 처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종해 전 88CC 대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2017년 7월 보훈처 A국장이 경기 용인시 사무실로 찾아와 ‘산하기관장들의 사표를 받고 있다’고 사퇴를 종용했다는 것. 88CC는 국가유공자의 복지 증진에 소요되는 기금 증식을 위해 1988년 건립한 88골프장으로, 1987년 7월 설립된 88관광개발(주)이 상법상 법인이다. 정관 제14조(선임)는 회사 임원은 주주총회에서 선임하고, 사장 및 임원의 임기만료 기타사유로 인하여 사장 및 임원을 새로이 임명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사장 및 임원 추천위원회를 구성·운영하도록 규정하지만, 그는 사표 종용을 받고 얼마 뒤 사표를 냈다. 5개월여간 ‘지체 없이’ 전무이사가 대표 대행을 맡다가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국방안보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임동훈 전 기무사 준장이 후임으로 취임했다. 

    이처럼 보훈처 산하기관장 사퇴 문제는 2017년 7월 여름을 뜨겁게 달군 뒤 마무리됐고, 이후 해당 국장들은 지방청장급으로, B과장은 부이사관으로 특별승진하면서 지청장급으로 ‘영전’했다. 

    산하기관 방문과 B과장의 소란을 지켜본 보훈공단 직원들의 증언에 대해 보훈처는 “새 정부 출범 후 보훈처 정책기조를 설명하기 위한 일반적, 관행적 방문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는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보훈공단 직원이 이해를 못해서 그랬는지 어떤지 B과장이 소란을 피우게 된 이유와 A국장이 두 번에 걸쳐 기관장에게 설명한 새 정부 정책기조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답변서에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보훈처는 왜 ‘3인칭 화법’을 이용해 ‘관행적 방문으로 알고 있다’고 했을까. 피 처장이 이미 ‘담당 국장을 보내 사퇴를 종용했다’고 인정한 마당에. 이를 두고 보훈처 내부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 흘러나온다. 

    윤 전 관장 사퇴 종용 보도 직후인 2월 20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윤 전 관장에게) 사표를 ‘부탁드렸던 과정’에 대해 청와대가 오히려 말려 그분이 임기를 채우고 물러났다. 청와대가 개입해서 그분 임기 단축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맞지 않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의 브리핑에는 피 처장 스스로 윤 관장에게 사표를 내라고 한 걸 청와대가 알고 말렸다는 건지, 청와대가 보훈처를 통해 사표 제출을 종용해놓고 이후 철회했다는 건지 명확하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사의 설명은 이렇다. 

    “피 처장은 이미 국회에서 ‘사퇴를 종용했다’고 시인한 상황이고, 청와대는 ‘신동아’ 보도 직후 ‘사퇴 종용은 우리와 관계없다’고 바로 ‘꼬리 자르기’에 나서니 결국 C국장만 ‘바보’가 됐다. 직업 공무원인 국장들이 이유도 없이 (임기가 남은 기관장들에게) ‘사표 내라’고 하겠나.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보훈처도 상황이 ‘난감’하니 적당히 에둘러 말할 수밖에. (사퇴 종용을 위해 출장 간) 국·과장들이 출장 목적을 ‘업무협의’ 등 허위로 기재했다는 비판도 솔직히 우려스럽다.”

    의아한 B과장의 ‘벼락출세’

    B과장의 ‘벼락출세’ 의혹도 짚어볼 일이다. 1990년 9급 공채로 임용된 B과장은 2017년 3월 서기관으로 승진했고, 문재인 정부 들어 7월에 인사·총무 업무를 담당하는 과장이 됐다. 이 과는 3개 팀으로 구성돼 다른 과보다 훨씬 크고 업무도 많아 오랜 경험을 한 과장이 맡았는데, B과장은 초임 과장으로 해당 과 과장이 됐다. 그는 9년 만에 시행한 보훈처 특별승진 실무도 맡았다. 이후 B과장은 서기관 승진 1년 5개월 만인 2018년 8월 특별승진으로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보훈처 재직 중인 동기(1990년 임용된 9급 공채 기수) 22명 중 가장 먼저 부이사관이 됐다. 

    9급 공채 출신의 우수한 인재를 고위공무원으로 발탁하는 것은 박수 받을 일이다. 그러나 B과장의 승진 소식이 알려지자 보훈처 익명 게시판에는 그를 비판하는 글이 수백 건 올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보훈처 특별승진 대상자를 감사·수사하라’는 내용의 글이 두 차례 올랐다. 게시글은 ‘B과장이 △전임 처장 시절 실무를 봤다는 이유로 ‘적폐’로 몰린 직원들을 보호하지 않고 중징계에 앞장섰고 △자신이 담당 과장이면서도 특별승진제도를 만들어 ‘셀프승진’을 해 첫 수혜자가 됐다’며 초고속 승진 의혹을 주로 담았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이 글이 게시판에 오르자 B과장은 송모 주무관을 게시글 작성자로 지목했다. 송 주무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게시글을 쓰지 않았는데 B과장으로부터 작성자로 몰려 협박과 모욕감을 느꼈고, 인사 불이익을 받을까 하는 공포로 고통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증언했다.

    보훈처 관계자 “B과장 징계처분 요구했다”

    이후 보훈처 감사담당관실은 이 사건을 조사한 뒤 12월 3일 ‘성실 의무 및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해당 과에 B과장의 징계처분을 요구했지만, B과장은 17일 뒤인 12월 20일 오히려 지청장급 요직으로 영전했다. 보훈처 감사담당관실 관계자는 “해당 과에 징계처분을 내린 건 맞는데,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또 다른 보훈처 관계자는 “그가 과장이 됐을 때 모두들 의아했는데, 청와대 핵심 인사와 동향이어서 ‘교감’이 잘 된다는 말도 돌았다”며 “그가 맡은 업무도 청와대 인사수석실과 연결되고, 실제 대선 캠프 인사 7~8명이 보훈처와 산하위원회에 채용될 때 ‘역할’을 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도 운영지원과장이 ‘진입 통로’ 역할을 하지 않았나. 그러니 윗선의 뜻에 맞게 적극 나선 거 같다”고 말했다. 

    ‘신동아’는 B과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메모를 남겼지만 통화할 수 없었다. 대신 보훈처는 “B과장 승진은 관계 법령에 따라 심사 절차를 걸친 것이고, 징계 관련 사항은 민감한 개인정보가 있어 답변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와 관련 인사과장 출신의 한 국장은 “특별승진은 아주 큰 업적이 있거나 해외 주재관 파견 등으로 부처에서 해당 직급의 T.O.가 줄어들 것을 염려해 아주 드물게 시행한다”며 “자신의 손에 직원들 ‘피’를 묻혀야 하는 담당 과장이 특별승진제도를 활용해 스스로 승진을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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